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92년 시굴조사에서는 건물터와 재를 비롯한 불 탄 흔적, 그리고 금속유물편들이 확인됐다. 그러나 이 건물터가 금속제품을 만드는 공방 정도의 건물로 판단됐지, 사찰터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발굴단의 고민은 컸다. 당장 주차장 공사를 중단시킬 결정적인 유구·유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고고학적인 증거가 발견되는데 고고학도의 양심상 그냥 공사를 강행하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신광섭 당시 부여박물관장(현 국립중앙박물관 유물부장)의 회고.
“시굴조사 결과 결정적인 중요한 유구가 없기에 그냥 공사를 강행했다면 그만이었죠. 그런데 저를 포함해서 뭔가 예감이 이상했던 윤무병 선생 등 전문가들이 ‘딱 한번만 파보자’고 건의했어요. 당시 노태섭 과장은 군말없이 수용했고, 2천만원이 넘는 발굴비를 배정했지요”.
원래 92년 시굴조사에서는 건물터와 재를 비롯한 불 탄 흔적, 그리고 금속유물편들이 확인됐다. 그러나 이 건물터가 금속제품을 만드는 공방 정도의 건물로 판단됐지, 사찰터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발굴단의 고민은 컸다. 당장 주차장 공사를 중단시킬 결정적인 유구·유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고고학적인 증거가 발견되는데 고고학도의 양심상 그냥 공사를 강행하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신광섭 당시 부여박물관장(현 국립중앙박물관 유물부장)의 회고.
“시굴조사 결과 결정적인 중요한 유구가 없기에 그냥 공사를 강행했다면 그만이었죠. 그런데 저를 포함해서 뭔가 예감이 이상했던 윤무병 선생 등 전문가들이 ‘딱 한번만 파보자’고 건의했어요. 당시 노태섭 과장은 군말없이 수용했고, 2천만원이 넘는 발굴비를 배정했지요”.
허가기간도 지났고, 허가지역도 아닌 데를 파라고 허락해준거라
안되면 짤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지금 굥시절같으믄 잡혀갈 각오하고 해준거나 다름 없슴.
이 사람이 바로 노태섭
나중에 문화재청장이되었슴.
문화재 청이 청이된 것도 아마 이게 공이 커서였을 거임.
한글, 팔만대장경, 신라금관등 우리를 동서양을 막론하고 절대 야만인이라고 부를 수 없게 만드는 고귀한 문화유산인 것임.
그에 비하믄 일본은 한 참 저~ 아래죠..ㅋㅋㅋㅋㅋ
신광섭 당시 부여박물관장(현 국립중앙박물관 유물부장)의 회고.
“시굴조사 결과 결정적인 중요한 유구가 없기에 그냥 공사를 강행했다면 그만이었죠. 그런데 저를 포함해서 뭔가 예감이 이상했던 윤무병 선생 등 전문가들이 ‘딱 한번만 파보자’고 건의했어요. 당시 노태섭 과장은 군말없이 수용했고, 2천만원이 넘는 발굴비를 배정했지요”.
했는데 단칼에 거절 ㅋ
이 쓰부랄 놈이 뭔짓을 할지 몰라서
문제생기면 감당하기 어려울것 같아서인가
눈뜨고 싶지 않아
아름다운 소리라도
듣고 싶지가 않아
눈 비 바람 몰아쳐도
나는 애써 견뎠어
모두 태워 지웠어도
나를 지울순 없어
홀로 간직한 기억
꽃이 떨어지던
홀로 지켜온 사랑
백제의 마음
모두 태워 지웠어도
나를 지울순 없어
홀로 간직한 기억
꽃이 떨어지던
홀로 지켜온 사랑
백제의 마음
고란사의 종소리도
묻혀 버리었지만
가느다란 나의 몸은
바위틈에 남았어
온몸으로 눈물짓는
나의 이름은 고란초
왠지 가사가 딱이라 생각이 들어 댓글 남겨봤습니다.
제 폰에도 있어요 ^^
생각보다 커요
허가기간도 지났고, 허가지역도 아닌 데를 파라고 허락해준거라
안되면 짤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지금 굥시절같으믄 잡혀갈 각오하고 해준거나 다름 없슴.
이 사람이 바로 노태섭
나중에 문화재청장이되었슴.
문화재 청이 청이된 것도 아마 이게 공이 커서였을 거임.
한글, 팔만대장경, 신라금관등 우리를 동서양을 막론하고 절대 야만인이라고 부를 수 없게 만드는 고귀한 문화유산인 것임.
그에 비하믄 일본은 한 참 저~ 아래죠..ㅋㅋㅋㅋㅋ
아니면 진흙을 묻히고 놔두고 발굴한것처럼 사진찍은건가?
국사책에서 그냥 사진으로 볼때는 그냥 맥주병이나 소주병만 하겠거니 했는데
부여박물관가서 생각보다 엄청큰 크기에 놀라고, 직접본 아름다움에 한번 더 놀랐습니다.
처음 갔을때 정말 멍하니 10여분 동안 바라보고 있었어요.
부여박물관에 저거 하나 보러가더라도 방문해볼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저렇게 연출하는 건 최단 시간으로 하고 언능 보존처리실로 옮겨야 함.
진흙 속 진공상태에서 공기 중으로 노출되었기 때문에 급격히 산화될 수 있어서임(금동으로 입힌 부분 말고, 내부가...).
근데 발견된 유물은 구석에 치우고 계속 땅공사햇지.
이래서 정권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서 그나라의 외교 , 경제 , 문화등 발전하냐 마냐 결정돼
.
.
개독들이 지랄해서 그냥 전시한다고 들은것 같은데요...
아시는분
왕릉이고 뭐고 아파트 세운다하면 만고 땡인 시대가 도래
1000년이 지났는데도 완벽한 보존에 또한번 감탄.
보셔요.
도교적 사상이 백제에 전파 되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백제의 산수무늬 벽돌과 함께 ...
상상속의 동물인 봉황이 전설의 봉래산 꼭대기에 있죠
신광섭 당시 부여박물관장(현 국립중앙박물관 유물부장)의 회고.
“시굴조사 결과 결정적인 중요한 유구가 없기에 그냥 공사를 강행했다면 그만이었죠. 그런데 저를 포함해서 뭔가 예감이 이상했던 윤무병 선생 등 전문가들이 ‘딱 한번만 파보자’고 건의했어요. 당시 노태섭 과장은 군말없이 수용했고, 2천만원이 넘는 발굴비를 배정했지요”.
그것도
그냥 압도적입니다.사진으로 본거는 본게 아닙니다.그냥 경외감에 넋을 잃습니다.
왕실의 제사에 사용되던 기물임을 짐작케하는 사리감의 기록도 있습니다. 석조 사리감 역시 부여박물관에서 보았었습니다.
중앙박물관의 것이 복제품이고, 부여박물관의 것이 진품입니다.
딱히 보면
제사지낼때 사용하는 향 피우는 도구일뿐인데,
왜 그 향로를 귀하고 멋지게 만들었을까요??
궁금해서 물어봅니다~
제사지낸때 향로가 주역은 아닐텐데 말이죠~
가치를 폄훼하는게아니니 오해금지.ㅎ
당연히 신탁에 사용되는 모든 기물들은 온정성을 다해야 했고 그로 인해 태평성대를 누릴수 있다고 생각함. 이정도는 초딩정도면 유추가능한데...
개독들이 저거 발견했으면
바로녹여
십자가 만들었을듯
발견자가 개독 아니라서 참 다행
높이64cm 지름14cm
진짜 전세계 향로 유물 중 원탑임
복제품가격이 100만원대
왕릉뷰 레고랜드 ㅋㅋ
가슴뜨거워지더라
참 아름답더이다
정말 아름답습니다.
검색해봤습니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442238&cid=51704&categoryId=5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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