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생..전 완전 시골 촌동네
걸어서 30분 걸리는 학교..강건너 오구 산넘어오구..학년당 한반뿐.. 전교생이 100명도 안되는 완전시골학교..그러다 수몰지역으로 고향 없어지고 도시로 전학 왔더니 운동장도 건물도 엄청 큼 교감 만나서 이야기하다 반에 올라갔다가 나도 모르게 뒷걸음 치고 도망갔어요. 3일을 학교를 안갔어요..애들이 넘 많아서 무서웠거든요 ㅋㅋ 거기서부터 또다른 나의 인생이 시작되었죠
60년 말에는 한 반에 80명은 기본이었고 한 학년 20학급은 보통 심한 곳은 3부제 수업까지 있었습니다.
제가 다녔던 서울 장충국민학교는 이 모든 것들을 가뿐히 넘긴 거대 국민학교였죠.
도시락 못싸오는 친구들이 많아서 미국 지원 옥수수로 옥수수빵 만들어서 도시락 못싸오면 도시락 대신에....
경기중학교 가려고 과외하던 시절.........
이제 52살인데도 2부제 국민학교 다닌 사람입니다.
왁스 사서 교실 마루바닥을
와다다다다 하고 밀고 다녔던...
바지 무릅 맨들맨들해지는건 기본...
1970년인가 육성회비로 명칭이 바뀌면서
가정형편에 따라 600원, 450원, 300원, 150원 공짜 로 나누어 납부 했었습니다.
지금도 어디가면 30대로 봅니다 ㅡㅡ;;
1학년 22명 1개반이 졸업할 때까지 유지 ㅎㅎ 전교생은 120명정도
오전 오후반이었고.. 한학년에 28반까지 있었던것으로 기억
참고로 할아버지 아님.. 저 만으로 49살
걸어서 30분 걸리는 학교..강건너 오구 산넘어오구..학년당 한반뿐.. 전교생이 100명도 안되는 완전시골학교..그러다 수몰지역으로 고향 없어지고 도시로 전학 왔더니 운동장도 건물도 엄청 큼 교감 만나서 이야기하다 반에 올라갔다가 나도 모르게 뒷걸음 치고 도망갔어요. 3일을 학교를 안갔어요..애들이 넘 많아서 무서웠거든요 ㅋㅋ 거기서부터 또다른 나의 인생이 시작되었죠
나 72년생 내친구 딸 결혼해서 애를 낳았으니 할아버지가 맞지요 ㅎㅎ
아 생생하다 오후반ㅋㅋㅋ
할아부지가 아니라 아부지로!!
80년대 말에도 2부제였음
91년 하안국민학교에서 2부제 했었어요ㅋ
아침 조회시간 (운동장)
등교길에 엄마가 주신 흰색이나 노란색?편지봉투 챙겨서 조회 끝나자마자 선착순으로
봉투주는것도 줄을 서는데?? 이상하긴 했음..
(엄마가 신신당부 절때 열어보지말고 선생님께 드려야한다!!!!!!!!!!!! 편지보면안되!! 당부또 당부... ㅜㅜ)
선생님께 드렸음 b
매번 주시길레 궁굼..졸~라궁굼해짐. 열어봤더니 @@)))
그담부터 담탱이 선생과는 멀어지고~~~~
학교 앞 분식집 사장님 사모님과 엄청 친하게 지내게 되더란....
당시 사장님 사모님 덤도 많이 주시공 ㅎ 항상 건강하세요!!
경기도 안산 선부초(94년도 3학년때 국민에서 초등으로 변경)로
1학년때 20반 49번 이였네요
좌측통행 안하면 혼났음ㅋㅋ
93년에 2부제 했어요
한반에 50명 좀 넘게 있었고
우리학년은 11반까지 있었고 1학년과 2학년이 한교실을 쓰며 2주간격으로 오전오후반을 나눠쓴 기억이 있네요
제가 다녔던 서울 장충국민학교는 이 모든 것들을 가뿐히 넘긴 거대 국민학교였죠.
도시락 못싸오는 친구들이 많아서 미국 지원 옥수수로 옥수수빵 만들어서 도시락 못싸오면 도시락 대신에....
경기중학교 가려고 과외하던 시절.........
이젠 돌아올수 없는 강을 건너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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