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갑작스럽게 입문용 모터사이클에 대한 관심에 불이 붙었다. 원인은 혼다 CT125의 국내 출시. 기존 슈퍼커브와 완전히 다른 독특한 디자인에 빠져 홀린 듯 홈페이지를 뒤졌다. 자연스럽게 1종 보통 면허로 운전할 수 있는 다른 125㏄ 이하 모터사이클까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다만 변속기 없는 스쿠터는 제외했다. 출퇴근 용도가 주 목적이라면 스쿠터를 골랐겠지만, 퇴근 후 또는 주말 라이딩을 나설 땐 매뉴얼 모터사이클의 손맛이 아른거릴 게 분명했다. 추가로 신차 출고는 아직 이르다고 판단해 중고 매물로 눈을 돌렸다. 그렇게 겨우 2달 만에, 대학생 시절 한눈에 반했던 SYM 울프 노스텔지아의 키를 손에 넣었다. 그야말로 속전속결이었다.


당시 구매 후보를 추리면서 든 생각은 125㏄ 이하에서도 은근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점이었다. 언더본과 클래식, 네이키드, 레플리카 등 거의 모든 카테고리를 접할 수 있다. 그중 눈에 띄는 입문용 매뉴얼 모터사이클 8종을 골라 크기와 성능, 초심자를 위한 편의장비 등을 가격 순서대로 정리했다.


① 혼다 슈퍼커브(Honda Super Cub)

첫 번째는 빠지면 섭섭한 국민 모터사이클 혼다 슈퍼커브다. 2017년 누적 생산량 1억 대를 돌파한 모델로, 오랜 세월 변하지 않는 외모와 타고 내리기 쉬운 언더본 타입 차체, 클러치 조작이 필요 없는 변속기가 특징이다. 특히 왼발만으로 쉽게 변속할 수 있는 자동원심식 4단 변속기는 가감속이 잦은 시내에서 기어 조작 부담을 확 낮춘다.


이러한 장점들 덕분에 초심자에게는 물론, 여성 소비자에게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연비도 착하다. 1L당 무려 65㎞(시속 60㎞ 정속 주행 시)에 달하는 극강의 연비를 자랑해 주유소 들어갈 일이 적다. 외관을 꾸밀 애프터마켓 파츠도 다양하며, 오너끼리의 커뮤니티가 활발해 필요한 정보를 쉽게 주고받을 수 있다.

슈퍼커브의 시트고는 740㎜로 무난한 편. 무게도 100㎏으로 상당히 가볍다. 브레이크는 앞뒤 각각 디스크와 드럼 방식. 연동 브레이크 시스템은 들어가지 않았다. 계기판 하단에는 현재 기어 단수를 띄워 초보자들도 허둥대지 않도록 배려했다.


② 부캐너 125(Buccaneer 125)

부캐너(Buccaneer)는 꽤 생소할 수 있는 기종이다. 정확한 제조사명은 중국의 룽쟈(Longjia). 그러나 국내 수입사인 한국모터스를 통해 들어오며 모델명인 부캐너로 통용하고 있다. 2019년부터 부캐너 125와 250 두 가지를 판매 중이다. 영국에선 렉스모토의 템페스트(Tempest)라는 이름으로 출시하는 등, 다양한 국가에서 브랜드 로고를 바꿔 판매하는 모델이기도 하다.


이 차의 1등 매력은 ‘디자인’이다. 클래식 모터사이클을 찾는 소비자들에게 선호도가 높다. 원형 헤드램프와 바깥으로 드러난 프레임. 근육질의 연료통, 스포크 타입 휠 등은 추가 튜닝이 필요 없을 만큼 디자인 완성도가 높다. 차체 중간 높이까지 올라온 배기 머플러는 부캐너 125만의 아이덴티티. 적당한 임도 주행이나 모토캠핑에도 잘 어울린다.

‘중국산’이라는 꼬리표에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적어도 조립 품질은 괜찮은 듯하다. 국내 출시 이후 자잘한 고질병 외에 큰 결함 사례는 아직 들리지 않았다. 실제 차주들은 개성 있는 스타일과 배기량 대비 만족스러운 배기음을 부캐너 125의 장점으로 꼽는다. 시트 높이는 755㎜. 앞뒤 디스크 브레이크와 브레이크 연동 시스템, 기어 단수 표시 기능 등 ABS를 뺀 모든 안전·편의장비가 들어갔다.


③ KR모터스 아퀼라 125(KR Motors Aquila 125)

세 번째는 국산 대표 크루저 미라쥬의 후속 모델, 아퀼라 125다. 제조사는 KR모터스. 1978년 효성기계공업으로부터 시작해 S&T를 거쳐, 2014년부터 KR모터스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배기량의 모터사이클을 판매하고 있다. 엔트리 모델 아퀼라 125는 동급 유일 2기통 V-트윈 엔진을 얹어 차급 이상의 존재감을 자랑한다.

최고출력은 13.9마력. 공차중량 165㎏으로 무게당 출력비는 그리 뛰어나지 않다. 크루저라는 성격에 맞춰 여유롭고 느긋하게 달릴 때 아퀼라 125의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난다. 앞 120㎜, 뒤 150㎜ 타이어 폭 덕분에 주행 안정감도 높다. 불규칙한 요철이나 노면에 홈을 파놓은 도로도 비교적 편안하게 지날 수 있다.


시트 포지션은 710㎜로 낮다. 앞뒤 디스크 브레이크 연동 기능을 챙겼으며, 디지털 계기판으로 기어 단수를 확인할 수 있다. 크루저 장르에 입문하고자 하는 일명 ‘바린이’들에게 딱이다.


④ 몬디알 힙스터 125(Mondial Hipster 125)

이번에도 생소한 차종이다. 바로 몬디알의 힙스터 125다. 1929년 창립한 몬디알(Mondial)은 1940~1950년대 모터사이클 레이싱에서 10회나 우승했던 이탈리아 제조사다. 특히 125㏄와 250㏄ 클래스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1979년에 생산을 중단했다가, 2000년대까지 여러 번 회사 주인이 바뀌는 어려움도 겪었다. 이후 2014년, 창립자의 후손 피에를루이지 보셀리(Pierluigi Boselli)를 주축으로 몬디알을 다시 일으켰다. 이때 그려낸 프로토타입의 결과물 중 하나가 힙스터 125다.


힙스터 125도 감성적인 이태리 디자인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금빛 프론트 서스펜션과 컬러 TFT 계기판, 두 갈래로 뽑아낸 업 머플러, 수랭식 엔진 디자인까지 125㏄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멋스럽다. 약간의 오프로드 주행을 염두한 깍두기 타이어도 기본으로 들어간다. 생산지는 중국. 엔진은 아프릴리아의 125㏄ 유닛이다.

앞뒤 디스크 브레이크와 브레이크 연동 시스템, 2 채널 ABS 모두 들어가며 선명한 계기판에서 기어 단수도 확인 가능하다. 시트고는 795㎜로 살짝 높아 키가 작은 분들이라면 직접 앉아보길 바란다.


⑤ 혼다 CT125(Honda CT125)

혼다 CT125는 ‘헌터커브’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1961년 슈퍼커브의 파생형(C100H)으로 나온 모델로, 불필요한 커버를 전부 떼어낸 뒤 엔진을 보호할 스키드 플레이트를 달았다. 험로에서도 거뜬한 색다른 슈퍼커브의 탄생이었다.


지금의 CT125는 슈퍼커브보다 휠베이스가 길고 지상고(170㎜)도 높다.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머플러는 허리까지 바짝 올렸으며, 공기 흡입구 위치도 높게 자리했다. 앞 서스펜션 스트로크는 C125보다 10㎜ 늘린 110㎜. 이를 통해 오프로드에서 적극적으로 충격을 흡수한다. 튼튼한 금속 언더가드도 기본 사양. 대형 리어 캐리어에는 캠핑용 짐을 한가득 올릴 수 있다.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추가 액세서리도 한가득이다. 꾸며 타는 맛은 오늘의 후보 중 1등이다.

그렇다면 단점은? 일단 가격이다. ‘커브’라고 얕봤다가는 489만 원이라는 가격표에 입을 다물지 못할 수 있다. 계기판은 디지털 방식이지만 기어 단수 표시가 없다. 그럼에도 폭발적인 수요로 인해, 지금 당장 주문해도 출고 시기를 장담하기 힘들다.

⑥ 스즈키 GSX-R125(Suzuki GSX-R125)

헌터커브를 구매할 예산을 들고 스즈키 매장을 방문하면 GSX-R125를 만날 수 있다. 혼다 CBR125R이 없는 지금, 국내에서 125㏄급 신차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 바이크다. 풀 카울과 세퍼레이트 핸들 등으로 최상위급 레플리카와 흡사한 라이딩 포지션을 완성했다. 785㎜의 시트고 덕분에 발 착지성도 괜찮다. 최고출력은 15마력. 무게도 135㎏로 가벼워 운동 성능에 대한 평가가 훌륭한 편이다.

안전·편의장비는 어떨까? 우선 앞뒤 디스크 브레이크에 ABS를 모두 적용했다. 이마저도 경량화해 ABS 모듈 무게를 0.59㎏로 줄였다. 풀 LCD 계기판은 엔진 회전수와 속도, 기어 포지션 등 정보를 큼직하게 띄운다. 참고로 복합연비는 1L당 41.2㎞. 날렵한 생김새 치고 꽤 효율이 좋다. 반경 1m 안에서 편리하게 시동을 걸 수 있는 스마트키도 준다.

⑦ 혼다 CB125R(Honda CB125R)

CB125R은 2017년 데뷔한 ‘네오 스포츠 카페’ 콘셉트 모델. 엔진 카울이 없는 네이키드 차체에 미래지향적 디자인 포인트를 섞었다. 해당 시리즈에서 막내를 담당하고 있지만, 외모 자체는 상위 모델인 CB300R과 비교해도 크게 뒤처지지 않는다. 디자인부터 엔진 성능까지 혼다 125㏄ 이하에서 가장 다이내믹한 차종이다.


다소 높은 시트고(815㎜)는 130㎏의 가벼운 몸무게로 상쇄한다. 앞뒤 ABS는 기본. 여기에 관성측정장치(IMU: Inertial Measurement Unit)를 달아 ABS가 한층 정교하게 작동하도록 만들었다. 두툼한 타이어도 마음에 든다. 앞뒤 각각 110/150㎜로, 레플리카 스타일 GSX-R125(90/130㎜)보다 듬직하다. 54㎞/L의 높은 연비도 장점.

이제부턴 ‘구매 예산’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500만 원이면 상태 좋은 쿼터급 중고 모터사이클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운전 숙련도와 디자인 취향, 원하는 장르를 꼼꼼히 따져 선택해야 후회 없이 즐길 수 있다.


⑧ 허스크바나 스바르트필렌 125(Husqvarna Svartpilen 125)

마지막은 허스크바나의 스바르트필렌 125다. ‘필렌(Pilen)’ 시리즈는 스크램블러 타입 스바르트필렌(Svartpilen)과 카페레이서 장르의 비트필렌(Vitpilen)으로 나뉜다. 그중 스바르트필렌 125는 지난해 4월 투입한 따끈따끈한 막내. 그런데 엔진을 들여다보기 전까진 250 및 401과 구분하기 어렵다. 형님들과 차대를 포함한 많은 부품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주요 장비는 앞뒤 WP APEX 서스펜션과 바이브레(Bybre, 브렘보의 자회사) 브레이크 캘리퍼, 보쉬의 ABS 정도. ABS를 ‘슈퍼모토’ 모드로 바꾸면 리어 휠만 ABS를 비활성화해, 임도에서 뒷바퀴를 미끄러트리며 달릴 수 있다. LED 램프와 피렐리 스콜피온 랠리 STR 타이어, 연료탱크 상단 순정 러기지 랙까지 기본이다. 빼곡한 사양의 대가는 ‘550만 원’이라는 가격표다.


835㎜라는 높은 시트고 역시 감당해야 한다. 키 170㎝ 이하 라이더라면 정차 중 양발 착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행히도 146㎏의 부담스럽지 않은 무게 때문에 초보자도 다루기 쉽다는 평가가 대다수다. 이쯤에서 고민에 빠질 수 있다. 2종 소형 면허를 취득한 뒤 쿼터급을 구매할 수도 있는 금액이다. 용도와 운용 기간을 충분히 고려한 뒤 접근하길 추천한다.

각양각색 8가지 매뉴얼 모터사이클. ‘수동’이라는 점에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변속에 대한 막막함은 곧 기계를 다루는 즐거움으로 변한다. 모든 손과 발을 움직이고, 몸을 기울여 방향을 바꿀 땐 자동차에서 절대 느낄 수 없는 재미를 누릴 수 있다. 이번 봄, 마음에 드는 모델 하나를 골라 매뉴얼 모터사이클에 입문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