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하는 바이크계에서는 아주 유명한 완성차 업체입니다.
혼다, 스즈키가 사륜차에서도 유명한 점을 감안하면
야마하가 왜 사륜차 시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사륜차 업계에 큰 영향을 준 숨은 실력자, 야마하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야마하의 기술로 태어난 일본 최초의 본격 슈퍼카 2000GT와 최신 슈퍼카 LFA
야마하와 토요타의 만남 - 토요타 2000GT
토요타는 1967년 '2000GT'라는 소량 생산 스포츠카를 만듭니다.
아직도 명차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2000GT는 사실 야마하에서 제작된 것입니다.
1960년대 초 야마하는 닛산과 제휴하여 코드명 'A550X'라는 고성능 스포츠카 개발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계획은 닛산측의 사정으로 1964년 중단되고 맙니다.
한편, 1960년대 초 토요타는 메이커의 이미지를 끌어올릴만한 고성능 스포츠카가 없었습니다.
1965년 '토요타 스포츠 800' 이라는 차를 출시하기는 했지만
1000cc밖에 되지 않는 작은 차로 토요타의 이미지를 끌어올리기에는 부족했죠.
야마하는 스포츠카 개발을 중지하지 않고 새로운 파트너로 토요타에 접근을 합니다.
이미 스포츠카 개발에 착수하고 있었던 토요타는 이것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닛산-야마하 A550X 프로토타입
토요타의 이름을 건 스포츠카지만 개발 주체는 야마하.
당시 토요타는 실용차 위주의 메이커였기 때문에
고성능 엔진이나 고급 내장재 등에 대한 기술은 부족했습니다.
반면 야마하는 10년 이상 바이크로 쌓아온 고성능 엔진 개발 기술과
고급 악기 제작으로 쌓아온 목공 기술로 고품질 내장재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개발과정에서 양사가 어느 정도로 분담했는지에 대해선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야마하의 기술이 상당히 많이 투입된 것은 분명합니다.
2000GT의 고급스러운 우드 인테리어에는 야마하의 악기 제작 노하우가 담겨 있습니다.
개발뿐만 아니라 생산 역시 야마하에 위탁되었는데,
이 때문에 토요타 2000GT에 대해
"토요타는 야마하의 스포츠카를 구입해서 판매한것에 불과하다"
"야마하 2000GT라고 불러야 한다"
라는 주장도 나올 정도였죠.
2000GT 이후로도 야마하는 토요타 자동차의 엔진을 공급하는 등 관계를 지속해 왔습니다.
토요타의 고성능 엔진 제작을 야마하가 담당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는데,
급기야 2000년에는 토요타와 야마하는 캐피탈 얼라이언스를 체결하고 R&D 관계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토요타는 야마하 주식의 약 5% 정도를 105억 엔에 구입했고, 야마하는 토요타 주식 50만주를 받았습니다.)
혹자는 이것을 근거로 토요타가 야마하를 자회사로 편입했다고도 말하지만,
공식적으로 토요타와 야마하는 계열사 관계는 아닙니다.
토요타 이외에도 포드나 볼보에도 엔진을 공급하는 등 다양한 제조사들과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야마하가 제작한 토요타 엔진
토요타의 엔진명은 세대 - 엔진시리즈명 - 버전 으로 이루어집니다.
4A-GE는 4세대 A시리즈 엔진의 DOHC버전이라는 뜻이죠.
여기서 세번째, 버전에 "G"가 들어가는 엔진의 헤드는 대부분 야마하에서 설계/제작한 엔진들입니다.
토요타의 고성능 엔진들이 자랑하는 DOHC, 멀티밸브, 가변밸브 시스템을 제작한 것이 바로 야마하라는 이야기죠.
토요타에서 제작한 일반 엔진을 기반으로 고성능 버전으로 설계하는 경우도 있고,
일반 버전 없이 고성능만을 추구하는 엔진은 모두 야마하에서 설계하기도 합니다.
3M : 토요타 2000GT, 크라운
직렬 6기통의 DOHC 2000cc엔진.
토요타 크라운에 탑재된 2M에 야마하에서 설계한 DOHC헤드를 올린 것이 3M입니다.
2M이 110마력 정도의 힘을 내는데 비해 3M은 150마력의 높은 출력을 발휘했습니다.
2000GT에 탑재된 3M엔진.
2M엔진과 다르게 헤드 커버가 좌우로 나뉘어져 있어 DOHC임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2T-G : 토요타 셀리카, 카리나, 코롤라 레빈 등
토요타 2T엔진을 DOHC버전으로 제작한 것입니다.
배기량 1.6L에 출력은 약 110에서 125마력 정도.
초대 셀리카, 카리나, 카롤라 레빈 등 1970년대 토요타 스포츠 모델에 탑재된 엔진.
총 30만기가 생산되었습니다.
4A-GE : 토요타 AE86 등
2T-G엔진의 후속 엔진.
1.6L 직렬 4기통 엔진인 4A엔진에 야마하에서 설계/제작한 DOHC헤드를 올린 것입니다.
기통당 4개의 밸브를 사용한 16밸브 버전은 셀리카, AE82~92 레빈/트레노등에 탑재되었습니다.
이후 기통당 5개의 밸브를 사용한 20밸브 버전으로 진화, AE101 레빈/트레노에 탑재되었습니다.
16밸브 4A-GE 중 가장 강력한 버전인 "레드캡" 4A-GE.
자연흡기 1.6L엔진으로 128마력을 발휘합니다.
1G-G : 토요타 소아라, 셀리카, 체이서, 크라운 등
2000cc 직렬 6기통 DOHC 4밸브로 멀티 밸브화에 앞장선 엔진.
고급차 붐을 일으킨 토요타 소아라에 탑재되었습니다.
높은 성능과 품질로 일본 기계 학회상을 수상한 엔진.
2ZZ-GE : 토요타 셀리카, 코롤라, 로터스 엘리제, 엑시지 등
2ZZ-GE엔진은 토요타의 ZZ시리즈 엔진 블럭을 기반으로 제작된 엔진입니다.
이 엔진은 바이크 엔진처럼 짦은 스트로크로 보어와 스트로크가 거의 같은 스퀘어 엔진입니다.
엔진 특성 역시 바이크를 닮아 높은 RPM영역을 가지고 있고,
1.8L 자연흡기 엔진으로서는 상당히 높은 180~190마력을 발휘합니다.
토요타 셀리카, 코롤라 등 스포츠 모델에 쓰였고,
로터스 엘리스와 엑시지에도 채용되어 높은 성능을 자랑했습니다.
로터스 엘리스 SC에 탑재된 2ZZ-GE 슈퍼차저 엔진.
3S-GE : 토요타 알테자, 2세대 MR2 등
캠리, 코로나, 카리나, RAV4, 카르디나, 알테자 등 다양한 토요타 차량에 탑재된 엔진.
터보 사양인 3S-GTE버전은 셀리카 GT-FOUR에 탑재되었습니다.
주철 블록을 사용해 강도가 매우 뛰어나 900마력 출력에도 대응하는 등 튜닝 베이스로 적합한 엔진입니다.
TOMS F3 머신의 베이스 엔진, 슈퍼GT, 파이크스피크 등 모터스포츠에서도 대활약.
2UR-GSE : 렉서스 IS F
고성능 컴팩트 세단 'IS F'에 사용된 엔진.
이 엔진은 렉서스 LS600h에 탑재된 2UR-FSE엔진을 기반으로 하는데,
야마하의 F1 엔진 기술로 만들어진 캐스트 알루미늄 매니폴드, 새로이 디자인된 헤드,
티타늄 인테이크 밸브를 채용해 423마력의 슈퍼카급 출력을 발휘합니다.
(2UR-FSE엔진은 394마력)
렉서스 IS F의 2UR-GSE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
1LR-GUE : 렉서스 LFA
렉서스 LFA를 위해 만들어진 고성능 엔진.
4.8L 자연흡기 V10 엔진으로 무려 560마력의 출력을 냅니다.
알루미늄, 마그네슘, 티타늄 합금 등 가볍고 강한 재료를 아낌없이 투입했습니다.
낮은 무게 중심을 유지하기 위해 드라이섬프 방식을 채용했습니다.
밸브와 로커암은 티타늄 재질에 다이아몬드 코팅이 되어 있고
각 기통에는 개별적으로 컨트롤되는 독립 스로틀이 달려 있어
자연흡기 대배기량 엔진이 낼 수 있는 최고수준의 출력을 자랑합니다.
렉서스 LFA에 채용된 1LR-GUE엔진
토요타 이외의 차량 엔진
포드 토러스 SHO (89-95) : 3.0 L SHO V6, 3.2L SHO V6
포드 토러스 SHO (96-99) : 3.4 L SHO V8
포드 토러스의 고성능 버전인 SHO (Super High Output)에도 야마하 엔진이 쓰였습니다.
89년 1세대 토러스에서는 3리터 V6엔진,
92년 2세대 토러스에서는 3.2리터 V6엔진,
96년 3세대 토러스에서는 3.4리터 V8엔진으로 점점 진화를 거듭했습니다.
2010년 출시된 4세대 토러스 SHO는 포드의 에코부스트 엔진을 쓰지만,
토러스 SHO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야마하의 힘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볼보 XC90 (2005), 노블 M600 : V8 4.4L
2005년, 미드사이즈 럭셔리 크로스오버 차량인 XC90에 V8 4.4L엔진이 추가되었습니다.
이 엔진은 볼보가 디자인하고 야마하에서 생산한 엔진입니다.
영국제 슈퍼카인 '노블 M600'에도 탑재되었는데,
가레트 터보차저를 더해 650마력에 달하는 폭발적인 성능을 발휘했습니다.
노블 M600
포뮬러 레이스 출전
야마하는 엔진 메이커로서 포뮬러 레이스에도 오랜 기간 참가해 왔습니다.
OX66 : 1984년부터 일본 포뮬러 F2에 투입된 V6 2000cc 엔진.
OX77 : 1987년 F2가 F3000으로 승급함에 따라 제작된 V8 3000cc엔진.
1989년에는 모터스포츠의 최고봉, F1에 참가하게 됩니다.
Zakspeed 891 : OX88
야마하는 V8 형태인 OX88 엔진으로 F1에 뛰어듭니다.
첫 참가인 만큼 경쟁자들에 비해 출력이 낮아 눈에 띄는 성적은 남기지 못했습니다.
Jordan 192, Brabham BT60Y : OX99
OX88에 비해 기통수를 대폭 늘린 5밸브 DOHC V12엔진.
OX99엔진
Tyrrell 123 : OX10
1993~1996년에는 티렐과 함께 팀을 만들고 3L V10엔진을 투입합니다.
F1 엔진 전문 메이커 Judd와 손잡고 만든 엔진으로 Judd GV V10을 기반으로 합니다.
Arrows A18 : OX11
야마하의 마지막 F1엔진. OX10과 마찬가지로 Judd와 공동 개발한 엔진입니다.
OX11엔진
야마하 OX99-11
2000GT 이후 사륜차 업계에서는 엔진을 주로 만들던 야마하지만
사륜 완성차를 만드는 것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1989년 OX88 엔진으로 F1에 뛰어든 야마하.
OX88의 개량형인 OX99엔진을 그대로 올린 로드 고잉 스포츠카가 바로 OX99-11입니다.
마치 르망 그룹C(현 LMP클래스)레이스카와 같은 급진적인 형태를 하고 있는데요,
바이크를 주력으로 하는 야마하 답게 시트가 바이크처럼 앞뒤로 배치되어 있는 점이 특징입니다.
도어는 전투기 콕핏처럼 유리 뚜껑 전체가 열리는 형식.
양산 버전 OX99-11은 양산차로서는 보기 드문 퓨어 스포츠카로 기대를 모았는데요,
90년대 초반 일본에 불어닥친 경제위기 '버블붕괴'로 인해 안타깝게도 생산이 취소되어 버렸습니다.
현재 프로토타입으로 제작된 3대만이 남아 있습니다.
토요타의 고성능 이미지를 만들어온 야마하
토요타의 고성능 차량들은 전세계에서 인정을 받아 토요타의 위상을 크게 높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고성능의 핵심 부품을 만들어 온 것은 바로 야마하.
비록 야마하의 이름을 걸고 출시된 양산차량은 없지만
야마하가 자동차의 발전에 기여한 역할은 충분히 인정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BMW가 M, 벤츠가 AMG라는 이름으로 고성능 차량을 출시하는 것처럼
토요타에도 야마하의 이름이 걸린 차량이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오늘 보배드림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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