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친일파·쿨재팬'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장학금·생활비 지원해 일본에 우호적 감정 형성… 신친일파, 일본 사회내 혐한 고조시키고 일제 과거사 정당화해]
친일 잔재를 없애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일본에 과도하게 우호적인 감정을 가진 신친일파들은 점차 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新)친일파는 일본에 대해 우호적 감정을 갖고 자발적으로 일본 우익 세력에 동조하고 친일 행각을 넘어 혐한에 나선 이들을 가리킨다.
◇장학금·생활비·연구비 지원… '신친일파' 만들기
일본을 제대로 알고 한국이 일본에 어떻게 대응해야하는지 갈길을 제시하는 지일파와 달리 신친일파는 일본의 나팔수가 돼 일본 사회 내 혐한을 고조시키고 혐한 감정을 정당화한다. 일제의 과거사도 정당화하려 노력한다.
일본계 한국인 정치학자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에 따르면 일본 정부와 우익 기업은 한국의 유망한 인재들을 상대로 장학금과 생활비를 지원한다. 일본에 대한 우호적 감정을 조성해 '신친일파'로 양성하기 위해서다. 호사카 교수는 지인 중 지원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서 "처음엔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는다더라. 나중에는 한국인이 자발적으로 '내가 뭘 하면 되냐'라고 물어보게 된다더라"고 전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문재인 캠프 사무실에서 열린 문재인 캠프 영입인사 발표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7-02-23 /사진=이동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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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특히 일본재단(사사카와 재단·Nippon Foundation) 등에서 나온 연구 용역비로 활동하다가 일본 주장에 동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일본재단은 A급 전범 사사카와 료이치가 경정(競艇)사업으로 돈을 번 뒤 '도박 재벌'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세운 법인이다. 극우 성향을 강하게 띠고 있고 핵심 운영진은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의 주범인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회원이다.
일본재단은 수재의연금·복지단체 기부, 국제정치학회 조직위원회 지원 등 1973년부터 수십년간 국내에 기부 명목으로 자금을 지원해왔는데, 국내 학자들의 장학금이나 연구비 등에도 꾸준히 개입해왔다. 2005년에는 일본재단의 돈이 연세대와 고려대에 유입됐다는 사실이 부각되며 논란이 커졌다. 전범과 관련된 재단 돈을 학문 연구에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이 일면서다.
/사진=일본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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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연세대는 일본재단의 기금 10억엔(당시 약 75억원)을 출연받아 학교법인 아래에 '한·일협력 연구기금'을 뒀다. 이후 교수평의회와 총학생회가 전범의 기금을 받을 수 없다며 반대하자 연세대는 1996년 6월 '한·일협력 연구기금'을 독립적인 재단법인 '아시아 연구기금'으로 바꿨다.
고려대 역시 한때 이 재단의 돈을 받아 장학재단을 만들었다. 고려대는 1987년 일본재단에서 1억2950만엔(당시 약 10억원)을 받아 일본재단의 설립자인 사사카와 료이치의 이름을 딴 '사사카와 영-리더(Young-Leader) 장학금'을 조성했다.
◇미국 주류 여론 움직이는 '재팬핸즈'
일본은 경제력을 미국 내 주류사회 여론도 움직여왔다. 재팬핸즈로 불리는 일본 전문가 집단이 주요 대학과 싱크탱크에 퍼져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내는 식이다. 이들의 의견이 미국 전체 여론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재팬핸즈를 키우는 가장 대표적 조직도 사사카와다. 사사카와는 1986년 일본재단의 대외 조직으로 미국에 사사카와평화재단(SPF)을 세우고, 연 5억 달러(약 5910억원)씩의 예산을 사용한다.
/사진=사사카와평화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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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카와평화재단은 학자 교류, 대학원생 지원, 교육 프로그램 지원을 목적으로 내세우며 재팬핸즈를 양성한다. 태평양사령관을 지내고 오바마 정부 때 국가정보장관(DNI)을 역임한 데니스 블레어를 이사장으로 영입하는 등 힘도 막강하다.
얼마 전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지금 한일 갈등의 원인 제공자는 한국이라는 게 미국 전문가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던 보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소장 마이클 그린도 대표적인 재팬핸즈로 꼽힌다.
이외에도 팻 코에이트(Pat Choate)가 쓴 1990년 '영향력의 요원들'(Agents of Influence)에 따르면 제럴드 커티스 컬럼비아대 교수, 리처드 사무엘스 MIT 교수,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 등도 재팬핸즈로 일컬어진다. 팻 코에이트는 일본의 로비가 어떻게 미국의 정치, 경제를 움직이는지를 연구해온 인물이다.
◇일본 애니메·라이트노벨에 빠진 '쿨재팬 추종자'
스마트파워 등에만 주력했던 과거와 달리 최근 일본은 소프트파워를 통한 신친일파 만들기에도 열심이다. 한국 한류에 밀렸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2010년 6월 경제산업성 제조산업국에 '쿨재팬실'이 설치됐다. '쿨재팬'이란 일본 문화가 해외에서 평가되고 있는 현상이나 일본 문화를 지칭하는 용어다. 예컨대 싱가포르에 시부야 패션을 알리고, 중국 부유층을 상대로 일본 만화를 홍보하고, 베트남에 일본 지방문화를 홍보하는 곳을 설치하는 등의 사업이 쿨재팬의 일환이다.
문제는 이 같은 쿨재팬의 여파로 한국 내에도 쿨재팬을 사랑하는 이들이 속속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라이트노벨, J-POP 등에 빠진 이들이 신친일파로서의 역할을 한다.
실제로 호사카 유지 교수는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해 "페이스북에 위안부 합의에 대한 비판을 했는데, 이에 대해 한글로 악성 댓글을 단 사람들이 있었다"며 "그 사람들은 대체로 일본 애니메이션 중독자들로 보이는 자들이었다"고 말했다.
최근 일본의 무역 보복에 대항해 국내 일제 불매운동이 열기를 더해 가면서 일본의 '쿨재팬'에 대한 우려 없이 순수하게 일본 문화나 자금을 받았던 데 대해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19일 유튜브 채널 '한류썸띵'은 "한국 드라마나 예능에서 일본 로케이션을 자주 가는 건 제작진의 자발적인 선택인 경우도 있지만 일본 관광청에서 지원을 받고 가는 게 대부분일 것"이라며 "일본이 한국 방송에 제작비를 조금 지원하면 전세계 한류 팬을 상대로 매우 효과적인 쿨재팬 홍보가 됐다"고 강조했다.
가마쿠라(눈으로 만든 집)와 요코테성을 배경으로 한 아이리스1 현준(이병헌)과 승희(김태희)의 데이트 장면. /사진 /제공=아키타현 홈페이지 / 사진제공=아키타현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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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 '아이리스'가 현물지원을 받고 일본 아키타현에서 촬영한 뒤 아키타현이 관광지로 거듭난 사례가 대표적이다. 아키타현은 '아이리스' 덕분에 2억엔의 경제효과가 있었다고 추산했다.
아키타현은 '아이리스' 제작사와 배우 등 총 10명에게 감사장을 수여했고 주연배우 이병헌은 일본 국토교통성 관광청 장관 표창을 받았다. 이후 '아이리스' 속편인 '아이리스2'도 아키타 관광청의 협찬을 받아 아키타현에서 촬영됐다.
유튜브 채널 '한류썸띵'은 영상을 마무리하며 "이제라도 한국은 쿨재팬 홍보를 그만 두고 한국 홍보에 힘써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재은 기자 jennylee1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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