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 광복절, 달력에 빨간 표시가 되어 있는 날,

학교와 직장이 쉬는 날이라고 즐겁게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보배드림 이야기에서는 광복절에 대한 유래와 전개,

그리고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광복절, 1949년 10월 1일 만들어진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여 국경일이 된,

우리나라 5대 국경일 중 하나인 날입니다.

 

 

이날은 1945년 8월 15일, 35년간의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해방된 국가적으로 경사스러운 날이기도 하지만

1948년 8월 15일 우리 대한민국의 정부가 수립된 것을

세계만방에 널리 알린 영광스러운 날이기도 합니다.


광복절의 의의


광복절은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군이 연합군에게 패하고

우리나라가 일제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광복은 光復이라는 한자를 쓰며 한자의 뜻 그대로 '빛을 되찾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나라가 국권을 빼앗긴 날이 정확히 언제일까요?

 

선뜻 대답이 안나오시는 분들이 많이 있으실텐데요.

바쁜 현대사회 속에서 잊어버리셨거나 아니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지난 날을 기억하고 싶지 않으신 탓일지도 모릅니다.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庚戌國恥)라 일컬어지는 한일합방조약이 이뤄진 날입니다.

            <한일합방 때 친일파 매수 전문 공개문>

 

                                                                <1910년 한일합방조약이 조인된 책상과 걸상>

 

이날, 국권을 피탈당한 뒤, 백성들은 일제의 횡포에 신음하며 광복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기본의 권리를 모두 빼앗기고 강제 노동과 강제 징병 및 강제 징용에 시달려야 했고,

일본은 우리의 민족 의식과 문화 더 나아가 민족의 씨를 없애기 위해 한글을 쓰지 못하게 했습니다.

 

강제로 일본말을 사용하게 하였으며,

'황국 신민의 서사(천황에게 충성을 다해 황국신민으로써 살아가겠다는 내용)'를 외우게 하였다고 합니다.

 

                                                        <황국신민서사 본문>

 

                                                               <황국신민서사를 암송하는 어린학생과 교사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과 성마저도 일본식으로 고치게 하였고,

전쟁 물자 충당을 위해 식량은 물론이고 숟가락까지 약탈하는 만행을 저질렀죠.

 

광복절 그 날, 그리고 그 이후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

1945년 7월, 독일의 항복으로 유럽 전선이 종전된 후

독일 포츠담에서 열린 포츠담 회담에서 일제에 항복을 요구하면서 한국의 독립을 재확인합니다.

 

일제는 전세가 완전히 기울어졌음에도 포츠담 선언을 거부하고 전쟁을 지속하려했지만,

미국이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고,

8월 8일 소련의 선전포고와 참전이 이뤄지면서 일제는 8월 15일 무조건 항복합니다.

 

당시 광복군은 한반도에 침투하는 OSS훈련을 마치고 작전 실행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일제의 갑작스런 항복으로 작전은 취소됐습니다.


* OSS훈련은?

 

광복군은 1945년 5월 미국 정보기관인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와 제휴하여,

한반도 진입을 위한 ‘독수리 작전’에 착수했다. 이는 광복군이 미군의 특수훈련을 받은

다음 국내로 잠입하여 지하공작을 전개하다가,
광복군과 미군이 상륙할 때 항일세력을 총궐기시키고, 상륙군과 합류하여 일본군을 공격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1945년 8월 13일을 한국 후방 상륙 D-데이로 예정했으나,

1945년 8월 9일 OSS 책임자인 도노번 장군, 김 구 선생, 지청천 장군 등이 회동,

만찬을 벌이고 있는 자리에서 일본이 항복을 인정하는 포츠담 선언을 수락했다는 소식을 접한후

곧 모든 진공작전에대한 준비작업이 중단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 장준하 김준엽 선생 등은 작전 취소를 매우 안타까워했습니다.

광복군이 계획대로 작전을 실행했다면 임시정부도 승전국으로 대우받을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 기회를 놓치게 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때문에 광복의 기쁨이 사라진 건 아니었겠죠?

 

8월 15일 일왕의 무조건 항복 선언이 발표된 직후만해도 방송 상태도 안 좋고,

일왕의 항복선을알아듣기 힘들어 당장의 반응은 없었지만,

일제가 강제 수감했던 우리 정치범과 경제범이 석방되면서

우리 민족은 일제의 항복과 해방에 환호했습니다.

 

 

해방 3년 뒤인 1948년 8월 15일, 한반도에는 유엔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받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완전한 자주독립국으로 우뚝 섰습니다.


대한민국은 광복 후 극심한 좌우대립과 6.25전쟁을 겪으며 폐허로 변했지만,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모두 이루면서 세계의 주요 국가로 자리 잡았는데요.


8.15 광복절이 그 시발점이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겠죠.

 

 

광복은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하면서 공짜로 얻은 것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광복은 우리 민족이 3.1운동, 독립군 항쟁, 유봉길 의사 의거 등

숭고한 독립투쟁 끝에 쟁취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투쟁이 없었다면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은 언급되지 않았겠죠.

 

*광복절 의미를 돌아보기 위한 노래

 

광복절 노래가 있다는 것, 알고 있으셨나요?

매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연주된다고 합니다.

이 기회를 통해 광복절 노래 한 번 배워보는 것이 어떨까요?

 

 

*광복절 행사

 

광복절을 맞이하여, 다양한 행사들이 열리고 있는데요.

그 중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행사 두가지를 소개시켜 드립니다.

 

광복 67주년 기념음악회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이 지휘하고, 서울시립교향악단과 연주자들이 협연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1악장,

 교향곡 6번 '비창' 2,3악장과 함께 안중근 열사가 연주됩니다.

 무료 공연이며 1인당 2매씩 선착순 예약 가능합니다.

 - 서울시청 홈페이지 : www.seoulphil.or.kr

 

서대문형무소 옥사 체험

 독립운동가들의 옥중생활을 했던 서울 서대문형무소!

 광복절일 맞아 8월 14일 옿 5시부터 15일 광복절 오전 9시까지 1박 2일 옥사체험이 이뤄진다고 합니다.

 관람료는 무료입니다.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 www.sscmc.or.kr/culture2

 

 

선조의 독립운동은 조국 광복의 중요한 밑거름이 됐음에 틀림없으며,

광복을 맞이하기까지 있었던 순국선열의 희생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런던올림픽이 성황리에 끝났습니다.

경기 마지막에 애국가가 울려 퍼지며 태극기가 올라가는 모습

모두 다 보셨을텐데요.

 

독립운동가들처럼은 아니더라도 자그마한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애국심,

 

그 시작은 태극기를 게양하는 것에서부터가 어떨까요?

 

그럼 이번 보배드림 이야기는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자료 및 이미지 출처 : 국가보훈처 공식블로그 (http://mpva.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