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예상하지 말 것

글/사진 양현용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미 890어드벤처를 통해 경험해 볼만큼 경험해 본 차량 구성에 약간의 변주와 17인치 휠이 주는 차이라면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트에 올라 딱 5분 만에 생각은 완전히 리셋 되었다.



SMT는 이름 그대로 슈퍼모토 투어러를 의미한다. 이미 KTM 990 SMT를 통해 정의한 바 있는 장르다. 990 SMT는 투어러 치곤 선득하게 날이 서 있는 바이크였다. 켄타우로스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디자인과 강력한 엔진, 그리고 가벼운 무게가 만드는 날렵한 운동성능은 화끈함과 동시에 이것이 과연 투어러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모델이었다. 890 SMT의 출시소식에 옛 990SMT의 재기발랄함을 기대했지만 막상 공개된 차량은 890 어드벤처의 변주에 지나지 않는 수준으로 보였다. 그래서인지 막상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앞서 국제 미디어테스트에서 미리 경험해 본 윤연수 기자가 정말 재밌다고, 꼭 타봐야 하는 바이크라고 칭찬을 늘어놨다. 이어진 국내 출시와 더불어 발빠르게 시승차가 준비되었다는 소식에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테스트를 진행했다.


실물이 낫다

사진으로만 보다 실물을 접하니 의외로 경쾌함이 눈에 들어온다. 높게 장착된 프런트 펜더와 날렵한 실루엣이 슈퍼모토 스타일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헤드라이트는 어드벤처와 동일하지만 헤드라이트 아래 작은 비크를 달아 좀 더 날렵한 느낌을 더했다. 프런트 펜더 역시 SMT전용으로 날렵하게 뽑았다. 디자인은 취향에 갈린다곤 하지만 슈퍼모토 스타일과 투어러가 적절히 믹스된 콘셉트에는 잘 어울리는 디자인이다. 다만 컬러는 조금 아쉽다. 전통적인 KTM 디자인 문법은 따르고 있는데, 좀 더 화사하고 컬러풀한 요즘 KTM의 분위기가 아닌 5~6년 전의 KTM 컬러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첫인상에서는 마음을 크게 움직이지 못했다. 찬찬히 뜯어보니 다른 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언뜻 휠 말고는 890 어드벤처에서 크게 고친 부분이 없는 것 같지만 의외로 연료탱크 둘레는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졌다. 연료탱크는 좌우 분리되어 아래까지 쳐진 부분을 중간에서 잘라냈으며 대신 위쪽 높이를 높여 연료탱크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오프로드와 달리 극단적으로 프런트에 무게를 싣는 일이 없기 때문에 시트 앞쪽을 높여도 문제가 없다. 그 영향으로 차체의 무게중심이 훅 높아졌다. 이게 완전히 다른 핸들링 감각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특히 무게가 종아리 근처에 집중되어 있는 느낌의 890 어드벤처와 달리 SMT는 두 무릎 사이에 무게중심이 위치하는 느낌이라 내가 원하는 대로 다루기에는 오히려 더 편했다. 시트에 앉으면 풋패그 높이가 살짝 낮게 느껴지고 핸들바를 비롯해 차량 앞쪽이 낮게 느껴진다. 사실 풋패그의 장착 위치가 바뀐 것이 아니라 휠이 작아지고 지상고가 낮아진 반면 시트는 살짝 높아져서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핸들바와 프런트 높이 역시 그대로지만 상대적으로 낮게 느껴진다. 특히 윈드쉴드 높이가 낮아서 전면의 개방감은 슈퍼모토의 느낌 그대로다. LC8c엔진은 890 듀크 R의 121마력 사양이 아닌 어드벤처와 같은 105마력 사양이다. 낮은 회전에서 토크 향상과 엔진 회전질량을 늘려 어드벤처 주행에 최적화한 엔진이다. 그래서 슈퍼모토 성향에 어울릴지 걱정했는데 이 역시도 기우였다. 차체가 더 가벼워지고 무게중심은 높아지니 특유의 토크감이 훨씬 크게 느껴진다.


재미의 영역

와인딩은 탁월하다. 주행을 곱씹어보면 속도는 아주 빠르진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재밌다. 좌우로 훌쩍훌쩍 바이크를 기울이며 달리는 것은 손에 딱 맞는 길이의 칼을 휘두르는 것처럼 경쾌하게 코너를 잘게 썰어가는 느낌이다. 프론트 포크의 옵셋 변화로 휠베이스가 살짝 짧아졌는데 핸들링의 경쾌함은 그 이상이다. 이 바이크가 890어드벤처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SM(슈퍼모토)과 T(투어링)를 합친 모델이라고 했을 때, 어드벤처 혈통답게 투어링에 방점이 찍힌 모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냥 슈퍼모토 바이크다. 엔진의 민첩한 반응과 넉넉한 토크, 스로틀만 열어주면 자연스레 올라오는 프런트 휠과 제동 시 치켜드는 꼬리까지 슈퍼모토답게 화끈한 움직임들이다. 또한 각 부의 작동이 부드럽고 서스펜션 움직임은 스트로크가 길고 적당히 무르지만 이해하기 쉬운 움직임을 보여준다. 전후 180mm의 긴 트래블은 어지간해서 한계를 드러내지 않는다. 덕분에 꽤나 거친 움직임에도 서스펜션이 사뿐사뿐 받아주는 느낌이 묘하다. 높은 한계를 가지기에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여유의 폭도 넓다. 이런 서스펜션 특성이 어떤 상황에서든 차량이 무섭지 않도록 다듬는다. 가벼운 움직임과 안정감이라는 상반된 특성이 하나의 바이크에 담겨있다. 그만큼 다루기 쉽고 출력이 넉넉하니 매 순간 도전의식을 고취시킨다. 그래서 상당한 자제력이 필요한 바이크다.

코너를 돌아나가며 스로틀을 크게 열어 탈출하면 아무렇지 않게 프런트 휠이 허공으로 떠오르는데도 전혀 무섭거나 불안하지 않았다. 오히려 스로틀을 더 열어서 다음 코너 앞까지 프런트휠을 띄우고 가버리게 만든다. 그만큼 주행의 재미 면에서는 최근에 타본 어떠한 바이크와 비교해도 압도적이다. 미들 클래스를 넘어 리터급까지 아우르는 말이다. 무슨 바이크가 이렇게 재밌나 싶을 정도다. 경량의 빅싱글 슈퍼모토의 재미와도 영역이 다르다. 순정 브레이크의 성능도 꽤나 만족스러웠다. 이전에는 조금 아쉬운 성능을 보여주던 호따후안 캘리퍼는 이제 세팅 면에서 개선되었는지 제동 성능 자체도 훨씬 만족스럽다. 특유의 강한 초기 제동력과 하이그립 타이어, 고성능 서스펜션이 조합되니 꽤 높은 제동력과 더불어 다루기 쉬워진 느낌이다. 최신 모델답게 전자장비의 혜택은 거의 다 누릴 수 있다. 퀵시프트는 상하로 깔끔하게 작동하고 차체 기울기에 대응하는 트랙션컨트롤과 ABS시스템이 적용된다. 그런데 솔직히 이야기하면 테스트 내내 퀵시프트를 제외한 전자장비의 개입을 최소로 설정하고 탔다. 차체 밸런스가 좋고 한여름의 열기가 데워준 순정타이어의 그립은 한계가 상당히 높아 전자장비의 도움 없이도 불안해지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투어러 ?

운동성능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지만 여전히 투어러로서의 성능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분명 포지션은 편하고 바이크 역시 부드럽게 다루면 매끄럽게 움직여 큰 스트레스가 없는 건 사실인데 타면 탈수록 애초에 그렇게 타라고 만든 바이크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다. 16리터 남짓의 연료탱크 사이즈도 투어러치고는 넉넉하지 않은 사이즈다.특히 낮은 윈드쉴드와 바싹 서는 상체 덕분에 에어로다이내믹은 고려되지 않은, 결론적으로 투어러로서의 안락함은 기대하기 힘든 구성이다. 물론 윈드쉴드를 높은 옵션 제품을 달면 해결되긴 하겠지만 네이키드에 큰 윈드쉴드 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애초에 “재미없는 투어는 가지 마!” 라고 이야기하는 느낌이랄까? KTM 역시 이를 의식한 듯 이 바이크의 카테고리를 트래블이 아닌 1290 슈퍼듀크 GT와 같은 스포츠 투어러 장르로 분류하고 있다. 처음에는 그게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타보고 나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물론 대용량의 전용 투어링 케이스도 옵션으로 제공된다. 뒷부분은 890 어드벤처와 동일한 구조라 거의 모든 옵션을 그대로 달 수 있다. 이것도 결국 취향 문제이긴 하지만 이번 SMT에는 바이크의 성능을 희생시키는 옵션은 추가하고 싶지 않다.


함부로 예상하지 말 것

KTM은 브랜드 고유의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한 독특한 디자인이나 선명한 오렌지컬러의 브랜드까지 확실히 매니악한 성향을 지니고 있다. 다들 가는 길을 따라가기보다는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갈 테니 너희가 따라오라는 자신감도 엿보인다. 그만큼 호불호도 크게 갈리는 브랜드다. 그런데 890 SMT를 타보면 그 자신감의 근원이 확실히 보인다. 이렇게 재밌는데 어떻게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내 예상은 마구 빗나갔지만 오히려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이렇게 스펙이나 차체 구성으로는 예상하지 못하는 재미가 있다는 것이 바로 시승이 필요한 이유다.




나비와 벌을 넘나들다

글 윤연수 사진 손호준

남들이 정해놓은 틀을 벗어나 코너를 미끄러지듯 진입하고 비상식적인 R값을 그리며 코너를 탈출한다. 윌리와 잭나이프는 기본 덕목처럼 자연스럽다. 원동기와 쿼터급 머신으로 가득한 영암 카트 트랙에서 890 SMT의 큰 덩치를 잊은 채 자유롭게 누볐다.



지난 5월, 이탈리아 사르데냐에서 890 SMT 시승을 마치고 국내 출시를 손꼽아 기다렸다. 시승 행사에서 200km가 넘는 와인딩 로드를 달렸지만, 레이싱 슈트를 입지 않은 것이 정말 후회스러울 정도로 코너링 성능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영암 카트 트랙에서 890 SMT의 드높은 한계를 경험했다.


편안함 속 빠른 움직임

전후 긴 스트로크의 서스펜션은 제동과 가속에 쉽게 반응한다. 스로틀을 열거나 브레이크 레버를 당길 때마다 거친 힘이 슬쩍 다듬어져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전달된다. 라이더가 조작에 대한 부담을 한껏 덜어낼 수 있고 더 과감한 스로틀, 브레이크 조작이 가능하다. 미니 트랙 특성상 타이트한 코너가 연속되는데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다. 서스펜션의 댐핑은 초반부터 중반부까지 가볍게 움직이다가 후반부에서 탄탄하게 받쳐낸다. 글로 풀어냈기 때문에 이 순간이 길게 느껴질 수 있는데 정말 한순간에 불과하다. 그만큼 편안함 속에서 빠른 반응성, 움직임을 경험할 수 있다. 노면 상태가 고르지 않은 곳에서도 강점이 두드러진다. 스트로크가 넉넉한 만큼 웬만한 요철에는 차체가 불안정해지지 않는다.


바이크를 더 높은 페이스로 몰아붙일수록 수준 높은 기본기가 돋보인다. 순정 미쉐린 파워 GP 타이어는 주행 마일리지와 높은 선회 한계를 고려한 고성능 타이어로 서킷 주행에서도 부족함이 없다. 좌우 뱅킹의 한계까지 내 집 드나들 듯 편안하게 반복할 수 있고 스로틀이 과감해져도 꿋꿋하게 아스팔트를 붙잡는다. 조금씩 뱅킹을 더하다 보니 알루미늄 풋패그가 갈리기 시작한다. 솔직히 말하면, 당연하게도 내 부츠의 토 슬라이더가 긁히는 줄 알았다. 890 SMT의 최저지상고는 227mm로 매우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는 두 가지를 의미한다. 깊은 뱅킹에서의 차량 안정감과 높은 한계다. 필요에 따라 프런트의 압축과 신장을 별도로 조절할 수 있고 리어 쇽은 프리로드와 리바운드를 조절할 수 있다.


체중에 맞게 리어 프리로드를 더 걸어주면 다시 한 번 높아진 한계가 펼쳐진다. 여기에 더불어 9단계로 조절할 수 있는 트랙션 컨트롤이 라이더의 기량을 커버한다. 개인적으로는 9단계부터 한 단계씩 내리며 그 차이를 느껴봤다. 타이어의 성능이 높은 만큼 부드럽게 선회하는 동안은 제대로 개입조차 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로틀을 과하게 열면 5인치 TFT 계기반에 TC 램프가 깜빡이며 개입을 알린다. 브랜드 설명에 따르면 9단계가 레인, 7단계가 스트리트, 5단계가 스포츠 수준이라고 하니 이를 감안하고 설정하기 좋다. 또 놀라운 건 날렵한 핸들링과 회두성이다. 차량 중량은 194kg으로 형제 모델인 890 어드벤처보다 15kg 가볍다. 그런데 실제 성능은 그 이상으로 가볍게 느껴지고 프런트 휠이 방향을 트는 순간 꼬리가 매끄럽게 따라온다. 나비처럼 가볍게 코너를 들어가고 빠져나올 땐 벌처럼 간결하다.


SMt? smT?

새로운 890 SMT에 대한 첫 번째 질문이었다. 슈퍼모토의 성향을 극대화했는지 투어링의 성향을 극대화했는지. 결과적으론, SMT가 맞다. 두 가지의 성향 모두 아주 적절하게 녹여냈다. 슈퍼모토처럼 가볍고 파워풀한 면이 있으면서도 편안하고 다루기 쉽다는 게 그 이유다. 분명히 커다란 덩치에 알맞지 않은 미니 트랙이었는데 하루 종일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즐겼다. 그리고 단 한 번도 불안한 포인트가 없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KTM 890 SMT

엔진형식 
수랭 DOHC 병렬 2기통 보어×스트로크 90.7 × 68.8(mm) 배기량 889cc 압축비 13.5 : 1 최고출력 105hp / 9,000rpm 최대토크 100Nm / 6,500rpm 시동방식 셀프 스타터 연료공급방식 전자제어 연료분사식(FI) 연료탱크용량 15.8ℓ 변속기 6단 리턴 서스펜션 (F)43mm텔레스코픽 도립 (R)싱글쇽 스윙암 타이어사이즈 (F)120/70 ZR17 (R)180/55 ZR17 브레이크 (F)320mm더블디스크 (R)260mm싱글디스크 전장×전폭×전고 미발표 휠베이스 1,502mm 시트높이 860mm 차량중량 194kg 판매가격 2,160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