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가 자살을 시도할때 그것을 방치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막아 치료해주는 것은 사형수들이 예뻐서일까?
아니다. 우리는 그 사형수들을 온전한 상태로 사형대 위에 올려서 심판하고자 함이다.
정의의 실현을 그 심판의 대상이 된 자의 자의적 처분에 맡기는 것은 정의의 포기이며 또한 정의의 심각한 훼손이기 때문이다
칸트가 이런 말을 했다.
만약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온다고 하여도 나는 오늘 한 명의 사형수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사형에 처하겠다고 말이다
유영철은 20명을 죽이고도 아직 사형집행을 안당하고 있다
그의 손에 죽은 가족중에 두 동생은 자살하고 형수는 행방을 모른다고 한다
사형수들을 살려줌으로써 피해자 유족들의 자살을 방치함으로써 희상자들을 더 늘리는 국가가 과연 범죄예방을 할 수 있을까
살인을 해도 천수를 누릴거라는 인식은 또다른 살인을 방조하는 것이다.
사형을 집행하라!
‘침묵하는 다수’를 위한 사형존치론
김태수 著
이 책에서 일부 내용을 인용하였습니다.
나라 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신림동 칼부림 유사사건이 또 생길까봐 겁나서 길도 못다니겠군요
사형수들을 집행할 때 피해자 유족들을 불러 지켜보게 하는 것이
그 유족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며 또한 그들의 고통을 멈춰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적어도 교수형은 사형수들이 저지른 살인보다 최대한 온화한 방식으로 응징해주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사형집행 좀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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