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아버지글보고 제아버지가 생각나 몇자적어봅니다.
제가 5~6살때 아버지가 노가다했습니다.공사판에 한번 어렸을적 엄니랑 간적있었는데 그생각이 지금도나네요
그땐 창피한지몰랐어요
그렇게 세월이흘러 아버지는 개인으로 남에집쓰레기 음식물쓰레기를 수거해주는 그런일을 10여년동안하다 환경미화원이되셨습니다. 아버지와저와 같은집에살면서 오래본적이 없네요 새벽3~4시에나가서 일하고 아침10시에들어와 식사하고 또나가면 4시에들어와 식사하고 또나가면 제가자면 들어오시니 얼굴볼날도 몇없었던거같습니다.
학창시절에 부모님직업란엔 항상 엄니가 공무원이라적으라하셔서 뿌듯했던거같습니다 제친구들에게도 아부지공무원이다 환경미화원이시다 자랑하고다녔습니다. 친구들도 놀림없이 잘지내왔습니다. 정년퇴임하시고 그동안 모아둔돈으로
농사를 지으십니다. 땅은중간중간 환경미화원하시며 먹을꺼안먹고 옷한벌안사고 술담배도 안하시고 악착같이 모으셔서 땅사고 농사지으십니다. 당근 감자 뭐 이것저것하시다.
그렇게 또 돈모으고 산딸기로 올인하셔서 현재 연봉2억 가까이버십니다.
전 아버지를 부끄러워해본적이 없습니다. 존경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여기서 저희 아버지 손자들자랑쫌해봅니다.
저도 부끄럽지않은 아버지가 되고싶네요
그러고싶지만 저희아부지가하는딸기는 거짓없이 상품성이 최고급이라 물량이 없습니다.
여기저기서 매매해간다고 난리라...
1. 일단 님을 만납니다.
2. 님을 꽁꽁묶어 놓고 전화기를 빼았습니다.
3. 님 아버님께 전화를 합니다.
4. '아들을 데리고 있습니다. 1박스만 파시면 아들을 돌려 드립니다'
5. '됐으니 너 가지라'는 대답을 듣습니다.
6. 님을 집에 데리고 와서 그렇게 같이 살게 됩니다.
음음음 해피엔딩은 아닐듯요...남자끼리 같이 살다니......
저 역시도 IMF시절 실직해서 잠시 노점상도 해보았고, 다시 직장에 들어가 차장에서 승진 멈추고, 방황하다가 지방의 작은기업으로 오게되었습니다. 방황의 시기에 청소년기의 우리 아이들은 아버지가 집에서 백수로 무직으로 있는 것 보다 노가다라도 나가는 것이 마음이 놓인다고 하대요.
집에 있는 아버지를 보면 무기력해진다고, 차라리 밖에서 일하고(노가다) 그날 벌은 일당 마누라한테 주고, 당당하게 저녁뉴스 보면서 반주한잔 하면서 허장성세 피우는 아버지가 차라리 보기 좋았다고 합디다.
그래서 제 생각인데 자녀들이 부모가 챙피하다고 느끼게되는 것은 무능한 아버지 보다, 무기력한 아버지에 모습에서 챙피함을 느끼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애들 넘 귀엽네요^^
아구...이뻐라......
보아하니 좀 더 크면 더 이뻐질것 같은데
어쩐데요.... 출근 안하고 애들하고만 놀아주고 싶어지실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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