* 영도유격부대 약사 * 영도유격부대는 1950년 9월 윤치영 선생님의 보살핌으로 육군본부 정보국 소속 육군중위 한철민과 미 합중국 중앙정보부 극동 지부장 한스. 토프트 사이에 대북유격전에 소요되는 군수 지원을 전제로 성립되여 15인의 창설기간 요원을 제외한 모든 병력이 1951년 1월4일(1.4후퇴)자유를 찾아 월남한 함경남도, 함경북도 및 북부 강원도의 동해 3도 출신 반공청년 1, 200명을 선발 부산 영도 태종대에서 1950년 12월 5일 까지 적후방에 침투 유격 작전을 수행 하였다. 지원처인 미 C. I. A 극동지부는 일본 동경 아쯔기에 위치 하였으며 한국 지휘부는 부산 동래 태화관에 위장 간판 극동공군, 기술 지원단(F.E.A.F-T.A.G)을 걸었으나 공식 명칭은 주한 연합 고문단 사령부(J.A.C.K)였다 그리고 직속 부대인 영도유격부대는 부산 영도 태종대에 설영하고 본부 예하에 4개처 행정, 작전, 정보, 보급처를 5개대 교육, 해상, 통신, 의무의 단위부대를 두고 대북 침투 유격부대는 (총사령관 최제부)휘하에 4개 관구 사령부(황룡, 청룡, 백호, 오봉)을 구성 작전지역을 북강원도와 함경남도, 함경북도 전역이 였다. 해상 유격대는 미 7함대의 지원 아래 동해안 원산에서 라진 간의 철교, 터널, 철로의 폭파와 철도 수송의 저지와 육상 수송의 저지도 동시에 수행함과 동시에 중요 군사 요충지에 대한 기습 공격과 부락기습 요인 납치 및 침투 부대의 상륙과 철수등 특수 작전을 수행하고 지상 유격부대들은 하늘과 바다로 적후방에 침투 현지 반공애국투사들을 규합하고 적정 제보(폭격 및 함포 유도)와 후방 교란등 유격전을 수행 하였다 영도유격부대가 거둔 확인전과는 적사살 4,810명 군시설물(병사,우라늄선광장, 탄약 제조창, 군수물 창고등) 공공기관과 운송 수단물등의 파괴 378건 화기와 기타 노획물 다수였고 이로 말미암아 인민군 최고 사령부는 영도유격부대의 대북 침투 병력을 소탕하기 위하여 최전선의 2개 사단 병력을 후방에 이동 배치 하였다 침투 병력은 900여명이 였고 귀환자는 33명에 불과 하였다 1952년 12월 5일 J.A.C.K 에 의해 예고 없이 단행된 강제부대 해체는 휴전후에 야기될 복잡 다난할 제문제를 사전에 봉쇄코자 시도한 전략적 행위 였으나 북에 이미 침투된 수백명의 유격대원들과 이에 동조한 수천명의 재북 반공 애국 청년들의 그후의 운명에 대하여 그누가 책임을 져야 할것인가? 나는 영도유격부대의 한대원으로서 다행이 지금껏 목숨을 유지 하고 있으나 지금도 북에는 영도유격부대의 뿌리가 힘있게 뻗치고 있다고 확신한다 머지 않아 통일이 되면 모든 진실이 백일하에 밝혀 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