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 3월 군번입니다.
자대 배치 받고 처음 본 군대는 그냥 미친 인간들 집합소 같았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고참들 이름과 기수를 종이에 적어주더니 오늘 밤까지 전부 외우라고 하더군요.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습니다.
그날 밤 자정.동기 5명이 세면장으로 불려갔습니다.
제가 군번이 제일 빨라 제일 먼저 앞으로 나갔고, 당연히 몇 명 못 외운 채 버벅거렸습니다.
그 순간 바로 구타가 시작됐습니다.
정말 태어나서 그렇게 맞아본 건 처음이었습니다.사람을 때린다기보다 그냥 분풀이하듯 패더군요.동기들 전부 똑같이 맞았습니다.
그날 진심으로 후회했습니다.“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군대를 오지 말걸.”“차라리 장교로 올걸.”그 생각만 들었습니다.
제가 있던 부대는 구타와 얼차려가 마치 전통처럼 내려오던 곳이었습니다.
지금 사람들한테 이야기하면 “설마 군대가 그랬냐” 할 정도의 일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렇게 26개월을 인간 이하처럼 버티고 전역했습니다.
이후 대학 졸업하고 OO증권에 입사했는데, 지점 남자 직원들 중 절반 이상이 군대를 안 갔더군요.
나중에 여의도 본사로 갔는데 거긴 더했습니다. 잘나가는 직원들 대부분이 군 공익이거나 아예 안 다녀왔더군요.
회식 자리에서 군대 이야기 꺼내면 분위기 싸해졌습니다.
마치 군대 이야기 하는 사람은 하층민이고 촌스럽고 뒤처진 사람 취급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서울대 경영 나온 친구 하나가 있었는데, 나중에 들으니 아버지가 육군 소장 출신이라더군요.
그런데 그 친구는 군 면제였습니다.
그 순간 참 억울했습니다.
나는 26개월 동안 인간 취급도 못 받고 살았는데,있는 집 애들은 그 시간에 영어 배우고, 유학 가고, 스펙 쌓고, 자기개발하며 살았구나.
그때부터 어디 가서 군대 이야기 잘 안 했습니다.솔직히 군대 다녀왔다는 게 “가난한 집 출신이다”는 걸 증명하는 것 처럼 느껴질 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오십 줄이 넘어 다시 생각해보니, 아이러니하게도 군대 다녀온 걸 후회만 하지는 않게 되더군요.
쓸데는 없을지 몰라도,그곳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이 있었습니다.
하기 싫은 걸 억지로라도 참고 버텨보는 경험.사람 밑바닥도 보고, 인간의 잔인함도 보고, 또 어떻게든 살아남는 법도 배웠습니다.
솔직히 다시 가라면 절대 못 갑니다.지금 시대 애들 보면 난리 날 일도 정말 많았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인정합니다.
남자는 살면서 한 번쯤은
자기가 하기 싫은 것도 억지로 버텨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긴 합니다.





































90년대 신임하사때 생활때 고참기수표와 고향 현재 거주지 생일을 외워야 했고
부대 지휘관 차량번호 암기와 더불어 소대 총기수와 탄약갯수
데프콘과 진돗개에 단계별따 탄알 분배수등을 외우고 검사 받아야 했습니다.
신임하사들 집합 걸리면 다른 소대 고참하사가 알리미늄 배트로 빳대를 때리거나
워커 뒷굽으로 명치를 차이곤 했지요 고참 생일때 상품권 상납도 했네요
그리고 전역해도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고 하사관은 정말 가난한 자들의 경력이더군요
참고로 4수 해서 연대나온 소위 소대장은 월급타면 무협지 새책으로 사서 캐비넷 가득 채우고
1년 후 중위 진급한 기념으로 자가용 선물 받았네요 집이 대치동으로 기억합니다.
아버지가 공병하사관 출신인데 전역하고 공사감독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요..
특히 아무 배경 없이 들어간 평범한 청년들은 버티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 시절 이야기 들을수록
“경험한 사람만 안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위로 그지같은것들 나가고 나면 다 바꿔야지 했던게 다는 못바꾸고 나온거
뭐 이런저런 후회도 있지만 그렇다고 다 나쁜건 아니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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