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적인 상황인식으로는 우크라이나전쟁을 해석하기 힘듭니다. 고전적이라고 해서 틀렸다는게 아니라 우크라이나전쟁은 과거에 없었던 전쟁 상황과 과거에서 벌어졌던 전쟁 상황이 혼재 한다고 생각합니다.

 

 

1. 40퍼센트 병력 손실은 전멸이고 후퇴를 해야 한다?

 

2. 대대전술단의 문제는 무엇일까?

 

3.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병력손실은 얼마나 될까?

 

1. 40퍼센트 병력 손실은 전멸이고 후퇴를 해야 한다?

 

40퍼센트 손실나면 군사학에서 전멸 판정한다고는 하지만, 전쟁역사에서 그 이상의 전투병력 손실에도 전투를 속행하는 사례가 아주 많습니다. 

40퍼센트 손실이라는 것은 지원병력을 제외한 전투병력들의 완전 손실이라고 저는 해석합니다. 군대에서 보면, 수송병과와 행정병과가 있는데, 이들은 전투에 직접 참가하지 않습니다.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군대는 군수,행정, 작전 부서가 비대합니다. 이런 병과는 인력을 많이 필요로 합니다. 과거에는 문서작성도 전부 사람이 일일 써야하고, 지도도 일일이 그리고, 브리핑 자료도 일일이 만듭니다. 토가 나올 정도죠.

  

지원병과가 군대에서 매우 중요함에도 보급과 행정, 작전 부서를 홀대한 군대가 과거 일본제국군이었습니다. 

거기다 일본제국군 지휘통제시스템도 부실하기 짝이 없었죠. 몰랐다기 보다는 이런 조직을 구성하려면 돈과 기술이 필요합니다. 

감당하기가 힘든거죠. 

 

한국군도 마찬가지로, 이런 지원병과 육성을 등한시 하는데, 모른다기 보다는... 돈이 없습니다.

 

전체 병력에서 40퍼센트 손실은 결국 이런 지원병과, 수송병과만 남은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병력만 남았다면 전멸이 맞지요. 이들은 전투를 수행하기에는 여러가지로 부족한 병과니까요. 

전투훈련도 부실한 병력들입니다. 물론 상황이 심각하면, 이들도 전투에 투입되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러면 더이상 의미있는 전력을 보유한 부대가 아니게 되죠. 

40퍼센트 손실에 포병도 포함된 것이고, 포병이 없으면 더이상 정규군이라고 할 수 없지요. 게릴라와 정규군의 가장 큰 차이는 포병입니다.



2. 대대전술단의 문제는 무엇일까?

 

대대전술단의 심각한 문제는 군수, 행정, 작전부서를 꾸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력규모상 이런 조직을 꾸릴 수 없습니다.

대대규모에서는 하달된 명령을 수행하는데 그치는 것이지, 자체적으로 색적, 정보분석, 작전수립이 불가능합니다.

대대규모는 대부분 전투원들입니다. 

이런 부대는 인력 수급 계획도 짤 수 없고, 전투병력이 손실나면, 보충을 할 수 있는 능력도 없습니다.


생각해보시면, (지금은 여단편제지만)한국군 보병이 사단편제였을때, 자체적으로 신병교육대가 있었습니다. 

수색대와 정찰대 그리고 대공방어부대, 탱크부대, 보급대가 있었죠.

 

대대전술단은 이런 기능이 있을 수 가 없습니다. 강화된 대대규모의 부대니까요. 


따라서 이런 대대전술단은 색적, 그러니까 적을 찾는 능력, 적을 분석해서 작전을 수립하는 능력, 하위부대에 대한 지원화력 능력, 보급 능력, 보충병을 훈련하고 수급하는 능력이 없는 부대입니다.


따라서, 독자적인 작전이 불가능한 부대입니다. 그런데 이런 부대를 끌고 정규전을 한 겁니다. 

당연히 전투가 제대로 될리가 없지요.


이런 대대전술단은 2차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이 많이 편성했는데, 이유는 병력부족 때문이었고, 나름 잘 써먹었다고 합니다. 그럼 당시에는 가능했고, 지금은 왜 불가능하냐? 


2차세계대전에서 나치독일군은 임무형지휘체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하급부대가 상급부대의 명령을 다 씹어버립니다. 자기들이 독자적인 판단으로 작전을 합니다. 항상 성공하는게 아니고, 혼란도 있었습니다. 사례로는 덩케르크 철수를 막지 못한것이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세계대전에서 임무형지휘체계는 전체적으로 봤을때 효과가 있었죠.

 

이건 당시 독일군들의 간부들이 나이가 많아서 젊은이보다 노련하기도 했고, 전쟁경험이 많았으며, 오랫동안 해왔던 유서깊은 전통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러시아군에게 갑자기 임무형지휘체계를 하라고 해도 훈련도 안되었고, 경험 많은 간부도 없을 겁니다.

 


 그리고, 과거에는 부대기동이나 공격준비, 그리고 정보분석, 공격준비와 방어준비 시간이 매우 길었습니다.

 

과거를 생각해보면, 컴퓨터같은게 있을리가 없고, 카메라도 스틸카메라가 전부이며, 작전을 실행하기 위해, 문서를 가지고 날라야 하고, 또한 작전 지도를 배포하는것도 사람이 직접 날라야 합니다. 당시는 음성무전기밖에 없었으며, 무전기의 성능이 안정적이지 않았습니다. 마켓가든작전을 보면, 진공관 기술이 발달한 연합군도 무선통신에 실패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시대적 상황때문에 작전수행의 템포가 지금에 비하면 매우 느렸죠. 또한 한번 작전지시를 내리면 이걸 변경하는것은 불가능했다고 봐야 합니다. 예하 수십개 대대나 소대에 내려진 명령을 변경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이게 무전으로 될거 같나요?

 

각설하고, 이런 느려터진 정보수집과, 색적과정 때문에, 현장지휘관의 즉흥적인 소부대 급습이라는게 통했고, 적의 헛점을 찌르는 빠른 부대 움직임 자체가 먹혔다고 봐야 합니다. 따라서 나치독일군의 급조된 부대가 기습을 하면 연합군들은 허둥지둥 했죠. 정찰에 이런 소규모 부대가 걸리지도 않았던 거죠. 

 

구체적인 사례로는 롬멜이 소규모 부대를 직접 끌고 북아프리카에서 영국군을 기습한적이 많습니다. 자기가 직접 기관총을 잡기도 했다고 합니다. 부실한 소규모 부대로 기갑부대까지 습격했습니다.

 

또, 핀란드에서 벌어진 겨울전쟁에서 모티전술도 화력이 빈약한 소규모부대가 지형을 이용해 대규모부대를 공격했는데, 이것은 습격이었죠.

 

명령 기다린다고 줄줄이 늘어서 있다가 두들겨 맞는 패턴입니다.

 

당시는 그런게 가능한 시대였습니다. 

 

느린 지휘통신 시스템의 또 다른 사례로는 항복이나 휴전할때 날짜와 시간을 정한 것입니다. 당장 명령을 내려도 수많은 부대에게 명령을 전달하는데 시간이 걸린 겁니다. 심지어 명령을 내려도 이걸 수신 못하는 부대가 있었기 때문에, 항복했는데도 계속 싸우는 부대가 생겼었죠. 

 

따라서, 이런 느려터진 작전수행을 빨리 해보겠다고, 전방을 뛰어다니는게 2차세계대전때 장군들 패턴이었고, 전방을 뛰어다닌 유명한  장군들이 패튼, 모델, 구데리안, 롬멜 이런 장군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최전방을 뛰어다니며 직접 상황판단을 하고, 명령을 했던 겁니다. 

 

당시 장군들이 전장을 뛰어다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진격로 판단...예비대 투입과 지원화력 배분, 그리고 가지고 있는 기갑부대를 어떻게 움직일것인가를 판단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걸 밑에서 올라오는 보고만 믿고 했다가는 다 말아먹을 수 있습니다.

예하 부대는 지원을 하나라도 더 받기 위해 허위보고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 장군들의 많은 희생은 러시아군의 빈약한 지휘통제 시스템으로 우크라이나군에 비해 작전수행이 느리기 때문에 이것에 대응하려고 전방을 뛰어다녔는데, 과거와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정찰자산과 통신의 발달로, 최고급 지휘관의 위치가 금방 탄로가 났던 겁니다.

 

그럼 우크라이나군의 빠른 템포는 무엇때문일까하고 생각해 보면, 제가 보기엔 미군의 지휘통신시스템을 사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자면 우크라이나군은 전송 버튼 하나로 작전지도를 전송할 수 있다는 거죠. 이 전송된 지도와 작전 명령이 분대까지 그냥 수신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공격명령을 하달하면, 하룻만에 수행이 가능하다는거죠.

 

반면 러시아군은 작전명령을 하달하는데 일주일 이상 걸린다고 생각해보세요. 작전지도를 해당부대에 배포를 하고, 암호책 배부하고, 브리핑 하고, 소대와 분대에 작전지시 내리고....

 

거기다 한번 명령을 하달하면 수정도 불가능하며, 적이 이곳에 없으니 다른곳으로 가라는 명령도 하달 못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반응속도에서 완전히 차이가 나는 겁니다. 


 

나치 독일군이 왜 임무형지휘체계를 만들었는지 생각해보시죠. 명령 기다리다가 다 말아먹는걸 막기 위한 겁니다.


서방은 디지털이 발달했고, 서방장비로 무장한 우크라이나군은 작전수립과 명령하달이 빠른 것으로 보입니다. 

우크라이나군은 디지털지휘정보시스템으로 순식간에 명령을 하달 하고, 적의 위치, 화력지원, 정찰정보등이 공유가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러시아군은 2차세계대전 당시의 전술과 시스템으로 우크라이나군을 상대한 겁니다. 당연히 먹히지가 않지요.

 

러시아군의 부실한 보급능력이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군수행정보급이 열악하면, 일처리를 제대로 못해서, 탄약이 필요한데 모포가 전달 될 수 있습니다. 더 심각하면, 아군 부대가 보급부대를 털어먹을 수 도 있습니다. 보급부족으로 군인이 산적으로 변해버리는거죠.

 

러시아군이 병력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지휘통제시스템이 구려서, 포병지원도 우크라이나보다 느릴 겁니다. 따라서 막대한 포탄 소모에도 불구하고 목표를 달성 못하는 겁니다. 쏘고보니 우크라이나 군은 이미 튄거죠.

 

정찰 자산으로 러시아군 포병움직임이 감지되고, 공격하는 분대에 정보가 하달되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이러면, 아무리 병력의 우위가 있어도, 목표달성이 힘듭니다. 그리고 러시아군은 장갑차도 부족하고, 테크니컬도 부족할 겁니다. 서방이 다른건 몰라도, 장갑차와 테크티컬에 사용될 SUV는 많습니다. 

테크니컬 우습게 보여도, 테크니컬에 사용되는 차량은 민간용 치고는 비싼 물건들입니다. 4륜구동에다가 험지에 특화된 차량이 쌀 수 가 없지요. 거기다 기관포 발사 충격에 버틸만큼 튼튼해야 합니다. 

 

 

3.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병력손실은 얼마나 될까?

 

피해 현황 통계

(1) 한국군 및 유엔군 인명 피해

(단위: 명)

구분 사망 부상 실종/포로
775,438 178,631 554,202 42,605
한국군 621,479 137,899 450,742 32,838
유엔군 153,959 40,732 103,460 9,767

출처: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통계로 본 6·25전쟁>, 2014, p.30, p.283, p.309
유엔군 사망 인원은 미국 측 비전투손실(Non-battle Deaths) 인원인 2,830명을 포함한 통계임(위의 책, p.309)

https://theme.archives.go.kr/next/625/damageStatistic.do

국가기록원 홈페이지에서 퍼온 겁니다.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은 과거에 비해화력은 증강되었고, 장갑차가 대량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공격과 방어가 서로 상쇄되었을거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위의 기록은 한국군과 유엔군입니다. 생각해보시면, 당시의 중공군이나 북한군은 쏘련의 지원을 받았지

만, 유엔군이나 미군보다 화력이 떨어졌지요.

 

 

따라서 미군과 유엔군 화력에 노출된 북한군과 중공군의 피해를 보자면...

(3) 북한군 인명 피해

(단위: 명)

출처문헌 총계 사망 실종/포로 비전투손실 비고
한국전란 4년지 607,396 508,797 98,599 - -
군사정전위 편람 640,000 520,000 120,000 - -
미군자료 801,000 522,000 102,000 177,000 사망에 부상포함

출처: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통계로 본 6·25전쟁>, 2014, p.449

(4) 중공군 인명 피해(한국측 추정)

(단위: 명)

구분 전투손실 비전투손실
972,600 369,600 603,000
사망 148,600 135,600 13,000
부상 798,400 208,400 590,000
실종 3,900 3,900 -
포로 21,700 21,700 -

출처: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통계로 본 6·25전쟁>, 2014, p.475

(1)부상(비전투손실)에는 질병에 의한 입원치료자(447만명)을 포함.

(2)미국의 자료(The US Military Experience in Korea 1971~1982, James P. Finley, 1983, p.88)에 의하면, 총피해 123만여 명으로 26만 여명의 차이가 있음.

 

러시아군이 많은 조롱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을 고려하자면, 한국전쟁때 미군 이상의 화력을 투사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차라고 하던데, 4년차로 접어들면, 우크라이나군의 피해는 중공군과 북한군의 사상자숫자와 유사하게 될 것입니다. 

 

러시아는 어마어마한 폭탄들을 계속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장갑차에 방호를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상자추세는 한국전쟁때와 유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