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지난 6월 5일에 올린 글.
제정 러시아가 망하기 이전에 ( 제정 러시아는 1917년 2월 혁명으로 망함. 1917년에 10월 혁명은 볼세비키의 러시아 장악을 뜻하는 것임. )
러시아 차르정부는 아시아에 대한 영향력 확대로 만주를 넘보고 있었죠
당시 만주는 청 제국의 기원이라고 하여 비록 자신들이 북경에 살고 만주는 무주공산이라지만
다른 민족이 만주를 넘볼수 없게끔 봉금령을 시행하던 차였고요
알다시피 청 말기는 청 황실의 여러가지 문제, 서태후라든가, 나이어린 왕이 즉위하든가, 한족의 반란이라든가
아편전쟁으로 영국이 대륙을 병들게 한다든가, 아주 예전 같지 않았죠.
청 초기에는 중국 역사상 가장 강대한 제국이었지만 말기는 정 반대.
그 상황에서 러시아 차르정부는 만주를 넘보고 있었고
일본은 단계적으로 조선을 먹고 있는 과정이었습니다.
당시 상황은 청일 전쟁(1894년~ 1895년)에서 일본이 청을 이기고 조선을 대리해왔던 청의 영향력이 한반도에서 사라진 순간이었음. 전쟁 패배로 청은 중국 본토 중 일부를 일본에게 뺏기게 됨. 그게 바로 요동반도임.
이를 못 마땅하게 여긴 러시아가 독일과 프랑스를 끌여들여 요동반도 할양을 저지시킴. 그게 바로 "삼국간섭"
이를 본 조선 조정은 친러파가 득세, 이를 만회하고자 일본은 명성황후를 시해,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침.
그게 바로 "아관파천"(1896년 )
다시 친러파 득세.
요때 고종이 대한제국 천명, 광무개혁 등등을 실행함. 요곤 고종이 잘한 것임,
청의 조공국에서 벗어나고 조선의 독립국, 자주국임을 선포하고 했으니..
하지만 이권이 러시아, 독일, 미국, 프랑스,일본 등등에게 팔려나감.
이 내용은 여러분들이 청소년시절 배운 국사교과서에 다 나온 내용들입니다.
중국 본토에 독일 해군기지, 러시아 해군기지(뤼순항, 오늘날 다렌, 요동반도 끝자락 ) 가 건설됨.
러시아 일본 양국은 조선의 내정간섭에 하지 말자고 합의하면서 한편으로는 한반도 내 일본의 주도권을 인정하고
만주에서는 러시아의 주도권을 인정하는 것도 포함.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이때 건설된게 바로 시베리아 철도임. 일본의 양해가 없었다면 시베리아 철도도 불가능했죠
시베리아 철도도 원래 만주 직선통과임. 만주를 둘러서 가는게 아니었음.
직선으로 블라디보스톡까지 연결되는게 애초 설계임.
당연히 중국 짱깨들은 반감이 생길수 밖에. 그래서 의화단 운동 등등 크고작은 사건들이 연일 터짐.
암튼 시베리아 철도는 볼셰비키나 스탈린이나 이후 쏘련이나 현재 러시아에게 상당히 중요한 철도임.
즉 시베리아 철도는 러시아 그 자체나 다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함. 지난 100년 동안 러시아에게 톡톡히 효자노릇한 것임.
상황이 이렇다는 것입니다.
러시아는 압록강 하구에 또 러시아 해군기지를 건설하려고 시도, 그게 바로 "용암포"
이런 일련의 러시아 행위, 즉 시베리아철도니 각종 해군 기지 건설은 러시아의 남진정책의 일환이였고
영국과 일본이 강하게 반발했다는 것도 국사공부를 하신 분이라면 알만한 내용입니다.
영국과 일본은 이때 공고한 동맹국임. 자동차 좌측차선 통행이 요때 영국과 일본이 시행하게 된 것임.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면서
일본이 러시아에게 제의한게 니네 러시아가 만주 먹는거 눈감아 줄테니까
우리가 한반도를 먹는거 눈 감아 달라고 제의.
양자 협상이 시작되면서
러시아가 일본의 이러한 협상안을 거부.
그리고 들고나온 것이 러시아는 한반도 39도선 이북을 러시아가 분할 통치하고
니네 일본이 39도선 이남을 분할통치하자고 역제안.
즉, 러시아는 처음부터 한반도를 먹을 계획을 하고 있었던 것임. 만주는 당연 포함하고 말이죠
하지만 결렬되었습니다.
이미 한반도 주도권을 가진 일본이 러시아의 제안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죠.
그리고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
당시 러시아는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지구 반대편의 군대를 극동아시아로 보내는게 쉽지 않은 문제였단 것은 쉽게 알수 있죠.
40일이 걸림. 일본은 바로 코 앞이라 일주일이면 군대 보낼수 있구요.
러일전쟁은 작은 규모의 전쟁이 결코 아닙니다.
러시아가 총력을 기울인 전쟁이었고 전쟁전문가들 대부분 러시아 승리를 예상했었으나..
러시아 사상자 숫자가 25만명임.
러시아 발트함대 개박살 남.
러시아 태평양 함대 개박살 남.
예상을 뒤엎고 일본이 이겨버림.
돈 문제도 보통 아님, 전후 처리비용, 보상 비용까지 하면 천문학적인 비용이고 제정 러시아의 재정을 나락으로 빠뜨린 주범이기도 합니다.
러일 전쟁 끝나고 완충국 내지 중립국 표방으로 나아갈 고종은 그 뜻이 좌절되었고
매국노 을사5적은 일본에게 을사늑약을 갖다바침. ( 1905년 )
그때 러시아의 차르 정부나 지금의 푸틴의 러시아나 다를바 없습니다.
이유는 바로 무력으로 현상을 변경하려고 시도했거나 했다는 것입니다.
엄연한 팩트이고 부정할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 DNA는 과거나 현재이거나 똑 같다는 것입니다.
과거 쪽빠리들의 DNA가 지금까지 흘러내려오듯
그때의 러시아 영토적 야욕이나 지금의 러시아의 영토적 야욕은 변치 않습니다.
현재 푸틴은 러시아 차르이고 그 제위 기간은 이미 20년을 해먹었고 앞으로도 12년을 더 해먹을 예정입니다.
이 글이 6월 5일에 제가 올린 글이고
이어 6월 20일 러시아와 북한은 포괄적 군사협정, 이른바 북러조약을 맺습니다.
한반도에서 북한이 침략을 받을 경우, 러시아의 자동참전을 그 내용에 담고 있습니다.
이게 어떤 의미가 있냐면
만일 북한이 6.25 때처럼 다시 남침을 했고
6.25때와는 다르게, 즉 미군이나 다른 서방측 군대를 배제한 채 오직 대한민국 국군만 북진을 하더라도
러시아군은 참전을 하게된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 뿐만 아니라
만일 통일을 위하여 대한민국 국군이 북진을 하더라도 러시아는 자동참전이고
국군은 러시아군과 교전상태에 돌입하게 될 가능성이 열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조약 제4조는 "쌍방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들로부터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러시아연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6.25 전쟁은 중공군이 파병을 하였고 실제 중공군은 백마고지 등등에서 국군과 유엔군과 교전을 벌였었고
러시아의 전신 쏘련군은 미그기를 동원하여 휴전선까지 내려와 교전에 참가했었죠.
쏘련군이 미그기를 동원하여 참전한 사실은 최근 기밀해제된 러시아측 문서에 엄연히 나와있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