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당시, 야전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에밀 카폰 신부
지프에 담요를 덮어 간이 제대를 만들었다.
카폰 신부는 7월 16일, 미 육군 제1 기병사단 8기병연대의 일원으로 한국에 참전하였다. 초반에 미국 주도의 UN군이 북한의 공세로 후퇴를 거듭하는 와중에도, 카폰 신부는 의연하게 장병들을 격려하고 그들의 신앙 활동에 주력했다. 당시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던 와중에 단독으로 낙오된 병사를 구출하는 수훈을 세우기도 했으며, 이 공로로 동성무공훈장을 받았다.
인천 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자, 그 역시 한반도 이북으로의 북진에 동참했다. 그러나 중국군의 참전으로 전세가 불리해졌고, 당시 카폰 신부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병사들의 안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병사들의 후퇴를 돕던 도중인 11월 2일, 중국군의 포로가 되어 수용소로 끌려갔다.
수용소에서 영양실조와 질병을 앓고 각종 가혹행위를 강요받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함께 붙잡힌 포로들을 격려하면서 사제로서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수용소 생활 도중에 폐렴, 이질에 걸려 건강이 악화되었고, 결국 수용소 생활 6개월만인 1951년 5월 23일, 향년 35세로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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