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대신 말,나귀,소등이 중요 장거리 이동 수단 이였습니다.
보통은 우마차를 사용 하겠으나 긴급 이동이 필요 할때는 승마는 필수라...
왠만한 양반집 뿐만 아니라 좀 넉넉한 평민들도 말을 소유 운영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승마는 요즘 시대의 운전 면허와 같은 생활 밀접 필수 교양 쯤 이라 보시면 됩니다.
이게 100개중에 한개만 알고 나머지 99개를 몰라고 하는 대표적인 말임. 난 버릇이 없는 사람이기 대문에 음슴체를 쓰겠으니 불편하게 듣지마시길..
조선시대의 중심 사상은 유교사상임. 그럼 그 유교사상이 누구안테서 나왔음?
공자임. 근데 공자가 주로 즐겼던 운동이 활쏘기 말타기임. 물론 그 외에 사냥이나 낚시도 했음.
왜 갑자기 공자? 유교는 공자왈 맹자왈 하던 학문이 아니라 종교라는 것임. 종교는 자기가 떠받들던 사람의 모든것을 흠모하여 그 사람처럼 하듯 살다가 그 사람이 되어서 죽는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김. 즉, 공자가 했다더라 하면 그 모든걸 다 따라하게 됨. 물론 공자가 쓴 책도 많이 읽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군주 = 공자의 모든 덕목을 갖춘자. 가 되기때문에 활쏘기 말타기도 하게 됨. 글쓰신분 이성계가 우리나라 손가락 5개 안에 드는 신궁이라는거 아시면 아주 뒤짚어 지시겠는데?ㅋㅋㅋ 영조는 활을 잘 못쏜 신하에게 벌주를 내리기도 했고, 정조는 활쏘기 50발중 49발 맞춰서 자랑하는 글을 쓰기도 하였으니...
우리가 아는 가마끌고 다른 지역 시찰가고 행차하신다? 이것만으로도 왕이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고, 비용도 어마어마하게 들었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아닌고서야 나가지도 않았음. 세종대왕같이 피부병이 있지 않고서야 굳이 가마를 탈 이유가 없었음.
참고로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이 32세에 무과 합격했는데, 그때의 평균 합격나이가 34세였으니 그리 늦은것도 아니었는데 무관이라고 무조건 차별만 했던것도 아님. 다만, 전란이 적고 태평성대가 길어서 그렇지...
복무하는데가 중앙군보다는 압록강 두만강쪽이나 해군이라서 그렇지 그렇게 또 천것이라고 욕먹지도 않았음.
그리고 생각해보면 앎. 말에서 내려오다가 말이 갑자기 몸을 흔들면 어떻게 되겠음? 지금 우리가 말타도 다큰 성인도 도움을 받아서 내려와야하는데, 왕이 유목민 마냥 하루종일 말 타는것도 아니고 옥체를 보존해야하는 중요직책에 있는 사람인데 당연히 도움받아서 내려오는것도 당연하다고 봄.
다만 말타기나 사냥등은 조선초기를 제외하곤 별로 즐기지 않았습니다만
특히나 양반이라고 해서 다 글만 읽는게 아니라 양반 즉 두개의 반상인데 하나는 문신 하나는 무신임..
이 두개의 반상을 합쳐 양반이라 부르는 거임..
이성계도 무신이었고 우리가 아는 장군들도 다 무신들 양반임..
그리고 조선초부터 중기전까진 무신출신 양반들도 많아서 우리가 알고 있는 양반들과 사뭇 달랐음..
그러나 고려시대때의 권문세족들의 사병들읨 문제점과 각 지방토호들의 힘을빼기위해 사병을 혁파하고
문을 더 숭상하고 무를 천시하게 되면서 그냥 글만 읽는 양반들이 양산되게 됨..
무신출신 양반들이 문신들에 비해 홀대받기도 하면서 조선은 국방이 망가져 감...
주변 나라들은 무역을 통해 신식무기와 기술로 발전을 할때 우리 씹선비들인 유교탈레반들은 제례의식을 갖고 니가 맞니 내가 맞니 하면서 나라를 씹창냄
그리하여 조선왕조 내내 외세에 줘터지는 나라가 됨
보통은 우마차를 사용 하겠으나 긴급 이동이 필요 할때는 승마는 필수라...
왠만한 양반집 뿐만 아니라 좀 넉넉한 평민들도 말을 소유 운영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승마는 요즘 시대의 운전 면허와 같은 생활 밀접 필수 교양 쯤 이라 보시면 됩니다.
저시대 위민을 위해서 위정자들이 얼마나
자신을 희생했나 싶다.
솔직히 현대와서 누구는 위민정신으로
정치를 했네 어쩌네 했지만
조선말 외국인의 눈에 비친 조선의 백성들은
그저 냄새나고 무지하기 그지 없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한다.
위민정신??과연 그시절 양반들이 위민정신을???
엿같은 소리라고 본다.
조선시대의 중심 사상은 유교사상임. 그럼 그 유교사상이 누구안테서 나왔음?
공자임. 근데 공자가 주로 즐겼던 운동이 활쏘기 말타기임. 물론 그 외에 사냥이나 낚시도 했음.
왜 갑자기 공자? 유교는 공자왈 맹자왈 하던 학문이 아니라 종교라는 것임. 종교는 자기가 떠받들던 사람의 모든것을 흠모하여 그 사람처럼 하듯 살다가 그 사람이 되어서 죽는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김. 즉, 공자가 했다더라 하면 그 모든걸 다 따라하게 됨. 물론 공자가 쓴 책도 많이 읽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군주 = 공자의 모든 덕목을 갖춘자. 가 되기때문에 활쏘기 말타기도 하게 됨. 글쓰신분 이성계가 우리나라 손가락 5개 안에 드는 신궁이라는거 아시면 아주 뒤짚어 지시겠는데?ㅋㅋㅋ 영조는 활을 잘 못쏜 신하에게 벌주를 내리기도 했고, 정조는 활쏘기 50발중 49발 맞춰서 자랑하는 글을 쓰기도 하였으니...
우리가 아는 가마끌고 다른 지역 시찰가고 행차하신다? 이것만으로도 왕이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고, 비용도 어마어마하게 들었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아닌고서야 나가지도 않았음. 세종대왕같이 피부병이 있지 않고서야 굳이 가마를 탈 이유가 없었음.
참고로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이 32세에 무과 합격했는데, 그때의 평균 합격나이가 34세였으니 그리 늦은것도 아니었는데 무관이라고 무조건 차별만 했던것도 아님. 다만, 전란이 적고 태평성대가 길어서 그렇지...
복무하는데가 중앙군보다는 압록강 두만강쪽이나 해군이라서 그렇지 그렇게 또 천것이라고 욕먹지도 않았음.
그리고 생각해보면 앎. 말에서 내려오다가 말이 갑자기 몸을 흔들면 어떻게 되겠음? 지금 우리가 말타도 다큰 성인도 도움을 받아서 내려와야하는데, 왕이 유목민 마냥 하루종일 말 타는것도 아니고 옥체를 보존해야하는 중요직책에 있는 사람인데 당연히 도움받아서 내려오는것도 당연하다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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