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보배에 차구입하려고 어플깔고 한번글써봤다가
오랜만에 다시들어오니 이런저런 재밌는 썰들이많아서 요새 보배에 푹빠져있네요. 제가 드릴 이야기가 별거아닐수있겠지만 학창시절 경험해 본 아주 마음 따듯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배움이없어서 글이 좋지않을수있어요 미리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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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는 요즘과 같은 쌀쌀하고 눈도오던 2006년 12월 말 크리스마스 전후쯤으로 기억하네요. 저는 강원도 인구2만의 아주작은 시골에서 태어나 어릴땐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있고 주변엔 온통 산으로 둘러쌓여있던 곳이였네요. 2000년도 초반이였지만 겨울이면 교실한가운데 석유난로가 있었고 장판이 아닌 나무로된 마룻바닥이였습니다. 마을자체에 놀거리가없어 공기. 팽이. 꽝꽝언 논위에서 스케이트타기 등등 그당시 도시지역의 학생과는 천지차이였던 셈이죠^^.. 겨울이면 석유난로위에 김치볶음밥 도시락을 층층히올려 데워먹던게 아직도 생각이 납니다.

2000년도 초반의 학교였지만 시골특성상 학교에 연세많은 선생님들이 많으셨고 초등학교 2학년부터 뺨맞고 바닦에 머리박고 하키체로 흠씬 맞던 교권이 아주 높았던 때같네요. 시간이 얼마 흐른거같지않은데 글쓰다보니 세상이 많이 변했구나 느낍니다^^..

강원도 산골에 인구 2만의 작은 마을에서 어리면서 가장 우선시 배워왔던점은 어른공경이 우선이아니였나 싶어요. 동네분들 모두 성함은 모르지만 누구집 누구자식 또는 옆집에 사돈등 서로서로 너무 다 잘알고있는 동네였기때문에 행실이 바르지 못하면 여기저기 소문이 하루아침에 퍼지고 행여 문제가있어 숨기고자하면 부모님 귀에 소식이 5G시대인 요즘보다도 빨랐던거 같습니다.

그날 제 기억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시골사람이라 어린나이에도 출세를 위해 또는 대학진학을 위해 학원생수 10명의 작은 학원을 다니고있었을 때에요. 학교수업을 마치고 저녁 8시에 학원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길이였습니다. 마을중앙 은행앞에 큰로타리가 하나있는데 겨울이면 군고구마. 군밤. 붕어빵. 작은포차 등 두세개의 길거리 노상점이있었어요. 전날 눈이 살포시와서 갈가에는 눈이쌓였고 손에 입김 호호불면서 집으로 걸어가던길에 그때 당시 제기억으로 연세가 일흔정도 되시는 할아버지께서 붕어빵 장사를 하고 계셨었죠.

칼바람 사이로 날라오는 붕어빵굽는 냄새가 얼마나좋던지.. 학원마치고 집으로가던 8시 10분쯤이면 항상 그 붕어빵할아버지 지나갔는데 한번은 너무 먹고싶어서 하루용돈 2천원을 몽땅 붕어빵에 투자하기 일수였습니다.

약 한달에 열번이상은 방문했던거같아요. 처음에는 할아버지와 인사도 주고받지않고 붕어빵만 사서 들고가면서 먹고 집에도착해서 부모님도 드리고 했는데 방문한지 한달정도 지났을때쯤 할아버지께서 저에게 말씀을 걸어오셨습니다. 무뚝뚝하신분 일줄 알았는데
학원다녀오는거니? 저녁은 먹고 붕어빵 먹는거니? 오늘날씨가 많이 춥지? 등 안부를 물어봐주셨고 제 친할아버지 많큼 상냥하고 인정으로 감싸주셨어요. 지금과 같던시기 크리스마스에는 붕어빵 값도 받지않으시고 크리스마스 선물이니 오늘은 공짜다 맛있게먹고 내일 지나가다가 들려서 오뎅국물 마시고가라고 하시더라구요.

저도 받음이 너무 감사하고 마음이 따듯해서 옆 마트에서 따듯한 꿀물. 커피등을 몇번 드렸더니 학생이 돈이어딨냐면서 혼내셨던 기억도나네요. 그렇게 두달정도를 붕어빵 할아버지와 하루에 10분 20분 서로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고 저는 지혜롭고 인정많은 어르신을 알게되었다고 속으로 너무 좋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슈크림붕어빵을 먹기위해서 기쁜마음에 붕어빵 할아버지에게 향했고 어느날과 다를거없이 할아버지 저왔어요!!!
하고 인사를 하려던 찰나.. 할아버지의 모습이 평소와는 너무 다름을 알게되었습니다. 제기억으론.. 그 추운겨울 식은땀을 흘리고 계셨고 어쩔줄모르는 손과 몸 떨고계셨던거로 기억하네요. 창백한 안색.. 너무 놀라 할아버지께 여쭸습니다.

할아버지 무슨일 있으세요?...
그러더니 할아버지가 대뜸 저에게
학생 미안한데 붕어빵기계 잠깐만 지켜줄수 있겠어?
손녀가 크게다쳐서 병원이라는데 내가 이걸 정리하고 갈수가없어 금방 돌아올테니까 잠깐만 지켜줘, 붕어빵 다먹어도되 금방올게 하시고선 앞치마 장갑도 벗지않으신채로 불편하신 다리를 이끌고 달려가시더군요..

저는 어린나이에.. 이게무슨일인가.. 집에가야되는데 갑자기 뛰쳐나가시다니.. 금방 돌아오시겠지? 하고 붕어빵 굽는쪽으로가서 기계를 보고있었어요 아니 슈크림 붕어빵를 보고있던게맞죠..

구워져있는 붕어빵은 얼추 20개.. 내가살건 많아야.. 7개..
날은 춥고 붕어빵은 식어가고 돈통에는 오늘 판매하신 붕어빵값 단돈..3천원... 참 많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좋은자리라 장사잘하시고계시는줄 알았는데 기계에는 다찢어진 신발.. 요즘 책상에 올려놓는 선풍기보다 작고 오래된 온풍기하나.. 측은하더군요 저에게는 항상 밝은 어르신일뿐이였는데..
할아버지는 한시간이 지나도 오지않으셨고 저는 그때서야 제가 살 붕어빵을 사서 챙기고 남은 붕어빵을 지키고 있을때였습니다. 번뜩 생각이 들더군요 이붕어빵 내가 다 팔아야겠다!

학원마치고 집에간 친구들을 저녁9시가 넘어서 전부 불렀습니다. 붕어빵을 거의 강매했다고 해야되나요 ㅎㅎ
친구들은 자초지종을 모르기에 제모습을 보고 비웃었고 저는 좋지않은 일임을 직감했기에 설명없이 붕어빵이나 사고 가라며 친구들을 재촉했습니다. 친구들도 집에다 가고 벌써 시간이 10시...
고민했습니다 부모님도 집에서 걱정하고 절 기다리고 계시기때문에.. 할아버지를 더기다려야되나.. 아님 경찰에 신고라도 해야하나.. 그러다 그냥 제스스로 가게를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리어카위에 있던 붕어빵기계라 정리가 어렵지는 않았아요 촌놈이라 그런건 잘했던거같네요 기계 가스를끄고 꽁꽁 싸매서 리어카를 온힘을다해 끌어 길옆에 딱붙여놓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자꾸 마음이 무겁더군요.. 다음날 학교마치고 학원땡땡이치고 할아버지에게 향했습니다. 기계가 걱정이되기도 했구요. 안계시더군요.. 기계는 그위치 그대로였고 기계위에는 눈이 쌓여있었습니다.

집옆에 파출소로 향했어요 누군가에게는 고물이겠지만 할아버지에게는 큰재산이였으니까요. 경찰분께 설명을드리고 기계를 넘겨드리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일주일넘게 할아버지를 뵙지못했어요.
붕어빵도 너무먹고싶어서 다른집가서 먹었는데 정말 맛없더라구요

그렇게 할아버지 걱정이 무뎌딜때쯤 학교 1교시수업중에 학생주임이 저를 불러냅니다. 교무실에 붕어빵 할아버지와 경찰분이 계셨네요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붕어빵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자마자 펑펑울었습니다. 지금생각해보면 안도의 눈물이지않았을까합니다. 그날 할아버지에게 사건날의 소식을 들었고 손녀가 사고가나서 큰병원에 입원을했는데 할아버지 혼자 손녀를 키우고 계셔서 자리를 비울수없었다고 하시더군요.. 경찰분이 제게와 말씀해주시길 손녀분이 세상을 떠났다고 하시더라구요.. 또 울었습니다 지금도 글쓰는데 자꾸 눈물이나려하네요;;

할아버지께서는 고맙다고 하시며 학교정문에서 이틀간 붕어빵을 무료로 제공해주셨고 학교학생들은 쉬는시간이면 나가서 붕어빵을 먹었습니다. 그뒤로 붕어빵 할아버지는 저에게 작별인사하시면서 붕어빵은 더이상 팔지못할거같다 건강도 그렇고 ..등등 너무 고마웠었다는 말씀을 전하시고는 사라지셨습니다.

지금생각해보면 마음적으로도 좋지않으셨을거같아요 손녀를보내고 매일 손녀같은 학생들을 본다고 생각하니..

시간이지났습니다. 제나이 30살.. 두번째 직장을 그만두고 시골에 내려왔습니다. 관공서에 취직했네요.. 업무끝내고 자동차정비를 위해 수리맡기고 부모님계시는 집에 걸어가던길 아니죠.. 내가 어릴적부터 걸어왔던길을 다시걸어가봤습니다. 어제 날짜 12월 20일 저녁 8시 크리스마스 전후 생생하네요.. 그때 그 기억과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어디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돌아가셨을수도있구요 제나이 30이지만 산타크로스가 없다는것도 알고있지만 저는 제마음속에 산타가 한분 계십니다.

뵙고싶네요 묻고싶구요 그간 잘지내셨는지 아니면 하늘에서는 평안하신지를요. 감사했다고 꼭 전해드리고싶은데 그럴수가없어 마음이 더 아파오는 크리스마스 전후입니다.

보배드림에계신 모든분들이 올해도 따듯한 겨울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시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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