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면 아시겠지만 윤봉길 의사는 1908년 태어나셔서
24살에 순국하셨습니다.
여러분 24살에 뭐하셨음??
보통 대학교 다니거나 군대있거나 알바하거나
공무원, 토익, CPA학원 다니다가
주말에는 홍대나 강남에서 놀지 않으셨음??
윤의사께서 현실에 순응하신채 사셨다면
1986년 : 78세
1988년 : 80세
2002년 : 94세
88올림픽이 열리는 자랑스러운 조국의 모습과
장수하셨으면 세계 4강에 오르는 2002년 월드컵도 보실수 있었음...
실제로 윤의사의 친동생, 6촌 동생이 2002년 이후까지 살아있었죠
워낙 윤봉길 의사가 옛날에 돌아가셔서 우리와
다른시대 사람이라고 생각할수 있는데 우리와 동시대를 사실수 있었던 분이셨음...
당시 지식인이었기 때매 해방이후 한가닥할수 있는 자리에도 오를수 있는 인물... 오히려 훙커우 공원 의거 같은 살아돌아오기 힘든 의거는 40~50대 독립투사들이 했어야지 윤의사 같은
창창한 20대 초반의 독립투사가 하기에는 아깝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의거 직후 남겨진 가족들은 어땠을까요?
윤의사도 그 점을 걱정하셨다고 해서 남긴 유언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윤의사의 아내였던 배용순 여사는 16살에 시집와서 고작 7년 같이 사시다가 80세까지 홀로 자식과 손주들을 돌보다가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윤의사 곁으로 가셨다고 합니다.
윤의사의 바램과는 달리 어린자녀들은 일찍 죽고 장남만이
살아남았는데
일제시대 일본인 선생은 아침마다 윤의사 아들을 교단 앞에 불러놓고 “나는 반역자, 흉악범의 자식입니다.”라고 크게 외치게 했다고 하셨습니다. 심지어는 얼굴에 검정을 칠해 전교를 돌며 놀림감이 되도록 만들었다고 합니다.
운동장 한구석, 친구 한 명 없이 하염없이 쭈그리고 앉아있었던 어린 시절은 윤의사의 아들을 한없이 내성적이고 과묵한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윤의사 본인과 그 가족의 행복과 맞바꾼 대한민국의 독립...
정말 감사하게 여겨야할겁니다.
윤의사의 유해를 해방 직후 일본에서 반환받아 한국에서 국민장을 치르는 모습입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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