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만날 상대는 사브 9-5다.

사브는 양산메이커가 아니다. 9-3와 9-5를 주축으로 라인업을 이루며 강한 개성을 내세워 시장에서 그 존재를 인정받는 브랜드가 사브다. '나인파이브'와 '구다시오'. 누군가 9-5를 보면서 “구다시오”라고 읽었다. 나이파이브와 구다이오는 뉘앙스의 차이가 크다.

활처럼 확 휘어진 앞 윈드실드, 날개를 단 것 같은 리어 스포일러로 특징되는 구형 사브 900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지금의 사브는 낯설 지 모른다. 이그니션키를 엉뚱한 곳에 배치하고, 송풍구에 격자판을 겹쳐 놓고, 항공기의 메커니즘을 차근차근 자동차로 옮겨 놓는 등 엉뚱하면서도 발랄한 상상력이 사브의 매력이었는데, 지금의 사브에서는 이런 게 잘 찾아지지 않는다고 어떤 이는 말한다. 엉뚱함은 사라졌고, 차분하고 규격화된 모습과 성능으로 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사브 뉴 9-5 에어로를 탔다. 에어로는 리니어, 아크, 에어로로 이어지는 9-5 시리즈 중 톱모델이다.

▲디자인

과거 사브의 디자인은 시대를 한 발 앞서는 선구자적인 면이 있었다. 북유럽 특유의 멋이 강한 개성으로 표현됐다. 그러나 GM이 사브의 주인이 되면서 ‘시대를 앞서는 디자인'은 사라진 듯하다. 시대에 발맞춘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정신없이 바뀌고 변하는 시대의 속도가 사브의 변화보다 더 빠른 탓이다.

9-5의 외형을 보고 있으면 사브가 과거에 그 처럼 강한 개성을 자랑했던 메이커인 지 의심이 들 정도다. 정형화된 세단의 모습 그대로 얌전하게 앉아 있다.

헤드 램프와 리어 램프의 세련된 변화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선글래스를 쓴 듯 헤드 램프에는 검정색이 얇게 덧칠됐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세세한 변화들이 보인다. 후드, 페시아, 펜더, 트렁크 등이 달라졌다. 실내의 인스트루먼트 패널에도 변화가 있고, MP3를 들을 수 있는 오디오 시스템 등이 눈길을 끈다. 계기판과 센터페시아에는 초록 글씨가 뜬다. 눈이 편하다. 검정색으로 일관성있게 구성된 인테리어 컬러는 차분해 보인다.

▲성능

운전석에 앉으면 편안함이 찾아등다. 시트가 좋아서다. 운전자의 몸을 편하게 지지해준다. 꽉 조이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흔들리는 몸을 나 몰라라 내버려두지 않고 적절히 받쳐준다. 등과 옆구리를 잘 지지해줘 운전하는 동안 차의 흔들림이 실제보다 작게 느껴졌다. 시트 하나만 제대로 잘 만들어도 차의 성능은 실제 이상으로 좋게 느껴지는 법이다.

직렬 4기통 터보엔진에서 터지는 파워는 8.5초만에 시속 100km를 넘긴다. 고성능이라기보다 무난한 성능이다. 그러나 고속으로 갈수록 가속력은 죽지 않고 살아난다. 시속 140km를 넘기면서도 오히려 탄력이 더해지는 것 같다. 차들이 함께 달리는 전용도로에서도 약간의 여유만 있으면 시속 180km를 밟기가 어렵지 않다. 고속에 갈수록 차가 단단해지고 빛을 발한다. 5단 수동 겸용 자동변속기의 톱기어인 5단 기어비가 1대1이다. 오버 드라이브를 허용하지 않는 흔하지 않은 세팅이다. 덕분에 힘있는 가속력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연비는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기어비가 1대1 이하로 떨어지는 오버 드라이브 상태로 달리는 게 연비에는 좋지만 이 차는 그 게 불가능하다.

보어와 스트로크가 90mm로 똑같은 스퀘어 엔진은 압축비가 9.3대 1이다. 압축비를 조금 높이든지, 톱기어의 변속비에 오버 드라이브를 적용하든지, 그 것도 아니면 터보를 생략하든지 하면 연비를 조금 더 좋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차의 공인 연비는 8.9km/ℓ로 3등급에 해당한다.

수동 모드로 운전하면 2단에서 100km/h 에 이른다. 레드존에 들어서는 6,000rpm에 이르도록 변속하지 않고 밀어붙이면 엔진이 한참 몸살을 떤다. 3단에서 차의 속도는 160km/h에 이른다. 거칠어도 좋다면 2, 3단만으로도 충분히 움직일 수 있겠다.

터보엔진이지만 확연하게 터보가 느껴지는 건 아니다. 확 터지는 터보파워 대신 저속에서도 강하게 잡아끄는 듯한 엔진힘이 마음에 든다.

▲경제성

9-5 최고급 모델인 에어로의 가격은 7,460만원이다. 그 아랫급인 아크는 6,660만원, 2.0 ℓ엔진을 얹은 라이너는 5,440만원이다. 9-5는 유럽산 중형 세단으로 스스로 자존심을 내세울 만한 차다.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스스로의 몸값을 더 낮추고 적극적인 태도로 시장에 나선다면 판매성적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아질 수 있다.

연비는 앞서 밝힌 대로 8.9km/ℓ 수준이다. 요즘같은 고유가시대에 이 차의 성능을 제대로 느낄려고 가속 페달을 팍팍 밟다가는 주유소를 자주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