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버터블에 얽힌 이야기 하나. 몇 년 전인가 선배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올림픽도로를 달리던 중이었다. 선배의 차는 기아 카니발이었는데 앞에서 벤츠 카브리올레 한 대가 지그재그로 가고 있었다. 경적을 몇 번 울렸는데도 앞의 차는 아랑곳없이 우리 차의 진행을 방해했다. 화가 난 선배가 그 차의 옆을 통과해 앞지르기를 하려는 순간 벤츠 카브리올레의 지붕이 열렸다. 차 안에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녀가 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운전 틈틈이 키스를 하는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애정행각에 정신이 없었다. 한성질(?)하는 선배, 급히 컨버터블 앞으로 끼어들어 차의 속도를 급격히 줄였다. 뒤차도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서 선배는 깊숙이 가속페달을 밟았다. 카니발 배기구에서 시커먼 배기가스가 뿜어져 나왔다. 뒤따르던 컨버터블 속의 남녀는 그 매연을 고스란히 들이마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 최근 소문난 자동차 매니아인 연예인 후배와 술을 한 잔 했다. 내 차는 매니저가 먼저 가지고 갔고, 후배는 차 때문에 술을 마실 수 없다며 음료수만 마셨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해서 후배의 차에 올랐다. 차는 사브 9-3 컨버터블이었다. 후배는 “친구와 차를 잠시 바꿔 타고 있는데 컨버터블이어서 너무 좋다”고 흐뭇해했다. 올림픽도로를 따라 김포공항 방면으로 가는데, 갑자기 나타난 덤프트럭 3대가 우리 차를 가로막았다. 운전실력이 뛰어난 후배가 트럭들을 제치고 앞서 나가려고 했지만 집채만 한 트럭 3대를 앞지르기란 쉽지 않았다. 후배는 몇 번의 경적을 울렸다. 그러자 앞서 가던 3대의 트럭 모두가 속도를 줄였다가 급발진했고, 시원스럽게 지붕을 열고 달리던 우리는 3대의 트럭에서 나오는 배기가스를 온몸으로 뒤집어썼다. 몇 년 전 벤츠 컨버터블 속의 남녀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이야기. 지난 5월 어느 일요일, 매니저가 빌린 BMW Z3를 타고 강원도 속초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내가 고집을 부려 영동고속도로가 아닌 미시령을 넘어 국도를 따라 서울로 향하고 있었는데, 인제쯤 이르러 교량공사 하는 곳을 지나게 되었다. 꼬불꼬불한 길은 공사 때문에 편도 1차선으로 줄어 있었고, 앞에는 수십 대의 군용 트럭이 가고 있었다. 트럭들의 평균시속은 30~40km. 갑갑증을 느낀 매니저가 추월을 하려 했지만 중앙선을 넘어가며 적어도 20대가 넘어 보이는 트럭을 추월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던 매니저가 2대의 트럭을 추월해 우리의 차는 트럭들 사이에 끼게 되었다. 추월 당한 트럭이 라이트를 번쩍였지만 매니저는 또다시 추월을 노리고 있었다. 그 순간 군용 트럭 2대가 동시에 경적을 울렸다. 지붕이 열린 컨버터블에서 듣는 경적소리란! 그 엄청난 소리에 너무나 놀라 하마터면 오른쪽 벼랑으로 떨어질 뻔했다. 나는 앞으로도 어지간하면 컨버터블을 타지 않을 생각이다. 젊은이들에게는 꿈같은 차겠지만, 내게는 너무나 끔찍한 기억만 남긴 악몽의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