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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그의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아버지는 6.25 전쟁 때 지뢰를 밟아 한쪽 눈을 잃고, 팔다리를 다친 장애 2급 국가유공자였다.

 

6.25 참전용사의 가족에겐 영광보다 상처가 훨씬 컸다.

 

이국종은 중학생이 될 때까지 학교에 국가유공자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받을 수 있는 조금의 혜택보다 속된 말로 '병신의 아들'이라는 손가락질이 더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하루는 아버지가 그를 불렀다.

 

약주를 하면 언제나 신세를 한탄하던 아버지는 그의 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

 

" 미안하다.. 국종아.. "

 

계속 그 말만 수없이 반복했다.

 

그런데 그 말이 이상하게 어린 그의 마음을 울렸다.

 

한번은 어머니가 동사무소에서 군인에게 지급하는 밀가루를 머리에 이고 오던 중

 

그것을 떨어뜨린 일이 있었는데 남의 눈을 피해 밤 시간에 다니다 발을 헛디딘 것이었다.

 

모자 (母子)는 땀을 뻘뻘 흘리며 바닥에 떨어진 밀가루를 주워 담았다.

 

그러다 어린 그의 가슴이 울컥했다.

 

세상이 장애인과 그 가족에게 너무 비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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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크면 아픈 사람에게만큼은 함부로 대하지 않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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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인터뷰 기사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