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가 없는 것 같아 보여도 의미가 제법 큽니다. 마일드 하이브리드의 목적은 풀 하이브리드의 엄청난 단가를 들이지 않고, 타협할 만한 수준의 효과를 누리는 것입니다. 당연히 풀 하이브리드 만큼 연비가 좋지는 않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두는 것 보다는 연비와 배출가스에서 득이 있습니다.
우선 전기 소모량에 있어 전기가 동력에 사용되기 시작하면 잡아먹는 양이 엄청나게 큽니다. 회로 돌리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져요. 따라서 기존 자동차에 달려있는 스타트모터나 터빈, 파워스티어링 펌프 같은 것들은 현존 12V 시스템으로는 전동화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가벼운 차들은 C-MDPS로 전동화 전환이 가능했지만 무거운 차들은 완전히 전동화 되지는 못했죠.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의 장점은 보다 높은 전압을 사용하기 때문에 엔진의 동력을 잡아먹는(= 연비 악화, 배출가스 증가) 위와 같은 것들 나머지를 전동화 시킬 수 있습니다. 작고 가벼운 차들은 간혹 12V 마일드 하이브리드인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폭스바겐 그룹이 있고, 생각보다 국내에 판매되는 모델도 이 저가형 마일드 하이브리드를 달고 나온 모델이 제법 있습니다. 피아트에는 6V 마일드 하이브리드도 있습니다.
위에 나열한 장치들 중에서 스타트모터가 가장 중요합니다. 스타트모터는 크랭크샤프트에 붙어서 엔진이 정지 상태일 때 전기를 이용하여 엔진을 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기존 스타트모터는 시동을 거는 그 순간에만 필요한 것이고, 전기를 이용해 스타트모터에서 엔진으로 에너지를 써버리는 단방향 작용만 합니다. 그리고 발전기가 있죠. 엔진 시동이 걸리기 전에는 아무 역할을 하지 않고, 시동이 걸린 후에는 엔진의 구동력을 이용하여 전기를 발전합니다. 스타트모터와 정 반대입니다. 이처럼 역할이 서로 상반되는 두 물건이 무게와, 공간과, 저항을 유발하는 장치인 셈입니다.
마일드 하이브리드에서는 스타트모터와 발전기를 통합하여 엔진 구동력을 이용한 전기 발전도 하고, 반대로 엔진의 시동도 걸어줄 수 있는, 양방향으로 에너지가 작용하는 스타트모터-발전기 통합 모듈로 합쳐져 있습니다. 이 덕분에 벨트 걸어서 돌아가는 장치 하나가 줄어 구동력 저항 줄였죠, 그만큼 연비 늘었죠, 배출가스 줄였죠. 장치 두 개 들어갈 것을 하나로 줄였으니 엔진룸에서 잡아먹는 공간 줄였죠.
일례로 그간 엔진룸 공간 부족으로 직렬 6기통의 엄청난 장점에도 불구하고 V6를 사용하던 벤츠가 다시 직렬 6기통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비결에 이 마일드 하이브리드가 있습니다. 각종 장치들을 단순화 시켜 발전기 같이 엔진 한 쪽 끝에서 공간을 잡아먹던 것들이 사라지니 그만큼 공간이 여유로워져서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장점도 있고요.
스타트모터는 마일드 하이브리드 이전부터 정지 상태의 엔진을 시동이 걸릴 만큼의 회전수에 도달 시킬 정도로 파워가 상당합니다. 시동만 거는데 쓰기 아까운 셈이죠. 마일드 하이브리드에서는 이 스타트모터의 힘을 마치 풀 하이브리드 차들에서 모터 어시스트가 들어가듯 이 출력을 엔진 힘에 보태줍니다. 위에 많은 분들께서 언급하셨는데 시동이 부드럽게 걸리는 것은 그저 하나의 어부지리일 뿐..
결정적으로, 풀 하이브리드에서는 아예 별도로 모터를 달아버린 경우가 많은 만큼, 모터도 비싸고 강한 것이 들어가고, 모터가 강하니 의미 있는 어시스트 내지 EV 모드 주행이 가능하게 하려면 덩달아 배터리 용량이 커야 합니다. 그냥 다 비싸고 강한 하이브리드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엔진 크랭킹 정도 가능하게 하는 스타트모터 정도로는 잡아먹는 전기가 많지 않으니 배터리가 큰 것이 들어갈 필요도 없습니다. 싸게 만들 수 있는 하이브리드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효과가 미미하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20마력만 되어도 어지간한 서민들 타는 소형차 정도는 정지 상태에서 상당히 높은 속도까지 끌어올릴 힘이 충분합니다. 그리고 이 정지 후 출발 저속 구간이 연비며 배출가스가 가장 많이 배출되는 구간입니다.
따라서 마일드 하이브리드는 가장 알짜 비용을 들여서, 가장 알짜 효과만, 가장 중요한 운행조건 구간에서 뽑아내는, 나름 나쁘지 않은 타협책입니다.
하지만 이 마일드 하이브리드는 주로 유럽에서만 달려 나오고 있습니다. 당연히 각 지역의 환경 관련 규제의 강도 내지 세제 차이에 따른 현상이고요. 북미에서도 있기는 하지만 어차피 유럽이 고향인 메이커들이 어차피 유럽 내 판매분에 장착이 필요하니 북미에도 떼어내지 않고 파는 경우거나(상대적으로 원가에 덜 민감한 유럽산 고급차들이 많음), 램 픽업트럭의 경우 20년이 다 되어가는(= 효율이 과거에 머무르는) 3.6 펜타스타 엔진과, 이제는 단종되어 없긴 하지만 20년이 넘어버린 헤미 5.7 엔진을 갈아엎고 완전히 새로운 엔진을 개발하는 비용을 들이는 대신, 마일드 하이브리드를 달아 해결하는 편을 선택했죠.
참고로 마일드 하이브리드는 아우디 SQ7 TDI가 2016년 세계 최초로 내놓았었는데, 우리나라 제네시스 3.5 eS/C 엔진과 같이 터빈만 마일드 하이브리드로 전환한 방식이며, 스타트모터와 발전기 통합형으로 본격 엔진의 동력에 개입하는 방식은 2017년 르노 세닉이 세계 최초입니다. 세부 제조사로 파고들면 컨티넨탈 덕분인 것으로 알고 있고요, 희한하게도 르노는 이른 출발을 해놓고도 이후로 마일드 하이브리드를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원가에 민감한 저가형 차량에서는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를 사용하지 않고 더 저렴한 방식을 택한다고 위에서 말씀 드렸었는데, 저가형 차량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비싼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를 적용하고 있는 메이커는 포드와 현대가 있습니다. 일본차 메이커 뭐 하나 더 있었는데 이건 기억이.. 아무튼 국산차 최초는 2019년 경 i20으로 알고 있습니다.
단점은... 고장이 문제죠. 여태까지 자동차 파워트레인의 에볼루션은 규제에 의해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이 시도 되었지만, 이 마일드 하이브리드 만큼 문제를 크게 터뜨리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벤츠가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도입에 있어 선봉에 있던 메이커인데, S클래스 W222 페리부터 W223 초기까지 극심한 고장에 시달린 사례를 많이 봐왔습니다. 전자제어가 깊이 관여하는 장치라서 오일 잡아먹는 엔진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해결책이 필요 합니다.
아울러, 각각 따로 존재하던 스타트모터와 발전기를 통합했다는 것은, 이제 이거 하나가 고장 나면 기능은 두 가지가 동시에 고장나는 셈입니다. 부품 하나의 가격이 월등히 비싼 것은 당연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