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쓴글은 아니지만 너무 안타까워 이글 복사해 올립니다. 글 쓴 이: 김영순(50세 주부) 메일주소:: kyoungszz@naver.com 연 락 처: 011-9067-2336 I.들어가며 도대체 국방의 의무란 무엇이란 말입니까? 군을 믿었습니다. 국가수호를 위해... 저는 국가에서 ‘믿고 맡겨 달라, 정성껏 잘 보살펴 주겠습니다.’ 라는 말만 믿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젊고 꽃다운 나이의 두 아들을 2002년 5월과 10월에 군대에 각각 모두 보냈습니다. 전시도 아닌 지금, 군부대의 방치로 망신창이가 되어 부모의 품으로 돌아온 아들을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그 아픔을 꿈엔들 생각했겠습니까? 두 번 다시 제 아들과 같은 아픔이 재발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글 쓰는 재주는 없지만 너무나 억울하고 억장이 무너져 여자의 몸으로 두 아들이 현역으로 군복무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군과 싸움을 해야 했던 22개월 동안의 사연을 글로 올려 하소연할까 합니다. II. 사건의 발단 제 큰 아들은 22살이 되던 2002년 10월 14일 입대하여 03년 1월 29일 강원도 원주시 36사단 통신대대 중계중대에 자대 배치되어(당시 일병) 복무하는 도중 03년 7월 15일 ~ 24일까지 정기휴가를 왔었으며 복귀하면서 03년 8월 1일 ~ 10월말까지 3개월간 산꼭대기 파견근무라면서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런데 03년 10월 16일 부대에 있는 통신대대 주임원사로부터 아들의 치아가 손상이 되었으니 부대로 급히 와달라고 하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당시 아들의 자대 지휘관이었던 통신 대대장의 말인즉 03년 9월 15일 파견소에서 선임 엄병장으로부터 일병인 제 아들이 맞아서 앞 윗니 2개가 빠졌으며, 대대장 본인도 회식할 때 이 사실을 알았다며 한달이 지난 10월 16일 합의를 봐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대대장은 아들의 1년 남짓 남은 군 생활을 거론하였고, 합의를 빨리 해줘야 내무반에서 왕따를 안 당한다며 앞으로 남은 군 생활 잘 보살펴주겠노라.'고 말했습니다. 또 가해자의 집 형편을 거론하며 대대장과 간부들이 돈을 걷어 낼 상황이라며 합의를 하라고 종용하였습니다. 어찌할 줄을 모르던 중 03년 10월 22일 아들의 남은 군 생활에 대한 염려와 ‘이빨 두개 빠진 것 정도라면 우리가 양보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라는 생각에 아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대대장의 말만 믿고 합의를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청원휴가와 종합검진을 요청하였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연기하다가 무려 2개월 후인 03년 12월 10일 에야 청원휴가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휴가 첫날 부대에서 집으로 오는 도중 아들은 눈이 안 보인다고 하였고 근처 안경점에서 일단 안경을 맞추고 다음날 안과에 가보자고 하였습니다. 그날 밤 제 아들은 온몸을 뒹굴며 숨도 못 쉬고 식은땀을 흘리며 아프다고 하여 병원에 갔더니 갈비뼈 8,9번이 골절되었다 하고, 다음날 안과에 갔더니 양측 원발성 개방우각 녹내장이란 알아 듣지도 못할 진단을 받았습니다. III. 선임병의 구타와 고문 아들의 말인즉 (파견근무 03년 8월 3일 ~ 9월 29일까지) 2개월 동안 관물대 청소가 부실하다, 씻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선임병(엄병장)으로부터 거의 날마다 구타당하였으며 입에 사탕을 가득 문채로 눈과 성기에 안티프라민을 바르고 20~30분 동안 버티게하는 인간이하의 고문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게다가 9월 15일 치아가 빠질 정도의 구타행위 이후에도 온갖 구실을 만들어 계속적으로 구타와 가혹행위 당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가해자인 엄병장은 부모를 포함하여 다른 사람에게 구타와 안티푸라민 등의 가혹행위를 말하면 남은 군 생활 끝날 때까지 괴롭힐 것이며 자신은 영창 갔다 와서 아들을 칼로 찌르고 다시 영창 가면 된다고 하며 협박하였다고 했습니다. 또한 9월 15일 이후 구타장면을 통신대대 소, 중대장이 목격하고도 격리조치를 하지 않고 도리어 얼차려만 주고 소대장은 자대로 내려갔다는 사실도 털어놓았습니다. 이러한 아들의 상황이 계속되는 구타와 가혹행위로 파견소 내 타 부대 병사들과 군 교회의 군종병과 군종참모에게까지 알려지자 다급해진 통신대대장은 파견소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하여 내일 순찰 중에 발견한 걸로 하라고 입을 맞추라고 지시하고 오겠다고 하였으나 나타나지 않았고, 아들은 울면서 도와달라고 대대장에게 전화까지 하였으나 도리어 바쁜데 兵이 지휘관에게 왜 전화하고 난리냐고 군기가 빠졌다고 화를 내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03년 9월 29일이 되어서야 통신대대 주임원사가 와서 고참과 제 아들은 자대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 속에서 아들은 이미 자아를 상실하고 상식과 이성이 통하지 않는 지옥 같은 군대 내에서 뭐든지 시키는 데로 해서 오로지 살아서 나가야겠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IV. 계속되는 구타와 가혹행위 그리고 지휘관의 합세 당시 아들의 자대 지휘관들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자대로 불러내려온 이후에도 둘을 격리시키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오히려 낮에는 공포분위기조성을 위하여 가해자와 단둘이 작업을 하게 하였으며 밤에는 중대장의 골방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아들을 고문이라도 하듯이 담배를 너구리 잡듯 피워가며 새벽4시까지 밤새도록 반성문을 쓰게 하였으며 상급부대로부터의 조사 시 허위 진술서를 작성할 것을 강요당했습니다. 당시 소대장은 구타와 가혹행위를 부모에게 발설할 시엔 기밀 누설죄에 해당하고 “군법예문”을 보여주며 영창8일에 해당된다고 협박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구타와 가혹행위가 군 기밀입니까? 그들은 또한 증거 인멸을 위해서 아들의 관물대를 뒤져서 혹시나 다시 붙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보관 중이던 구타로 인해 빠진 치아를 두 번씩이나 버리게 하고 “니가 이러고도 이 부대에서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며 피해자인 아들을 협박했습니다. 중대장은 한술 더 떠 아들은 파견소 근무 중 군무 이탈하여 취식물을 사온 것으로 꾸미라고 지시하였으며, 징계위원회라는 명목으로 타중대 간부들을 모이게 한 후 이러한 촌극을 각본대로 공연함으로서 아들을 사고뭉치와 고문관으로 만듬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주임원사를 시켜 중간을 오가면서 고참(엄병장)인 가해자가 불쌍하다며, “빨리 합의해라 그래야 너도 편하고 부대도 편하다. 너 때문에 미치겠다! 죽겠다.”며 회유하는 양동작전을 펼쳤습니다. 적과 싸울 때 써야 할 작전을 구타 가혹행위 은폐에 쓰는 곳이 21세기 대한민국군대입니까? 아무리 정상인이라도 군대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가해자와 군인답게 한가지 목적으로 똘똘 뭉친 군 지휘관들의 이러한 수달간의 행태에 아들은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 되었음은 물론 계속되는 세뇌작업에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조차 혼란스러워하는 정신착란까지 빠지게 되었습니다. V. 헌병대의 방조 결국 10월초 통신대대장은 훈련 중에 돼지를 잡아 회식하며 아들에게 술을 주어 치아 때문에 못 먹는다고 하자 그제서야 사건을 알은 듯 꾸며서 헌병대에 신고를 했습니다. 헌병대 수사관은 아들의 진술을 받을 적에 항상 관련된 중대장을 옆자리에 앉게 하였고 깨진 안경과 안경알파편을 증거물로 제시 하였으나, 주요사실이아니라며 진술받기를 거부하였고 구타와 가혹행위 내용 중 맞은 횟수를 말하면 확실히 횟수를 기억하냐며 재차삼차 물어 위압하여 그 내용을 축소하고 어떤 것은 아들의 발음이 정확하지 않다며 진술받기를 거부 하였습니다. 그 때의 아들의 모습은 두려움에 싸여 울먹이고 있었으며 겁에 질려서 “엄마, 하지마! 나 죽어! 나 남은 군 생활 어떻게 보내라고 그래, 복귀해서 차라리 죽어버릴까?” 하며 오히려 저더러 진정 민원을 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미 정상적인 성인의 판단력은 상실된 지 오래였고 깡패집단과도 같은 조직의 위력에 짓눌려 오로지 생존본능만이 남은 동물 같은 상태로 추락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과연 21세기 대한민국 민주군대의 현실이란 말입니까? VI. 국방부의 조연 그래서...전 03년 12월 18일 1차진정서를 국방부 인터넷 고발센터에 올렸습니다. 하지만 국방부 감찰부에서 온 답신은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왜곡된 회신 내용이었습니다.파견근무 2개월 동안에 매일 수시로 시간관계 없이 전신을 (얼굴, 가슴, 허벅지, 종아리, 장딴지, 어깨등) 전투화를 착용한 발과 주먹으로, 한번 때리면 20~30분 동안 구타를 가하여 시퍼렇게 멍이 들도록 구타를 당하였고, 얼차려의 한 종류인 원산폭격을 시킨 후 전투화를 착용한 발로 마구 차고, 전투복 상·하의가 다 벗겨져 발목까지 내려간 상태에서 업어치기를 하여 앞윗니 2개가 뿌리채 빠지고, 책을 던져서 쓰고 있던 안경도 깨지고, 수십 개의 사탕을 입에 가득 물게 하고, 안티프라민을 매일 수차례 눈과 낭심부에 바르고 20~30분 동안 만지지도 못하게 하고, 인간으로써 상상을 초월한 잔인하고 가혹한 구타·폭행·성폭력을 받았는데도 구타기간의 축소 및 사건왜곡은 물론, 2003년 9월 15일 치아 손실에 대한 합의 내용을 참고로 반의사불벌죄 및 공소권 없음의 내용으로 모든 사항을 종결시켜 항소조차 할 수 없게 만든 왜곡된 회신이 왔습니다. (이것은 결국 제 아들을 두 번 죽이는 결과였습니다.) -국방부 감찰부에서 조사중일때- 1차 민원이 조사 중일 때 아들이 깨어진 어금니 치아 쪼가리를 말하자 그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진술받기를 거부하고, 눈을 맞아서 잔상현상이 일어난 상황을 말하면 역시 그건 중요한 말이 아니라고 진술받기를 거부하다가 아들이 중요한 진술을 말하면 구두로만 진술을 받고 기록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에게 조사함에 있어 감찰조사장교는 일반 사병 조사하기는 처음이라고 하더니 12일만에 얼렁뚱땅 조사를 종결 시켜버리더군요. 게다가 조사 중일 때 군감찰조사장교로부터 저에게 전화가 왔길래 아들의 억울함을 밝혀 달라고 울며 호소를 했더니 감찰조사장교는 1년 남은 아들의 군 생활을 들먹였으며 피해자는 제 아들이 아니라 진짜 피해를 입은 사람은 소·중대장이라며 가정을 이끌고 사는데 불쌍하다고 하며 도리어 제 아들의 잘못이라고 말했습니다. VII 아들의 목소리 이 와중에 아들은 03년 12월23일 사단의무대 및 강원도 원주 국군병원과 의무대로 04년 2월 2일 입실하여 이리저리 다니며 진료와 처방을 받고 있던 중에 04년 3월6일 심장발작과 호흡곤란으로 국군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습니다. 응급실로 가기 전 아들과 간간히 주고 받았던 통화내용을 보면 얼마나 많은 고통과 싸워야 했는지 기가 막힙니다. ‘머리가 너무 아프고 조이는 것 같아.’ ‘엄마 왜 안왔어?’ ‘밖으로 나가 민간병원에서 몇 군데 진료 받아 검사 받아 보고 싶다!’ ‘미치겠다! 미쳐 버릴 것 같다!!’ ‘흑, 눈이 더 안 보이는 것 같아.’ ‘소리도 “악”하고 막 지르고 싶어.’ ‘마음이 이상해.’ ‘몸무게도 빠지고 식욕도 없고 괜히 불안하고 초조하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심장이 아프고 마구 뛰어! 엄마, 나 왜 그러지?’ ‘무서워, 엄마!’ ‘엄마! 귀도 아프고 멍멍해 어떻게 해?’ ‘아무하고도 말하고 싶지 않고 밤에도 잠이 안와!“ ”잠자면 꼭 그놈이 다시 올 것 같아!’ ‘허리가 너무 아프고 앉아있기 힘들어 속이 울렁이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아.’ 이런 말을 듣다보면 머리가 터져 버릴 것 같고 가슴이 메이고 숨조차 쉬기 힘들고 앞조차 잘 보이지 않고 말로는 표현 할 수 없는......... 부모 맘 아십니까? VIII. 엄마의 애원 저는 수차 부탁하고 애원했습니다. 후유증이 자꾸 발생하니 후송 보내달라고 부대에서 할 수 없으면 제가 민간병원에 데리고 나가 검사 받겠노라고. 그러나 인사참모와 의무대 군의관은 아들이 후송돼갈 정도의 상태(병)가 아니라고 걱정 말라고, 늘 하던 말이었습니다. 04년 2월 20일 - 전, 죄인처럼 그 부대 사단장님을 만나 아들의 몸 상태를 말하며 후송 보내달라고 애원하고 사정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벙커 안에서 무슨 짓을 해도 모른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을 뿐 잘 돌봐주고 있으니 걱정 말라 하더니, 3월 6일 의무대 34일 동안 치료도 없이 방치 속에서 국군병원으로 실려가 심장수술까지 하게 할 줄이야... 저는 한없이 울었습니다. 저희 같이 힘없고 배경 없는 부모의 자식들은 이렇게 억울하게 당해야 되나요? VIIII. 21세기 대한민국 민주군대의 답변 군부대 감찰장교는 ‘죽거나 자살한 사병에 비유하라고, 억울하면 인터넷에다 내서 호응을 받던지 부대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다 종결 되었으니 국가에 소송을 내던지 어머니 하고싶은대로 하라’는 말 뿐이었습니다. 원주 국군병원 병상일지를 보면 구타내용이 전혀 없는 각각 다른 허위기록이었고, 첨부한 진단서는 없어지고, 입원동기는 생활 중 질병에 의한 기록으로 되어있고, 그것도 환자진술에 의한 것으로 써 있었습니다. 2차로 재조사 민원을 04년 4월 13일 청와대 및 육군본부, 국방부, 국가인권위원회등 여러기관에 민원을 넣었습니다. 군대에서 ‘잘 보살피겠습니다 믿어 주십시오’라고 하는 것이 이런 겁니까? 온몸이 망신창이가 돼서 수도통합병원에 입원한 제 아들에게 군의관은 수술하기 전에 머리가 아프다고 말하여도 ‘니가 뭐가 아퍼.’라고 말을 하고, 4월 22일 아침 회진에 군의관은 병실사병들이 있는 가운데 환자의 기밀을 누설 인격모독을 주었고 아픔을 견디지 못해 여러 번 계속해서 아프다고 호소하면 그제서야 진통약만 주고, 허리가 아파서 제대로 앉아있지 못하고 심장수술이후 며칠동안 아침, 저녁으로 코피가 나오고 머리가 더 아프고 두 손을 꼭 잡고 있어도 옆 사람이 다 알정도로 손이 떨리고 하여도 군의관한테 말도 못하게 분위기 조성하는 곳이 군대였습니까? 04년 4월 27일 수술이후 수도통합병원에서 퇴원하여 군부대로 복귀하였으나 후유증으로 의무대와 군병원을 거쳐 수도통합병원에서 검사를 받게 되었고, 그 후로도 계속 심장악화로 군병원을 다니자 군부대에서는 3명의 간부들 인사참모, 통신대대장, 의무대장은 제 아들이 문제가 될까봐 부대에서 내보내려고, 구타사고원인인 것을 질병(선천성으로 인한 의병전역)에 의한 것으로 의무심사를 받게 하기위해 국군병원에 04년 6월 5일 통신대대장이 제 아들을 강제로 입원을 시켜버렸습니다. 제가 민간병원에서 검사 받아보겠다고 요청했으나 그것을 거절하고 군부대 3명의 간부들은 끝내 의무심사를 강요하였고, 사고로 인한 건데 왜 질병이냐고 싸인을 거부하고 부동의를 하자 군병원에서는 규정과 절차를 말하며 안과군의관은 만기희망으로 전역한다는 싸인을 강요하여, 아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 싸인을 하였고, 04년 10월 8일 아들에게 퇴원 명령을 내려 군부대로 복귀시킨 후 말년휴가를 주며 11월 5일 병장으로 진급, 11월 6일 아무런 조치와 치료도 없이 후유증으로 시달리는 아들을 안과군의관은 눈 →녹내장(선천성에 의한 질병)으로만 의무심사를 하여 신체등급 5급으로 구타와 가혹행위 및 폭행 사실을 은폐 축소하기 위하여 질병으로 강제전역을 시켰습니다. 03년 12월 23일 사단의무대를 거쳐 04년 10월 8일 군병원을 퇴원하기 까지 1년이 다 되도록 입원만 하고 있었을 뿐 치료다운 치료도 없이 합병증만 얻어 04년 11월 6일 강제로 전역을 하였습니다. X. 병신은 필요 없다 전역해라? ‘정성껏 돌보겠습니다’라는 말이 - ’03년 9월 15일 선임 엄병장의 구타로 치아 2개가 상실되었음. - ’03년 12월 11일 제 8, 9번 늑골골절, 우측 족관절 건초염 정형외과 - ’03년 12월 12일 양측 원발성 개방 우각 녹내장 안과 : 군병원에서 재진료 - ’03년 12월 23일 사단의무대로 입실 - ’03년 12월 24일 군병원으로 후송 - ’04년 2월 2일 정상 안압 녹내장 (점안약 처방) - ’04년 2월 2일 사단의무대로 입실 - ’04년 3월 6일 발작성 심실상성 빈맥 (군병원) : 심장 발작에 의해 응급실로 후송 - ’04년 3월 22일 수도통합병원 후송 : 발작성 심실상성 빈맥 재진료후 종합병원에 위탁하여 수술 - ’04년 4월 19일~04년 4월 21일(3일간)입원하여 심장수술 :종합병원 - ’04년 11월 6일 제대시까지 사단의무대 및 군병원을 입원ㆍ퇴원 반복 치아2개 상실에 눈 시신경을 다쳐 녹내장까지, 갈비뼈 골절에 안경이 깨지고 심지어 심장수술까지 받게 하고, 그 후유증으로 눈은 점점 시신경이 죽어가고 있고 심장이 조여오고 손이 떨리고 누군가 큰소리를 내면 불안해하고 가슴이 심하게 뛰어 어쩔 줄 몰라하는 제 아들처럼 만드는 곳이 군대랍니까? 이로 인한 후유증으로 목, 허리, 어깨, 턱 등 어느 곳 하나 멀쩡한 대가 없고 뼈는 휘어지고 각 신체부위에서 13개가 넘는 진단서가 나왔는데도 이 모든 진단내용을 의무심사에 올리지도 않았습니다. 전역이후 제 아들은 파견소 2개월 동안의 구타와 가혹행위로 악몽과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 정신과 치료까지도 지금 받고 있으며 왼쪽 몸이 마비증세가 있어 병원에서 검사 중에 있습니다. 제 아들은 현역으로 2급 판정을 받고 아무 이상 없이 군 입대 하였는데 국방의 의무라 하여 천금같은 내 자식을 데려다 군부대의 잘못으로 방치하여 구타사고로 망신창이가 되도록 치료도 없이 만들어 놓고, 원인과 근거가 있는데 시간만 보내다 발생원인이 선천성에 의한 질병이라고 하니 (선천성이었으면 왜 군대를 가게 했습니까?) 원통하고 통탄한 일이 아닌지요! XI. 눈 가리고 아웅 (징계 vs 징계취소 vs 징계취소의 취소?) 군부대 및 육군본부 감찰부에서는 조사를 차일피일 미루며 제 아들이 전역할 때까지 군병원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동안 시간을 끌며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한 통신대대장 및 간부들은 크게 다칠 것이라고 감찰조사장교는 04년 5월 28일 말하더니, 뒤로는 해임된 대대장을 국방부에서 무혐의로 04년 4월 8일 복직 시켜놓고도 감찰장교들은 이 사실을 숨겨 은폐하였고 제가 뒤늦게 정보공개 신청으로 05년 1월 10일날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사건은폐 및 조작의 핵심인물인 대대장은 그 후로 진급을 거듭하여 현재 육군본부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과 폭행과 고문의 주범인 엄병장은 그 후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작년 1월 19일 만기 전역하고 고향인 강릉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입니다. 죄를 짓고도 죄 값을 치르게 하지 않는 사회에서 그 누가 법을 지키려고 하겠으며 그 누가 질서와 정의를 세우려고 하겠습니까? 육군본부 검찰부 징계실장은 04년 10월 22일병무청에서는 형식상으로 신체검사를 한다고 하고 병무청에서는 군복무중에 생긴 일이라고 하니 그 누구를 믿고 군대를 보내야 할까요? 그리고 처벌 받아야할 중대장은 04년 6월 31일 전역을 시켜놓고 민간인 신분이라 소재파악이 안되어서 조사를 못했다고 검찰조사장교는 거짓으로 말을 합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관련된 간부들을 적당히 처벌하여 형식만 갖추고서는 반의사불벌죄라는 명분으로 재처벌 할 수 없다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닙니까? 육군본부는 군부대와 가해자인 엄병장을 위한 방패막이고 직무유기한 대대장 및 간부들인데, 제 식구 감싸기에 바빴고 군의 민원조사는 그저 형식적인 것을 저는 진정 몰랐습니다. 2차 재조사 민원을 여러 기관에 신청한 지 벌써 16개월이 넘어가는데도 육군본부 및 국가인권위원회서도 사실이 밝혀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웬일인지 진실을 밝히지를 못하고 차일피일 날짜만 끌고 있습니다 (장장 22개월). XII. 엄마의 마지막 바램 저희 단란했던 가정은 엉망이 되어 제 아들 살리자고 사방팔방 돌아다니다 보니 생계를 이어가던 조그마한 가게(식당)마저 이 사건에 휘말려 넘어가고, 제 남편은 해보지도 않았던 공사판으로 일을 찾아 막노동으로 나가게 되었고, 여자인 저 혼자 군과 싸움을 해야 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에 처한 상태이지만 전 이미 나이가 들어 살날보다 죽을 날이 가까운 사람이지만 제 아들은 살날이 아직도 창창한 혈기 왕성하고 젊은 나이 입니다. 저는 청와대 신문고에 진정서와 호소문을 띄웠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저는 억울함을 당한 국민을 위한 곳 인줄 알았는데 너무 어리석었습니다. 역시 힘없고 배경 없는 국민은 다가갈 수 없는 너무도 높은 벽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능력도 힘도 없습니다. 22개월간의 국가와의 힘겨운 싸움으로 이제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너무 억울하고 분하여 자살이라도 할까 생각해본 적도 있었습니다. 현재로서는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고 절망만이 있을 뿐입니다. 다만... 아직도 세상에 정의가 남아있다면.... 아직도 세상에 의인이 남아있다면 ... 저를 도와주실 수 있는 아니 관심이라도 가지고 응원이라도 해주실 분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일을 당하고도 힘없고 배경이 없다는 이유로 절망해야 할 정도로 우리나라가 썩어있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힘으로는 너무 부족합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제2, 제3의 제 아들이 더 이상 대한민국 군대에서 나오지 않도록... 제가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언론에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한 아이의 어머니로서 눈물로 여러분들께 호소합니다.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