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하나없다 제가 국민학교 들어가고 얼마 안되서 사촌형이 결혼을 했는데 바나나를 사왔죠
한송이도 아니고 3개 달랑
지금 기억으로 바나나 한개에 2000원 정도 했던걸로 기억 합니다
당시에도 너무 비사 감히 사달라고 말도 못꺼낼 가격이었던 기억이 있네요
처음 먹어보는 바나나 맛이 너무 환상적이었는데 지금은 바나나가 그때맛이랑 같을진데 감흥은 그저 다이어트용..
당시 자장면이 150 원인가 200원인가 했는데 운동회 끝나고 용돈 받으면 자장 면을 사먹을까 박카스를 사먹을까 고민했던 기억이 있네요..
보고 싶네요 울엄마 아버지..
저 말이 딱 맞음~~!!
난 강릉국민학교 졸업생임..그 당시 영동지방에서 가장 큰 국민학교가 저희 학교 였음 그 당시 재학생만 3천명이 넘었으니까 .... 학교에서 운동회 한다면 후원도 엄청들어오고 kbs mbc에서 취재 나오고 구라 조금 보태서 강릉시내 김밥재료 음료수 과자들이 동남..
난 5,6 학년때 밴드부라 개회식 폐회식 중간 중간 쉬는 시간마다 제복입고 공연하고 그랫음.....ㅋㅋㅋ
그리고 운동회가 끝나면 시내음식점 특히 중국집 갈비집엔 하얀색 운동복을 입은 애들 천지고 어차피 같은 학교에 친척형제들이 같이 다녀서 친척들까지 다 모여서 저녁 먹고 했음......
아~~ 겁나 추억 돋네~~~
80년대 강릉국민학교 나오신 분들 추천 부탁 드립니다~~보배에 동문분들이 몇분인지 알고 싶네요~
아 찢어 지게 가난 했던 , 시절이 떠오르네요. ㅎㅎ
지금도 기억 납니다. 국민학교 5 학년때 였나? 전두환이 북한 놈들이 우리를 수장 시키려고 금강산 땜 만든다고 ,
전국 민이 성금을 내서 , 평화의 땜을 만들자고,
저희 집 너무 가난 해서. 성금 500 원 낼 돈이 없었어요. 그런 나에게 담임 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 돈이 없으면 학교를 다니지 말아야지 " ㅋㅋㅋ ㅆ발년 이제 내가 니년 보다 나이를 더 먹은것 같은데.
여전히 니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아 운동회 때도 우리 부모님은 일해서 우리 4 남매 키운다고 , 운동회 참석이 어려 웠어요.
부모님께 너무 감사 드려요. 우리 4 남매 잘 키워 주셔서, 얼마나 서로 사이가 좋은지 ㅎㅎ
부모님께서 가난 해서 그런지 , 우리 4남매 정말 서로를 잘 챙겨 줍니다. 지금은 다 잘살고,
틈만 나면 부모님께 퍼주기 바쁘죠... 우리 여동생들은 우리 동네에서 소문난 효녀로 불리우고요 ㅋㅋ
아 찢어 지게 가난 했던 , 시절이 떠오르네요. ㅎㅎ
지금도 기억 납니다. 국민학교 5 학년때 였나? 전두환이 북한 놈들이 우리를 수장 시키려고 금강산 땜 만든다고 ,
전국 민이 성금을 내서 , 평화의 땜을 만들자고,
저희 집 너무 가난 해서. 성금 500 원 낼 돈이 없었어요. 그런 나에게 담임 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 돈이 없으면 학교를 다니지 말아야지 " ㅋㅋㅋ ㅆ발년 이제 내가 니년 보다 나이를 더 먹은것 같은데.
여전히 니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아 운동회 때도 우리 부모님은 일해서 우리 4 남매 키운다고 , 운동회 참석이 어려 웠어요.
부모님께 너무 감사 드려요. 우리 4 남매 잘 키워 주셔서, 얼마나 서로 사이가 좋은지 ㅎㅎ
부모님께서 가난 해서 그런지 , 우리 4남매 정말 서로를 잘 챙겨 줍니다. 지금은 다 잘살고,
틈만 나면 부모님께 퍼주기 바쁘죠... 우리 여동생들은 우리 동네에서 소문난 효녀로 불리우고요 ㅋㅋ
1년에 한번 2년에 한번 보면서 잘랐네요. 어머니는 포장마차 끌고나가서. 분식 팔았어요. 오뎅 떡볶이, 핫도그 같은거 만들면서,
도로 정화 사업 한다고, 우리 포장 마차 여러번 끌려 갔었지요. ㅎㅎ 포장 마차 빼았길때 마다 허탈해 하던
어머니의 뒷 모습이 기억 나네요.
그런데 울 엄마 2찍 합니다. ㅋㅋㅋ 씨발 티비 조선 새끼들 죽여 버리고 싶어요. 거기에 홀린것 같아요.
우리는 당했을지언정 우리 다음세대에는 그래도 이런일들이 줄어들고 있으니 정말 다행이네요.
국민학교 다닐때 평화의 댐 성금내라하고 웅변대회하고 반공포스터 그리라고 하고
지금 생각하면 거짓말인생을 사는 놈들입니다
분위기 봐서 낄낄빠빠 하세요 ..
광명시에서 기아 영맨하나본데 찾아볼까? 어떻게 생겼길래 이런 글을 쓰는지?
선 너무 넘었는데?
농사짓던 아버지, 공장 다니시던 어머니.
그당시 공장은 조퇴, 휴가 이런거 없던 개념이라 초등 내내 혼자 도시락 까먹었네요.
아무도 안오는 운동회 점심시간 교실에서 먹던 김밥도 아닌 볶음밥이 갑자기 생각나 짠하네요.. ㅠ.ㅠ
추억이 새록새록
~계주이기면 다이기는건 국룰이고~ㅎㅎ 다들 공책하나씩 받아서 오후엔 친구들이랑 엄마들이랑 자장면 한그릇~ㅎㅎ
이게 30여년전 입니다~!!!
먹고 그랬는데
정말 그립다 ㅜㅜ
콩을 넣어서 만들었을거에요...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에 남녀노소 모여서 재미지던 시절...어르신들 경품은 양동이,세숫대야,비누 등등...
그 운동장에 가끔 가는데 정말 이렇게 작은 곳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놀았던가 하고 새삼 놀램
부분이 많이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레크레이션강사도 오고
실내강당에서 놀이기구 셋팅해놓고
하더라구요
옛날처럼 곤봉돌리고
계주하고 요런건 없는거 같아요
한송이도 아니고 3개 달랑
지금 기억으로 바나나 한개에 2000원 정도 했던걸로 기억 합니다
당시에도 너무 비사 감히 사달라고 말도 못꺼낼 가격이었던 기억이 있네요
처음 먹어보는 바나나 맛이 너무 환상적이었는데 지금은 바나나가 그때맛이랑 같을진데 감흥은 그저 다이어트용..
당시 자장면이 150 원인가 200원인가 했는데 운동회 끝나고 용돈 받으면 자장 면을 사먹을까 박카스를 사먹을까 고민했던 기억이 있네요..
보고 싶네요 울엄마 아버지..
앗음
방과후에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데 저 멀리서 지나가다 인사 안한다고 와서 몇십대씩 따귀때리면서 화풀이하던 년 부터
대놓고 촌지 받아 쳐먹던 놈까지
어휴 지금 생각하면 진짜....
청군과 백군이 싸운다~
청군과 백군이 싸우면은
보나마나 청군이 이긴다.
청군의 억센 주먹으로
백군의 아구창을 날렸다~
(뻗었다 뻗었다 뻗었다 뻗었다
시원하게 통쾌하게 뻗었다!)
()부분은 잘 생각이 안나네요
ㅋㅋㅋ
국민학교때 한반에 50명 그런반이 10반
1~6학년까지하면 반이 60반 학생만 3천명... 저학년때는 오전반 오후반 나눠서 수업했음 ㅎㅎㅎㅎㅎ
운동회때 가족까지오면 학교에 발디딜 틈도 없었음^^
학교앞 문방구 거리에도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인산 인해 였죠..^^
저희때는 6학년이 14반 까지 반아이들고 65번 정도 까지 있었네요..
한학년당 보통 12-13반
3학년때 까지 오전반 오후반 있었네요....
청군이 이겼다고 전화왔어요~
백군이 이겼다고 전화 왔어요~
선생들한테 운동회 연습하면서 기합은 엄청받았었네요.
어린 꼬맹이들이 뭘 안다고 뻔하면 오리걸음에 선착순뺑뺑이 그리고 원산폭격시키는
싸이코 남선생도 기억나네요.
마지막 탑쌓기 맨 꼭데기는 키작고 가벼운놈이 올라가고....
점심시간때 앞집옆집 모여서 같이 밥먹고
난 강릉국민학교 졸업생임..그 당시 영동지방에서 가장 큰 국민학교가 저희 학교 였음 그 당시 재학생만 3천명이 넘었으니까 .... 학교에서 운동회 한다면 후원도 엄청들어오고 kbs mbc에서 취재 나오고 구라 조금 보태서 강릉시내 김밥재료 음료수 과자들이 동남..
난 5,6 학년때 밴드부라 개회식 폐회식 중간 중간 쉬는 시간마다 제복입고 공연하고 그랫음.....ㅋㅋㅋ
그리고 운동회가 끝나면 시내음식점 특히 중국집 갈비집엔 하얀색 운동복을 입은 애들 천지고 어차피 같은 학교에 친척형제들이 같이 다녀서 친척들까지 다 모여서 저녁 먹고 했음......
아~~ 겁나 추억 돋네~~~
80년대 강릉국민학교 나오신 분들 추천 부탁 드립니다~~보배에 동문분들이 몇분인지 알고 싶네요~
나의 유년시절에 놀게해주고 먹여주고 예뻐해주는 기댈수있는 듬직한 부모님계셨는데.....
하루하루 채바퀴 굴리듯 똑같이 놀아도 늘 새로웠던 저때가 그립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봄에는 어버이날기념 체육대회
가을에는 가을대운동회 ㅋㅋㅋ즐거웠던 기억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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