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잠깐 제 이야기부터 할께요.

저는 그 흔한 해외단기연수 한 번 다녀온 적도 없는 사람입니다.

해외에 가 본 것도 일본에 가 본 것이 전부로, 가 본 회수가 한 손의 손가락 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기도 하지요.

아무튼 여기 계신 분들의 자동차 시승, 구입 등을 아주 부럽게 바라보고 있는, 내세울 것 하나 없는 그저 그런 20대 후반입니다. 20대라고 하기에는 이제 그렇게 불릴만한 시간이 1년 정도 남아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일본에서 택시를 타 본 것은 딱 두 번 있습니다. 그것도 모두 도쿄에서.

그 때의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일본의 택시 하면 도요타 크라운 컴포트나 닛산 세드릭 등의, 약간 오래된 듯 보이는 차량과 자동문, 그리고 하얀 레이스 커버가 씌워져 있는 좌석 등 이런 것들이 생각나는데요.

 

처음으로 타 본 택시는 닛산 세드릭이었습니다.

아키하바라의 어딘가(치요다구 소토칸다)에서 유시마(분쿄구 도쿄메트로 유시마역 입구)까지 타고 가기로 하였던 것이죠.

4년전, 첫 일본여행의 추억을 떠올리고자, 그리고 그 때와는 다른 지금의 여유를 한 번 누려보고자 일부러 택시를 타기도 한 것이지요. 물론 컴퓨터를 사는 등 쇼핑을 하고 난 이후라 짐도 좀 있었기에, 무작정 긴 거리를 걸을 수도 없었기에 이런저런 것들을 겸해서 택시를 타기로 했습니다.

 

택시를 세웠습니다. 닛산인데 차종의 이름은 알 수 없었습니다.

당시 날씨가 춥다고 도쿄의 사람들은 목도리나 두꺼운 코트 속에서 웅크리고 있었고, 나중의 일이지만 이케부쿠로에서 만난 친구(20대 초반 여자)도 춥다고 목도리, 털장갑 등으로 중무장을 하고 있는데, 저는 코트를 입었어도 단추를 잠그지 않고, 코트 안은 보통의 남방이었으니 도쿄의 사람들에 비하면 옷을 꽤 얇게 입었던 셈이지요.

 

그리고 택시를 타기 전, 롤스로이스를 실제로 봐서 기분이 좋기도 하였구요.

 

운전수에게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이 차가 닛산 세드릭이냐고 하니까 그렇다면서, 자동차에 대해 잘 아시네요 하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당시에는 세드릭인지 아닌지 몰랐는데, 어째서 닛산 세드릭이냐는 질문이 나왔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만.

그리고 롤스로이스를 난생 처음 보고 놀랐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운전수도, 이 근처에 구형 롤스로이스인 실버 스피리트가 꽤 자주 돌아다니는데, 아마 그 차가 맞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날씨가 꽤 따뜻해서 고하루비요리(小春日和)라고 느껴졌는데 도쿄의 사람들은 웅크리면서 춥다 춥다 하는게 이상하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제가 북쪽에서 온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운전수가 "아키타에서 오셨어요?" 라고 묻더군요.

사실, 일본어로 대화할 때, "아, 키타노 호오니 슨데이타 와케카(あ、北の方に住んでいたわけか : 아, 북쪽 지방에서 살아온 이유에서일까)" 라고 말한 것을, 운전수가 잘못 알아들은 것이었지요. 아키타에는 갈 생각이 있었지만 신칸센 운임 등 예산 문제로 가지는 못했습니다만, 아무튼 그렇다고 했습니다. 제 일본어가 도호쿠 억양으로 들렸는지 운전수가 자신도 도호쿠 지방 출신인데 날씨가 따뜻하다 그러니 동료들이 다 놀란다고 그러더군요. 그렇게 하다보니 어느새 택시는 유시마역 입구에 다 왔습니다. 820엔의 요금을 내고 나서 영수증을 발행해 달라고 했습니다. 한국에서 택시 탈 때 영수증을 발행해 달라는 말은 단 한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 일본에서는 그 말이 이상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나오더군요. 영수증을 받고 나서는, 첫 일본여행에서 많이 걸었던 오카키마치역 부근을 걸어다녔습니다. 4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있었지만, 그래도 낯익은 느낌이 오더군요. 하필이면 그날따라, 이센이라는 유명한 돈까스집은 정기휴일이었는지. 이센의 돈까스 맛을 다시 보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이 오카키마치역 주변의 한 회전초밥집에서 식사를 하고 야마노테센을 타서 호텔로 돌아갔습니다.

 

두번째 탄 택시는 도요타 크라운으로, 신쥬쿠역 서쪽출구에서 다카다노바바 빅꾸카메라 본부까지 탄 것이었습니다.

그날은 일정이 아주 이상하게 잡힌 날이었지요.

혼자 다닌 것은 아니고 단체 업무때문에 여럿이 다녀야 했는데, 제가 단체의 멤버 중 남자로서는 유일하게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 원래 예정된 일본음악저작권협회 방문 말고도 야노경제연구소와 빅꾸카메라 본부까지도 다녀올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물론 제가 업무를 총괄하고 있기 때문에 그 세 곳에 다 가면 좋지만, 단체인솔 등으로 극도로 피곤해져 있는데다가 한 사람에게 많은 업무가 몰려서는 곤란하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야노경제연구소에는 가지 않는 것으로 하고, 예정된 일본음악저작권협회 방문과 갑작스럽게 편성된 빅꾸카메라 본사 내방만으로 일정을 조정했습니다.

일본음악저작권협회에서 업무를 마친 후에 후다닥 나와서 요요기우에하라역에서 전차를 탔습니다. 다카다노바바까지는 앞으로 20분 이내에 도착해야 하는데, 문제가 있었어요. 요요기우에하라-신쥬쿠는 오다큐, 그리고 신쥬쿠-다카다노바바는 JR 야마노테센, 그리고 문제의 빅꾸카메라는 다카다노바바역에서 내려서 걸을 거리는 아니고 택시를 타서 10분 거리였죠. 갈아타기의 시간손실이 막대하고, 게다가 오다큐에서 JR로 갈아탈 때는 승차권을 새로 사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결국 신쥬쿠에서 택시를 타기로 했습니다. 동행할 다른 사람(20대 초반 남자)과 같이.

그런데 방향감각이 헷갈리고 말아서 동쪽으로 나갈 것을 서쪽으로 나가고 말았습니다.

신쥬쿠역 서쪽출구에서 택시를 잡고, 빅꾸카메라 본부에 가자 그러니까 운전수가 약간 이상해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빅꾸카메라라는 가전양판점은 본점이 이케부쿠로에 있는데 다카다노바바의 본부로 가자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지요. 아무튼 택시는 출발했습니다.

이미 약속시간은 넘어 버렸고, 길은 하릴없이 막혀있는 상태였습니다.

운전수가, 혹시 전화번호를 아는지를 물어 보았습니다.

전화번호를 알려주자 자신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위치가 어떻게 되는지를 물어보고는, 대시보드에 장착된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켰습니다. 그리고 신호가 바뀌자 택시는 다시 달려 나갔습니다.

어느새 요금은 1000엔대를 넘어가더군요.

동행한 사람은 전혀 일본어를 할 줄 모르니 답답해 할 뿐이었고, 이미 약속에 늦어버린지도 10분은 족히 지났습니다. 이미 정시도착의 가망은 없어진 것입니다. 운전수가, 전차를 타지 왜 굳이 비싸게 택시를 탔냐고 그러더군요.

갈아타기 시간 문제도 있고, 어차피 본부의 위치가 역에서 내려서 걸어갈 거리는 아니라고 하니까, 동쪽출구에서 택시를 타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저는 자동차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전에는 닛산 세드릭 택시를 탔는데, 이번에는 도요타 크라운을 탔다고, 크라운은 처음인데 역시 좋다고, 둘 다 뒷바퀴굴림이라서 가속시에 허리 언저리를 밀어주는 기분이 좋다고 하니까 운전수가 웃으면서, 바로 그 재미로 후륜구동을 타는 것이 아니겠냐고 대답했습니다.

드디어 빅꾸카메라 본부의 간판이 보이고, 정문에 세워 달라고 했습니다.

요금은 2010엔. 그래서 1천엔 지폐 두장과 10엔 동전 한 개를 내밀었더니, 10엔 동전을 도로 제 손에 쥐어주면서, 덕분에 빅꾸카메라 본부의 위치도 알게 되었고, 젊은 사람과 재미있게 이야기해서 또 좋았다고 하면서 10엔은 안받을테니 그냥 2000엔으로 해주겠다 하더군요. 이번에도 영수증을 받았습니다. 2010엔 영수라고 찍혀있는.

그리고 내리면서 택시면허증을 봤습니다.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지요.

면허취득일자가 19.10.8.

즉 쇼와 19년 10월 8일, 서력으로 고치면 1944년 10월 8일이었습니다.

메이지 때에 면허를 취득한 사람이 지금 살아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다이쇼 연도에는 19년이 없고, 지금은 헤이세이 18년이니까 당연히 미래에 면허를 따서 현재로 돌아온 것도 아니고, 서력이라 하기에도 이상하게 보이더군요.

1944년에 면허를 취득했을 것 같으면 적어도 1926년생? 80대의 택시운전수였습니다.

어쩐지 백발이 많고, 구사하는 어휘에 약간 예스러운 것이 많다 싶었는데.

 

도착했을 때에는, 먼저 온 사람들과의 회의가 다 끝났고, 어차피 공간이 협소에서 더 올 필요가 없었다는 말을 듣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났습니다. 결국 굳이 하지도 않을 일을 하라고 해서, 온갖 고생을 해서 왔는데 와 보니 상황종료라고 해서 허탈함이 짝이 없었습니다. 잔뜩 화가 난 채로, 먼저 갔던 사람들에게 전화를 했더니, 고생했다고 같이 이케부쿠로에서 저녁먹자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안 와도 될 걸 왜 오라가라 그러냐고 힘 들어간 목소리로 대답하니, 동행한 사람이 옆에서, "형 덕분에 일본 택시체험도 하고, 나름대로 좋은데요. 영수증 발급이랑 자동문도 좋았고, 비싼 요금 받을만 하네요. 이제 이케부쿠로로 가죠?" 라고 말리는 식으로 목소리를 내네요.

 

이렇게 도쿄에서 두 번 택시를 탔습니다.

택시를 타는 일이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니지만, 이 두 번의 경험은 아마 평생 가도 못 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