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혼다 슈퍼커브


 슈퍼커브를 구매하게 된 건 소위 말하는 ‘뽐뿌’였다. 스마트폰 최저가를 수소문하는 그 커뮤니티에서 비롯된 건 절대 아니다.

 

 처음 구입을 고려했던 이륜차는 푸조 장고였다. 베스파 같은 여느 유럽의 스쿠터지만, 새파란 스포츠 블루 컬러가 너무나도 매혹적이었기 때문이었고, 이는 주변인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장고를 구매하려면 소위 ‘장고(長考)’를 해봐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개인적으로 친한 형이자 가까운 친구 사이인 지인은 같은 기간, 슈퍼커브를 고려하고 있었다. ‘이거 그냥 배달오토바이 아니야?’ 하는 생각이었는데, 동그란 헤드램프와 와이어 스포크 휠이 얼마나 클래식해보이고 예뻤는지, 얼마 있지 않아 덜컥 구매를 결정했다.

 

[사진] 혼다 슈퍼커브 (디스크 브레이크와 캐스팅 휠)

 


■ “배달 오토바이? 사실은...”

 

 혼다코리아는 국내 시장에 레드, 그린, 베이지 등 총 세 종류의 컬러를 론칭했고, 최근 국내에만 자체적으로 출시한 블루 컬러를 한정판으로 판매하고 있다.

 

 처음 결정한 색상은 그린 컬러였는데, 재고가 없어 고른 건 베이지 색상의 슈퍼커브였다. 근데 웬걸. 인터넷에서 군침을 흘리며 봤던 와이어 스포크 휠이 아니었다. ‘오직 한국 고객들만을 위한’ 사양으로 적용된 캐스팅 휠이란다.

 

[사진] 1958년형 커브


 그간 국내 시장에서의 슈퍼커브는 배달 등 비즈니스 목적의 상용 비중이 높았기에, 화물 적재와 그에 따른 강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와이어 방식의 휠 보다 이쪽이 더 튼튼하다는 게 혼다 측의 설명이다.

 

 처음 출고받아 동네에 온 날, 동네 죽마고우들에게 놀림감이 되기에 아주 좋았다. 혼다 오토바이를 산다고 해서 CBR 같은걸 기대했는데, 이 친구들이 보기엔 그저 영락없는 배달 오토바이로 보였기 때문이다.

 

 승용 목적으로 슈퍼커브를 타는 라이더들은 한 번쯤 들어봤을 말이리라. 하지만 그 만큼 다재다능하다는 반증이기도 한데, 이는 최초의 커브 설계 지침이 그대로 실현된 결과다.

 

[사진] 대림혼다 DH88 (슈퍼커브 라이선스 모델)


 혼다기연공업의 창립자 혼다 소이치로, 그리고 당시 전무였던 후지사와 타케오는 일본의 도로 상황을 고려한 4마력 이상의 출력, 쉽게 승하차할 수 있는 차체 설계, 클러치가 필요없는 변속 시스템, 신선하면서도 친근하고 시대를 초월할 수 있는 디자인을 설계 지침으로 지시한 바 있다.

 

 특히, 혼다는 “국수를 배달하는 소년이 한 손으로 운전할 수 있는 모터사이클”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슈퍼커브가 최초 설계 당시부터 편의성을 중점에 두고 만들어진 모델이라는 점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배달 오토바이’로서 익숙한 스타일링인 탓에, 커브는 간혹 대림자동차가 생산하는 ‘씨티100’으로 오해 받기도 하지만, 씨티 시리즈의 원류는 슈퍼커브다. 최초의 씨티 시리즈는 혼다 슈퍼커브의 라이선스 생산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사진] 혼다 슈퍼커브(일본 내수형)

 

 

■ 환갑 맞은 슈퍼커브

 

 2012년에 선보여진 JA10 모델은 각진 헤드램프 디자인을 갖고 있지만, 올해 새로 출시된 2018년형 JA44 모델은 원형 테일램프를 갖춘 것이 특징이다.

 

 때문에 클래식한 인상은 배가됐지만, LED 광원을 적용해 에너지 효율과 시인성을 높였음은 물론, 근래의 기조를 적극적으로 따르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 혼다 슈퍼커브 (LED 헤드램프)


 일본 내수용 모델에 적용되는 와이어 방식의 스포크 휠이 적용되지 않는 건 아쉽지만, 국내 시장에 판매되는 슈퍼커브는 캐스팅 휠과 함께 전륜 디스크브레이크가 기본 사양으로 제공된다. 화물 적재를 고려해 휠의 강성은 물론, 제동성능을 높이기 위한 차원이다.

 

 그간 상용 목적의 비중이 높았지만, 혼다코리아는 신형 슈퍼커브를 들여오며 다양한 옵션 사양도 선보였다. 프론트 바스켓과 ‘베트남 캐리어’로 불리는 센터 캐리어 등의 실용적 구성은 물론, 언더시트 엠블럼과 스티커, 윈드실드, 리어시트, 크롬 커버 등 승용 목적을 염두한 커스터마이징 사양 구성도 함께 갖췄다.

 

 일본에서 제공되는 편의사양과 비교한다면 턱없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일본 내수용 엠블럼을 가공해 부착하거나, 와이어 스포크 휠을 달고, 보다 큰 윈드실드와 크롬 도금이 된 원형 사이드미러를 장착하는 등 일본에서 제공되는 순정 파츠를 공수해오고 있는 추세다.

 


 심지어는 자동차용 도료를 이용, 국내에선 판매되지 않는 컬러로 직접 차체를 도색하는 차주들 까지 등장하고 있다. 국내에서 만날 수 있는 옵션과 컬러가 더 다양해져도 되는 이유다.

 

 

■ 만족스러운 경제성..시티 커뮤터로서 제격

 

 모터사이클에 입문하게 된 건, 단순히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서였다. 기름값을 더해 아무리 계산해봐도, 슈퍼커브를 타고 다니는 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 보다 저렴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만족스러운 건 연비. 시속 60km 정속 주행 시 리터당 62.5km를 주행한다는 게 혼다 측의 설명이다. 집에서 사무실까지, 평균 20km를 주행하고 있으니, 1리터를 다 태우려면 단순 계산 상으로 3일을 타야하는 셈이다.

 

 가솔린을 가득 채워봐야 5000원 남짓인 기름값으로 일주일 이상을 타고 다니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자동차를 탈 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1250원을 내고 타는 시내버스 기준, 이틀 간의 출퇴근 비용 만으로 일주일을 타고 있으니, 돈이 아껴진단 느낌이 확 와닿는다.

 

 109cc의 배기량을 지닌 공랭식 OHC 단기통 엔진은 최고출력 9.1마력, 0.9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체중에 따라 다르겠지만, 74kg의 기자가 타고 다니기엔 어떨 때는 빠르다고 느껴진다.

 

[사진] 혼다 슈퍼커브 (결국 스티커로 도배했다)


 변속도 편리하다. 원심식 4단 리턴기어는 왼쪽 발목의 움직임 만으로 기어를 변속할 수 있게 하는데, 스쿠터의 편안함과 수동 기어 특유의 재미를 동시에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은 큰 매력이다. 클러치를 조작할 필요가 없으니, 시동이 꺼질 염려가 없다는 점은 덤이다.

 

 1단 기어는 시내에서 사용하기에 다소 부담이다. 언덕을 올라야 한다면 유용하겠지만, 스로틀을 조금만 개방해도 깜짝 놀랄 정도로 튀어나간다. 3단은 물론, 4단에서도 꾸역꾸역 바퀴를 굴려나갈 정도니, 출력에 대해선 의심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속도계와 기어 표시등, 주유 경고등이 없는 연료 게이지로 표시된 계기판엔 각 속도 구간마다 기어의 임계점이 표시되어있다. 그렇다고 이 구간까지 몰아붙이지는 말자. 단기통 엔진의 특성상 쥐어 짤수록 정말 안쓰러운 소리가 난다. 하루면 일정 정도에서 올라오는 진동 만으로 변속 시첨은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사진] 혼다 슈퍼커브 (일본 내수용 엠블럼 부착)


 키 181cm의 성인 남성 기준, 시트 포지션을 잡을 경우 책상 의자에 앉아있는 듯한 자연스러운 자세가 연출된다. 엉덩이만 걸친 상태에서도 땅바닥은 발에 충분히 닿기 때문에, 오토바이라기 보단, 자전거 쪽에 조금 더 가까운 자세로 운전할 수 있다.

 

 불과 9마력 남짓의 출력이지만, 전혀 느리지 않다. 직선 구간에서 풀 스로틀로 전개할 경우 규정 속도인 80km/h는 우습게 넘어가기 일쑤다. 다만, 이에 상응하는 소음과 맞바람, 진동 때문에 속도를 높일 엄두는 나지 않는 게 사실이다.

커브의 공차중량은 109kg, 이제 막 모터사이클에 입문한 단계라 하중의 이동과 코너링에 대한 기술은 부족하지만, 아주 익숙한 포지션으로 편하게 운전할 수 있는 특성 상 몸을 기울이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을 요구하지 않는다.

 

 


■ 더 다양한 커브를 만날 수 있기를

 

 국내엔 110cc 사양의 모델만이 소개되고 있지만, 해외 시장에선 50cc 엔진을 탑재한 ‘리틀커브’부터 상용 목적에 특화된 ‘슈퍼커브 프로’, 어드벤쳐 타입의 ‘크로스커브’, 125cc 엔진이 적용된 C125 등 다양한 파생 라인업이 갖춰져 있다.

 

 실제로 다수의 커브 동호인들이 국내에 판매되고 있지 않은 모델들을 해외에서 직접 들여오고 있는 한편, 완전히 새로운 바이크를 만들어버리는 ‘커스텀’ 작업에 돈을 아끼지 않는 동호인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국내에선 가장 보편적인 형태를 갖춘, 누구나 편하게 탈 수 있는 성격의 모터사이클이지만, 그 만큼 다양한 소비층의 니즈도 존재한다. 더 이상 슈퍼커브는 배달 오토바이가 아닌 이유다.

 

 슈퍼커브는 엔진오일 대신 식용유를 넣어도 잘 굴러간다는 신화같은 내구성, 그리고 크게 체감할 수 있는 연비, 누구나 편하게 탈 수 있는 설계 구조와 부족함 없는 성능까지, 마니아에게도, 모터사이클 입문자에게도 잘 어울리는 모델임은 분명하다.

 

 고객의 가까이에서 제품을 만들고, 모터사이클의 편리함과 즐거움을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하자는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의 철학은 슈퍼커브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박홍준 기자 hjpark@dailycar.co.kr

출처-데일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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