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속의 세계에서도 노면에 찰싹 달라붙는 접지력은 도무지 헤어날 수 없는 유혹이다.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속도감은 심장과 뇌를 전율케 한다. 차라리 애당초 맛을 보지 말았어야 했다 2006년 1월호 편집 스케줄표에 포르쉐 911 카레라 4의 이름이 적히던 순간부터, 호시탐탐 그 운전석을 노렸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어찌하다 보니 너무 오랫동안 포르쉐의 단단한 시트에 앉질 못했다. 아예 맛을 보지 않았어야 했다. 한번이라도 맛을 들이고 나면, 불현듯 떠오르는 그 비현실적인 느낌을 어지간해선 참아낼 수가 없다. 가끔씩 몰아볼 기회가 찾아오면, 이성이 미처 제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본능이 먼저 깨어나 겸손이나 양보 따위 미덕을 내쫓아버린다. 방패 문양이 새겨진 시동키를 먼저 차지하고픈 물욕을 주체할 수 없게 된다. 911은 감성적인 차 만들기의 표본이다. 오직 공력만을 생각한 듯한 스타일링이나 암팡지게 부풀어 오른 리어 펜더, 돌덩이처럼 단단한 시트, 스티어링 휠에서부터 기어레버와 도어 무게에 이르기까지 묵직하게 다듬어놓은 세팅, 거기에다 시동음까지. 이 차에서 퓨어 스포츠카의 흥분을 자극하지 않는 요소는 단 하나도 없다. 포르쉐의 네이밍 전통 그대로, 911 카레라 4는 911 카레라 쿠페에 네바퀴굴림 구동계를 더한 버전이다. 타코미터를 중심으로 다섯 개의 원이 나열한 인스트루먼트 패널 디자인은 만고불변의 철칙인양 대시보드를 지키고 있고, 수직에 가깝게 내려간 센터페시아도 낯익은 부분이다. 시트에 앉자 그 딱딱한 촉감이, 그 맞춤 수트 같은 착석감이 엉덩이와 등허리를 타고 올라 심장과 뇌를 전율케 한다. 시트를 조금씩 움직여 가며 제자리를 맞춘 다음 스티어링 휠 왼쪽 아래의 시동키를 돌리자 "과르릉!" 온몸의 신경이 일순간 곤두선다. 엔진은 수평대향 6기통 3.6ℓ 325마력 유닛. 6천800rpm에서 나오는 최고출력은 구형에 비해 5마력 올라간 수치다. 최대토크는 구형과 같은 37.7kg·m/4천250rpm. 더해진 네바퀴굴림 구동계 탓에 911 카레라보다 리어 펜더 너비가 44mm 넓어졌다. 트랜스미션은 총알 만큼 빠르기로 소문난 5단 팁트로닉. 앞 맥퍼슨 스트럿, 뒤 멀티 링크 서스펜션 또한 911 카레라의 것 그대로다. 뻑뻑한 스티어링 휠을 돌려가며 차체를 움직이기 시작하자, 금세 켜켜이 쌓였던 스트레스를 단박에 털어내 버리고 싶은 유혹이 흠씬 밀려든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고 있는 노면상태. 그래도 걱정할 것 없다. 워낙 이름난 접지력에다 네바퀴굴림 구동계까지 더했으니 말이다. 팁트로닉 버튼을 눌러가며 몰아붙이자 순식간에 시속 200km를 넘어선다., 사실, 911 카레라 같은 차에게 시속 200km니 250km니 하는 건 그리 중요한 일도 아니다. 어떤 방법으로 그 수치에 도달하느냐가 이 차의 성격을 좌우한다. 시속 200km에서 시프트다운하며 한번 더 부추기자 속도계 바늘은 시속 250km를 향해 재빠르게 움직인다. 속도계 바늘도, rpm 게이지도, 팁트로닉의 변속 반응도, 이 차에서는 어느 것 하나 멈칫거리거나 망설이는 게 없다. 초고속으로 뻗어나가는 911 카레라 4의 운전석은 고요한 초집중력이 지배한다. 온몸의 신경이 죄다 두 눈동자에 모여 마치 레이저 빔을 발사하기라도 하듯 집중하고 있을 때의 쾌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0→시속 100km 가속은 5.6초에 끝내고, 시속 80km로 달리다 액셀 페달을 6초 정도만 밟고 있으면 시속 120km를 넘어선다. 정속주행을 해도 4단에서 이미 시속 130km를 순식간에 넘어간다. 네바퀴굴림이 합세한 접지력은 절정에 가깝다. 911 카레라의 리어 엔진, 뒷바퀴굴림 구동계는 분명 핸디캡일 수 있다. 오늘날 911에서 맛볼 수 있는 접지력과 핸들링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끝없는 도전의 산물인 셈이다. 아무튼 달리는 속도에 관계없이, 땅에 철썩 달라붙어 면도날처럼 움직이는 퍼포먼스는 911 카레라 4가 전해주는 특권이다. 1박2일 동안의 평균연비는 6km/ℓ. 약효에 비하면 유용한 연비다. 앞머리에는 넉넉하진 않지만, 여행용 트렁크 정도는 넣을 수 있는 짐칸이 마련돼 있고, 어린아이나 애완견에게만 편안할 작은 리어 시트도 여전히 제자리에 있다. 글러브 박스 윗부분에는 운전자와 동승자용 컵홀더도 숨어있다. '일상적으로 탈 수 있는 퓨어 스포츠'라는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의 고집은 포르쉐가 존재하는 한 언제까지든 유효할 것이다. 하루를 온전히 911 카레라 4 운전석에서 보낸 뒤, 늦은 밤 여섯 살배기 딸애에게 911 카레라 4의 리어 시트에 앉는 영광을 선물했다. 불행하게도, 아이에게 911 카레라 4는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아 보였다. 사랑해 마지않는 포르쉐 노트는 아이를 깜짝 놀라게 했고, 황홀한 가속력은 아이를 겁에 질리게 했다. 911 카레라 4는 12월 중순 어느 날, 기막힌 포르쉐 노트와 겁 먹은 아이의 칭얼거림을 함께 내지르며 까맣게 뻗어있는 강변북로를 화살처럼 달려나갔다. '혹시나 집값과 맞먹는 이 차를 사달라고 조르면 애비 체면에 말이 아닐 텐데….' 실없는 기우를 덜어낸 아빠는, 어느새 잠든 아이를 태운 채 꿈 같은 드라이브를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