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날이었던 2002년 17년 후
그렇게 두 노장은 형제처럼 서로를 부둥켜 안고 울었다 ..
2002 기적의 시작 한일월드컵 공동개최는 어떻게 이뤄졌나?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이 끝나고
당시 FIFA의 회장이었던 아벨란제는
21세기의 첫 월드컵은 한번도 개최된적없는 아시아에서 하고 싶다 라고 말했다
아벨란제는 브라질 출신이었는데
별다른 의견이 없다면 2002년 월드컵은 아시아에서
최고의 경제 성장을 이룬일본에서 개최되는 쪽으로 결정될 것 같았다
하지만 아시아에서 일본 말고도
월드컵을 개최할 수 있는 국가는 하나 더 있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던
대한민국
우리나라 역시 1990년 월드컵을 한국에서 개최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FIFA에 밝혔고 1994년 월드컵 유치위원회 결성
그리고 아시아 축구 연맹이 일본보다는 한국에 힘을 실어주면서
2002년 월드컵 개최국은 한국이냐 일본이냐로 나눠지게 되었다
브라질과 펠레가 일본을 지지하는 것을 본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인 마라도나는
이것을 반대하기 위해 한국을 지지하게 되고
아르헨티나에게 도움을 받았던 우루과이 역시 한국을 지지하게 된다
월드컵이 아시아 어느 국가에서 열리느냐를 따지고 있는데
갑자기 남미에서 자존심 싸움이 시작되어버린 우스운 상황
이때 일본 개최를 지지했던 FIFA 회장인 아벨란제는
한국에서는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월드컵을 개최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낸다
하지만 1993년 10월에 열린
1994년 미국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일본은 이라크와 종료10초를 남기고 동점골을 허용
3위에 올라 본선 진출에 실패하게 된다
이것을 도하의 기적이라고 한다 이 도하의기적 이 없었으면
한국의 개최는 힘들었다 한다
이것으로 한국은 네 번째 월드컵 본선 진출
게다가 3연속 본선 진출을 이뤄냈지만
1994년 기준 일본은 역사상 단 한 번도
본선을 진출하지 못한 나라가 됐다
게다가 1994년에 열린 FIFA 부회장 선거에서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이었던 정몽준이 당선되며
본선 진출도 못하는 나라가 월드컵을 개최할 자격이 있느냐는
정몽준 부회장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게 된다
1995년 아시아 축구 연맹의 사무총장인 피터 벨라판이 한국에 와서
지나친 경쟁으로 서로 상처를 입게 될까 걱정스럽다며
공동 개최하는 것이 어떻냐는 제안을 한다
최종 투표까지 가게 된다면 밀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한국은 공동 개최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1996년 5월 2002년 월드컵은 한국과 일본에서
공동 개최하는 쪽으로 합의를 봤다
그리고 혹자의 이야기로는
이 소식을 들은 정몽준의 아버지 현대 정주영회장은
정주영: 몽준이가 하는일이 다 그렇지 뭐...라는 말을 남겼다고한다
(정주영회장은 88년 서울올림픽을 나고야를 제치고 단독개최로 가져옴)
ㅋㅋㅋ
한국대표팀감독이 되지 못할 뻔한 히딩크 감독
거스 히딩크 의 한국대표팀 감독 부임
거스 히딩크감독의 대표팀 감독 시작과 과정
왜 한국은 월드컵에서 단 1승도 못했는가?
히딩크가 "한국이 월드컵에 과거 4번이나 나갔으면서
한번도 이기지 못한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우리는 제대로 실력을 발휘한 적이 없다.
50~60% 발휘했을 뿐이고 이는 자신감 부족 때문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히딩크는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체력이 좋은 편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체력이 약하다.
후반 20분만 지나면 무기력해진다.
또한 조직력 특히 수비의 짜임새가 없다.
패스미스가 많다. 볼 지배력과 골 결정력에 문제가 있다"고
신랄하게 지적했다.
히딩크가 제일 먼저 문제로 거론한건 한국대표팀의 기술이 아닌 체력이었다
90분 내내 뛰면서 상대를 압박할 체력이 부족하다는 그의 평가와 전술훈련보다
체력훈련위주의 지옥훈련에 임했었다
선수 선발에 대한 히딩크와 축구 협회의 갈등
히딩크 감독 역시 산전수전 다겪은 감독이라 협회의 이런 속셈을
모두 파악하고 축구협회의 발표시간보다 한시간 앞서
자신이 직접 뽑은 대표팀 명단을 발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