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포스란?
자동차의 움직임을 단순하게 생각하면 지면이라는 2차원 평면 위에서 움직입니다.
지면과 자동차를 이어주는 부품은 바로 타이어입니다.
타이어의 마찰력(frictional force)을 이용해 전진, 후진, 방향전환을 합니다.
그런데 마찰력을 늘리려면 실제 접촉면적을 늘려야 합니다.
접촉면을 늘리려면 타이어를 지면을 향해 눌러야 하고,
따라서 누르는 힘이 커질수록 마찰력도 늘어납니다.
기본적으로 타이어가 지면과 밀착하게 만드는 힘은
차체가 가진 질량을 끌어들이는 힘, 즉 지구의 중력입니다.
하지만 차체가 무거워지면 고속안정성은 증가할지언정
가/감속이 늦어지며 원심력이 증가해 코너링 성능은 오히려 떨어지죠.
반대로 출력에 비해 차체무게를 너무 가볍게 하면
타이어가 헛돌 뿐 제대로 주행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 차체 무게 이외 말고는 차를 누르는 힘을 만들 방법이 없는 걸까요?
다운포스는 이러한 개념에서 출발했습니다.
다운포스를 만드는 원리
- 베르누이의 원리
베르누이의 원리는 유체 운동에 대한 에너지보존법칙을 나타낸 것입니다.
한마디로 공기중을 통과하는 물체가 어떤 영향을 받는지 설명해주는 원리입니다.
에너지 보존 법칙에 따라 유체의 속력이 증가하면 압력이 감소합니다.
위아래가 동일한 형상의 물체가 공기를 가르면, 좌우로 흐르는 공기는 같은 거리를 움직이게 됩니다.
하지만 형상이 달라지면 한쪽 공기가 더 많은 거리를 움직이게 되고, 유체의 흐름이 빨라집니다.
베르누이의 원리에 따라 공기가 빠르게 흐르는 쪽의 압력이 낮아지고,
물체는 그쪽으로 이동하려는 힘을 받게 됩니다.
베르누이의 원리가 적용된 예는 상당히 많습니다.
비행기 날개는 위쪽이 더 볼록한 형상인데, 베르누이 원리가 적용되어 위쪽으로 떠오르죠.
야구의 커브볼이나 축구의 바나나킥은 공을 빠른 속도로 회전시켜서,
그 회전력으로 공기가 지나가는 속도를 빠르게 만들어
회전방향 쪽으로 공이 틀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자동차는 어떨까요?
기본적으로 자동차는 바닥은 평평하고 위쪽은 볼록한 형상입니다.
주행시 바닥면의 공기는 천천히 이동하고 차체 위쪽의 공기는 빠르게 이동하죠.
결과적으로 차체가 위로 뜨는 힘을 받게 되는데,
속도가 빨라질수록 효과가 강해지기 때문에 고속 주행시 불안정함을 느끼게 합니다.
다운포스를 만들려면 이 베르누이의 원리를 역이용하면 됩니다.
비행기 날개와 비슷한 구조의 물체를 거꾸로 설치하면 다운포스가 생깁니다.
- 받음각 (angle of attack)
받음각은 평평한 물체가 유체와 마주치는 각도를 말합니다.
선풍기 앞에서 평평한 판을 비스듬히 들고 있으면,
바람을 받는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는 힘이 느껴지실겁니다.
바람개비를 불면 회전하는 것도 바람개비 날개의 받음각으로 인해 회전력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받음각이 커지면 발생하는 힘도 커지지만, 항력도 증가합니다.
화살표 방향이 공기가 흐르는 방향. α의 각도가 받음각입니다.
- 그라운드이펙트(ground effect)
지면이 유체 움직임에 영향을 주는 것을 그라운드이펙트라고 합니다.
유체 주변에 물체가 있으면 유체의 움직임에 영향을 줍니다.
비행기는 공중에 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영향을 줄 물체가 거의 없지만
자동차는 항상 바닥에 붙어 있기 때문에 지면이 유체에 끼치는 영향이 큽니다.
그라운드이펙트를 사용하는 것 중에서는 위그선이라고 부르는 비행기에 가까운 배가 있습니다.
(WIG船 : Wing In Ground effect Ship. 해면효과익선)
위그선은 수면(지면도 가능하지만 아주 평평해야 합니다)위를 몇미터 정도 떠서 달리는
호버크래프트의 일종인데, 비행기처럼 날개가 달려 있습니다.
비행기의 날개가 지면과 가까워지면 받음각에 의해 공기가 압축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공기가 압축되면 유속이 줄어들어 압력이 훨씬 크게 상승하기 때문에,
위그선은 작은 날개와 이륙이 불가능한 느린 속도로도 수면 위를 떠서 달릴 수 있게 됩니다.
(느린 속도라지만 최대 500km/h정도 낼 수 있어 일반 선박에 비해서는 아주 빠릅니다)
자동차는 물론 떠서는 안되기 때문에 그라운드이펙트를 반대로 적용합니다.
차체 아래쪽에 유입되는 공기를 차단하면 공기의 압력이 줄어들게 되는데,
상대적으로 큰 압력을 가진 위쪽 공기가 차체를 누르는 효과를 주게 됩니다.
다운포스를 만드는 장치들
- 윙, 스포일러
윙은 다운포스를 만드는 대표적인 장치죠.
베르누이의 원리에 따라 아래쪽이 더 불룩하게 생긴 판재를
위쪽이 바람에 노출되도록 적당한 받음각을 주어 설치한 것입니다.
사실 그 크기가 작기도 하고 자동차는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베르누이의 원리보다는 받음각으로 생기는 다운포스가 더 큽니다.
스즈키 SX4 레이스카. 910hp를 발휘하는 괴물같은 차량입니다.
파이크 피크 힐클라임은 비포장이 섞인 산길을 주파해야 하는 경기인데
접지력을 해결하기 위해 커다란 윙을 달고 있는 모습입니다.
- 카나드(canard)
카나드는 차체 앞쪽이나 측면에 달린 작은 판을 말합니다.
본래 카나드라는 명칭은 비행기에서 주익 앞쪽에 달린 작은 날개를 말하는 것인데,
자동차에서는 날개라기보다는 그냥 판을 붙인 경우가 많습니다.
카나드를 적당한 받음각이 생기도록 설치하면, 주행중 다운포스가 생성됩니다.
프런트 범퍼에 측면에 장착된 카나드
- 에어댐(airdam)
에어댐은 말그대로 차체 아래쪽으로 공기가 유입되는 것을 막는 장치입니다.
차체 아래로 흐르는 공기를 막으면 여분의 공기가 위쪽으로 흐르면서 압력을 높이고,
차체 아래쪽은 공기가 희박해지면서 압력이 낮아집니다.
차체를 낮추는 것도 비슷한 효과가 있습니다.
에어댐의 효과.
- 액티브 그라운드이펙트 (active ground effect)
액티브 그라운드이펙트는 에어댐 수준을 넘어 차체 하부 공기를 강제로 빼내는 것입니다.
스커트 부분에 연질의 막을 설치하고 모터나 별도 엔진을 장착한 팬으로 공기를 빨아냅니다.
말하자면 거대한 진공청소기를 차체 하부에 설치한 것입니다.
액티브 그라운드이펙트는 높은 다운포스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외부 공기의 속도와 관계없이 일정한 다운포스를 낼 수 있습니다.
윙을 최소화할수 있기 때문에 항력을 줄이는 효과도 크죠.
모터스포츠에서도 각광을 받...을뻔했던 방식이지만,
이때문에 코너링 스피드가 너무나도 빨라져 위험해지는 관계로
현재 대부분의 레이스에서는 액티브 그라운드이펙트 장치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F1계에서 'FAN CAR'로 유명한 1978 알파 로메오 브라밤 BT46B
'진공청소기' 라는 별명을 가진 Chaparral 2J 레이스카.
뒤쪽의 커다란 팬 2개는 별도로 탑재한 스노모빌 엔진으로 구동되며,
차체 주변으로 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를 덧붙여 밀폐력을 높인 것이 보입니다.
윙이 전혀 없는 상자 형태의 차체임에도 불구하고 경쟁자들보다 월등한 다운포스를 보여주었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경쟁자들은 규정 위반이라며 주최측에 항의를 했고
다음해부터 주행용 이외의 엔진 탑재가 금지되었습니다.
레드불 X2010 프로토타입.
'만약 모든 규제를 없애고 세상에서 가장 빠른 레이스카를 만들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에서 탄생된 차량입니다.
디자인은 레드불 팀의 F1 레이스카 디자이너 에이드리안 뉴이가 담당했습니다.
레드불 X2010은 시뮬레이션상 버틸 수 있는 최대 횡가속도가 8G에 달합니다.
현재까지 측정된 가장 높은 F1 레이스카의 횡가속도는 스즈카에서 측정된 6G가 최고기록입니다.
레드불의 F1 드라이버 제바스티안 페텔이 시뮬레이션 주행한 결과
현행 F1 차량이 스즈카 서킷에서 세운 최고기록보다 20초나 단축했습니다.
- 언더패널
언더패널은 차체 바닥이 평평하게 되도록 설치한 판입니다.
차체 바닥은 각종 부품과 복잡한 차체의 형상 때문에 공기 흐름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이때문에 고속 주행시 차체 하부 공기의 압력이 커져 차체가 위로 떠오르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언더패널을 설치하면 차체 아래로 흐르는 공기통로 자체가 좁아지고
공기가 방해를 받지 않고 매끄럽게 통과하기 때문에 유속이 빨라져 다운포스가 생성됩니다.
고속주행시 양력 발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어 안정성 향상에 큰 도움을 줍니다.
차체 앞쪽에 설치된 언더패널.
전체를 다 덮으면 효과가 더 커지지만 무게가 늘어나는 단점도 있기 때문에
하부가 복잡한 형상을 하고 있는 앞/뒷부분만 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 디퓨저
디퓨저는 차체 바닥의 뒷부분을 점점 높게 되도록 만든 것입니다.
사실 디퓨저는 그 자체로 그다지 다운포스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디퓨저는 다운포스보다는 드래그(항력)를 줄이기 위한 것입니다.
사실 차체 아래쪽으로 쭉 삐져나온 칸막이 같은 것을 디퓨저로 알고 있는 분이 많은데,
이것은 공기가 흩어지지 않도록 달은 것입니다.
그런데 2009년 시즌 F1 팀중 일부가 더블덱 디퓨저라는 것을 들고 나와 논란이 된 적이 있었죠.
더블덱 디퓨저는 디퓨저 사이의 공간에 칸막이(덱)를 달아 다운포스를 만들게 한 것입니다.
더블덱 디퓨저는 칸막이 위쪽은 느린 속도의 공기를,
아래쪽은 빠른 속도의 공기를 지나게 하여 다운포스를 생성합니다.
사실 윙이나 다름없는 장치죠.
더블덱 디퓨저를 달면 1랩당 1초정도의 랩타임 상승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0.001초가 승부를 가르는 F1에서는 엄청난 차이입니다.
레드불 F1 차량의 에어로다이나믹을 설명해 주는 영상.
양날의 검 다운포스
차를 더 빠르게 해 주는 다운포스.
그러나 상당수의 레이스에서는 적극적인 공력 장치 도입을 꺼려하고 있습니다.
F1에서도 2008년 이후 전/후 윙 이외의 공력장치를 금지하여 차가 밋밋한 모양이 되어버렸죠.
주행중 윙이 동작하는 액티브윙도 금지사항입니다.
(2011년 시즌은 DRS라고 하는 일종의 액티브윙이 장착되긴 하였으나 직선주행에서만 사용 가능합니다)
어째서 이렇게 다운포스를 제한하고 있는 걸까요?
그것은 과도한 다운포스가 큰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운포스 증가는 코너링 속도 향상을 불러옵니다.
차량의 한계치가 높아져 코너링 속도가 향상될수록 돌발상황에 일어나는 사고도 커집니다.
차체가 회전하는 등의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윙의 방향이 정면이 아니게 되어
갑작스럽게 다운포스 효과가 사라지는 현상이 일어나 더욱 컨트롤이 힘들어지게 되죠.
다운포스를 위한 평평한 바닥은 날개와 같은 역할을 해 차량을 한순간에 뒤집어 버립니다.
2012년 르망 24시 경기에서 일어난 사고.
속도가 빠른 LMP 프로토타입 클래스인 토요타 TS030 하이브리드가 코너 끝 지점에서 추월을 시도하지만
그것을 미처 감지하지 못한 F458 이탈리아가 인코스로 파고들며 TS030의 차체 측면을 들이받았습니다.
급작스러운 스핀으로 다운포스가 사라진 TS030은 그대로 공중을 한바퀴 돌고 벽에 충돌하고 맙니다.
만약 현재 이상의 공력 장치를 허용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액티브 그라운드이펙트 장치는 차체가 바닥에 딱! 붙어있을때에만 효과가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강력한 다운포스로 바닥에 붙은듯이 질주하겠지만,
영상과 같은 사고가 일어났을 때에는 고속으로 주행중
바닥에서 조금이라도 뜨는 순간 다운포스가 사라져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엄청난 속도가 나는 레이스카는 그렇다 치고,
이런 공력장치가 일반 차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요?
다운포스를 만드는 것에는 항력이라는 부산물이 생성됩니다.
게다가 윙 자체의 무게도 그다지 가벼운 편은 아니죠.
차체가 무거워져 치고나가는 맛도 떨어지고
최고속도도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고속 주행시 승차감도 나빠지구요.
연비도 나빠지죠.
항상 최고속으로 코너를 돌아야 하는 레이스카가 아닌 이상
일반 도로위에서 다운포스 장치는 득보다 실이 큽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도를 지나치면 안한 것만 못하다는 뜻입니다.
오늘 보배드림 이야기, 다운포스 편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