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패신화의 GT-R'
일본 레이스 역사와 함께한 스카이라인
일본을 대표하는 고성능 차량을 꼽자면 그 중 하나로 스카이라인 GT-R 시리즈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특히 RB26DETT엔진을 탑재한 R32이후 기종은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하고, 전세계적으로도 팬이 많죠.
'스카이라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차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57년의 일입니다. 처음부터 닛산의 차량이었던 것은 아니고, 프린스 자동차공업이라는 회사에서 소형 승용차 규격에 맞춘 1500cc 차량으로 출시했습니다. 프린스 자동차공업 시절의 스카이라인은 'GT-R'이라는 그레이드가 없었지만, 1900cc엔진을 갖춘 스포츠 그레이드, 투어링 레이스카에 탑재된 2리터 엔진을 탑재한 스카이라인 GT등의 고성능 버전이 있었습니다.
2세대 프린스 스카이라인(S50)은 제2회 일본 그랑프리에 출전하여 T-V클래스 1~7위, GTII 클래스 2~6위를 모두 휩쓸었습니다. GTII 클래스에서 1위를 차지하지 못한 이유는 개인 출전한 포르쉐 904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양산차를 기반으로 개조한 S50이 퓨어 레이스카로 개발된 포르쉐 904를 이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경기 중 단 한번, 이쿠자와 토오루의 스카이라인이 포르쉐 904를 추월하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포르쉐 904에게 추월당하고 그대로 레이스는 종료되어버렸지만, 양산 세단을 베이스로 한 차량이 레이싱카를 제쳤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었고, 이 사건 이후 스카이라인과 포르쉐는 경쟁 관계로 종종 비교되고 있습니다.
KPGC10 스카이라인 GT-R 레이스카
닛산과 프린스가 합병된 이후 출시된 스카이라인 2000 GT-R(C10)은 데뷔전에서 강력한 성능을 발휘하며 우승을 차지합니다. 이후 69년 일본 그랑프리 투어링카 부문 1~3위, 70년 JAF그랑프리 특수 투어링 카 부문에서 1위,2위,4위를 차지하는 등 일본 레이싱계를 싹쓸이하다시피 하며 49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깁니다. C10형 스카이라인 2000 GT-R이후 오랜 기간동안 스카이라인에 GT-R이라는 이름이 주어지지는 않았지만 82년 데뷔한 스카이라인 슈퍼 실루엣(R30), 스카이라인 GTS-R(R31)도 일본 투어링카 선수권(JTC)에 참가하여 좋은 성적을 얻었습니다.
CALSONIC NISSAN 스카이라인 GT-R (R32) 레이스카
R32에서 다시 부활한 스카이라인 GT-R은 1990년 JTC 제1전에서 레이스에 데뷔합니다. 스카이라인 GT-R은 예선전에서 코스 레코드를 2초나 단축시키며 폴 포지션을 차지했고, 본선에서는 단 한번도 추월을 허용하지 않고 그대로 우승을 장식합니다. 압도적인 파워를 과시하며 등장한 GT-R은 시리즈 내내 우승을 차지했고, 이듬해에는 총 7대의 GT-R이 출전해 상위를 모두 휩쓸어 사실상 GT-R만의 원메이크 레이스가 되어 버립니다. R32 GT-R은 1993년까지 무패를 자랑하며 29연승을 달성, 무패신화의 GT-R을 만들어냅니다.
MOTUL AUTECH GT-R (R35) 레이스카
이후에도 R33 GT-R, R34 GT-R로 발전하며 일본 모터스포츠의 대표 차종의 자리를 굳혀가던 스카이라인 GT-R은 2002년 R43 스카이라인 GT-R의 단종으로 2003년부터 페어레이디Z (350Z, Z33)가 출전하게 되는데, 2008년 GT-R의 출시에 따라 슈퍼GT GT500클래스에 GT-R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다시 서킷에 모습을 드러낸 GT-R은 데뷔전 우승, 2전 1-2피니쉬로 화려한 데뷔를 이루고, 2008년, 2009년, 2011년시즌 챔피언을 차지하며 GT-R의 불패신화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스카이라인 GT-R의 등장
'GT-R'이 처음 등장한 것은 프린스 자동차공업이 닛산에 합병된 이후의 일입니다. 1968년 개최된 제15회 도쿄 모터쇼에서 스카이라인 2000GT-B(통칭 하코스카)의 'GT 레이싱 사양'이 출품되었는데, 이 차량은 스카이라인 2000GT의 차체에 프로토타입 레이싱카인 R380의 엔진을 탑재한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모터쇼에 출품된 GT 레이싱 사양과 거의 같은 사양을 가지고 초대 'GT-R'이 등장합니다.
스카이라인 2000 GT-R (PGC10, KPGC10)
처음 등장한 GT-R의 캐치프레이즈는 '양의 탈을 쓴 늑대'. 첫 GT-R의 베이스가 된 차량인 스카이라인 2000GT는 그 모습이 상자(하코)를 닮은 스카이라인이라고 해서 '하코스카'라는 애칭으로 불렸습니다. 그런 직선 위주로 디자인된 세단 차체에 레이스카 엔진을 탑재한 것이 바로 첫 GT-R이었습니다.
탑재된 엔진은 프로토타입 레이싱카 R380에 탑재되어 있던 GR8 엔진을 양산형으로 개량한 S20엔진. 총 배기량 1989cc의 직렬6기통 DOHC 가솔린 엔진입니다. 최대출력 160ps(@7,000rpm), 최대토크 18.0kgf.m(@5,600rpm)의 고성능을 발휘했습니다. 그밖에도 3기통씩 독립된 구조로 만들어진 배기 시스템, 타이트한 기어비의 5단 크로스미션, 다판 클러치식 LSD, 강화 스테빌라이저 등 레이싱을 위해 세세한 부분까지 변경되었습니다.
특히 인테리어는 운전에 필요한 장비 이외에는 거의 없었습니다. 시트는 등받이 조절이 되지 않는 버킷 시트가 탑재되어 있고, 조수석 시트벨트, 뒷좌석 시트벨트, 조수석 헤드레스트, 조수석 선바이저, 히터, 라디오, 시계, 실내 손잡이 등 주행에 필요하지 않은 대부분 장비는 기본 장비가 아닌 옵션으로 제공되었습니다. 또한 레이스에 필요한 옵션도 매우 충실해 알루미늄 단조 피스톤, 대구경 캬브레터, 오일쿨러, 강화 서스펜션, 와이드 휠 등 스포츠 주행에 필요한 대부분의 옵션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스카이라인 2000 GT-R (KPGC110)
첫 스카이라인의 후속 차량은 4세대 스카이라인(C110)을 베이스로 한 스카이라인 2000GT-R. 4세대 스카이라인은 광고 카피에 사용된 '켄과 메리의 스카이라인'이라는 문구가 유명세를 타면서 '켄메리' 라는 애칭으로 불렸습니다. 켄메리 역시 GT-R버전이 출시되었는데, 1973년 1월 출시되어 그해 4월까지만 판매되었습니다. 이것은 일본의 배기가스 규제 때문으로, 태생이 레이스용 엔진이었던 S20엔진으로는 새로운 배기 규제를 충족시킬수가 없어 4개월만에 단종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켄메리 GT-R은 4개월동안 단 197대가 팔려 지금은 남아있는 차량이 거의 없는 탓에 '환상의 GT-R'로 불리고 있습니다.
켄메리 GT-R의 가장 큰 특징은 디자인. 투박한 디자인의 하코스카와 달리 패스트백 형태의 유려한 쿠페 보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리어 램프의 4개 원형 디자인은 켄메리 GT-R에서 처음 적용되어 GT-R의 특징적인 디자인으로 지금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디자인 변경으로 차체가 커졌고(길이 130mm,폭 30mm, 휠베이스40mm 증가) 차량 무게가 45kg이나 늘어난 탓에 레이스에서는 한번도 등장하지 못했습니다.
스카이라인 GT-R (BNR32)
켄메리 GT-R의 단종 이후 16년간 스카이라인에는 'GT-R'이라는 그레이드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 점유율 하락으로 부진에 빠진 닛산은 '1990년대까지 기술 세계 제일을 목표로 한다'는 901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이 운동의 결과 전자식 사륜 구동 토크 제어 시스템(아테사 E-TS), 사륜 조향 시스템(HICAS), 멀티 링크 서스펜션, 유압 액티브 서스펜션 등 다양한 신기술을 개발해냈고, 이러한 최신 기술을 집약시켜 'GT-R'을 부활시키게 됩니다. 그 결과가 1989년 출시된 R32형 스카이라인 GT-R입니다.
전세대 GT-R이 레이스카 엔진을 탑재한 것처럼, R32 GT-R역시 일본 투어링카 레이스에 투입하기 위해 개발된 RB26DETT엔진이 탑재됩니다. RB26DETT엔진은 레이스의 극한 상황을 고려해 만든 엔진으로, 자주규제 최대치의 출력인 280ps(6,800rpm), 36kgf.m(4,400rpm)을 달성했습니다. 또한 GT-R중 최초로 전자식 4륜구동 시스템인 아테사 E-TS가 탑재되어 후륜구동과 사륜구동의 장점을 모두 갖추고 있었습니다.
RB26DETT엔진은 2.6L라는 다소 애매한 배기량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당시 전일본 투어링카 챔피언십(JTC)의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설정이었습니다. 그룹A 4.5L 클래스는 터보 엔진으로 참가할 경우 2,647cc가 상한선이었기 때문에 2.6L로 개발되었습니다. 개발 당시의 목표 최고 출력은 600마력으로, 시판 사양의 280마력을 크게 웃도는 강도를 가지고 있어 약간의 튜닝만으로 400ps를 쉽게 넘길 수 있었습니다.
RB26DETT엔진과 아테사E-TS시스템은 GT-R에 있어서 강력한 무기였지만, 가장 큰 단점을 유발하기도 했습니다. 고강도를 위해 채택한 주철 실린더 블록 때문에 엔진이 상당히 무거웠고, 4륜구동화에 따라 차량의 중량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특히 RB26DETT엔진으로 인한 프런트 헤비 성향은 코너링시 강한 언더스티어를 유발했고, 하드한 브레이킹을 할때 쉽게 페이드 현상을 일으켰습니다. 이런 단점은 이후 브레이크를 강화한 V스펙, 코너링 스피드 향상을 위해 와이드 타이어를 채택한 V스펙II 가 발매되면서 어느정도 해소되었지만, RB26DETT의 무거운 중량 자체는 해소되지 않아 이후에도 GT-R의 언더스티어 문제를 유발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스카이라인 GT-R (BCNR33)
1995년에는 R33 스카이라인 GT-R이 출시되었습니다. R33 스카이라인의 캐치프레이즈는 '마이너스 21초의 로망'. 마이너스 21초는 바로 독일 뉘르부르크링 북쪽 코스의 랩타임을 21초 줄였다는 의미였습니다. 캐치프레이즈에서도 알 수 있듯이 R33형부터는 본격적으로 뉘르부르크링 테스트 드라이브를 개시하였습니다. 이 테스트에서 프로토타입 모델이 7분 59초를 달성해 8분의 벽을 돌파하였습니다.
R33은 R32의 모습을 어느정도 유지하면서 전체적으로 차체 크기가 커졌습니다. 엔진은 R32와 마찬가지로 RB26DETT를 탑재하였는데, 기존 8비트 ECU를 16비트로 업그레이드하고 과급압을 0.75kg/cm에서 0.84kg/cm으로 상승시켜 최대토크가 36kg.m에서 37.5kg.m로 늘어났습니다. (최대출력은 자주규제로 인해 280ps로 동일) R32에서 V스펙에만 적용되던 브램보 브레이크 캘리퍼를 표준 장비했고, 새로운 V스펙에는 전자제어식 액티브 LSD와 이를 제어하는 아테사E-TS PRO가 탑재되었습니다.
스카이라인 GT-R (BNR34)
1999년 출시된 R34 스카이라인 GT-R은 '스카이라인'으로서는 마지막 GT-R이 되었습니다. R33 GT-R이 보디 사이즈가 커지면서 악평을 받았는데 R34에서는 다시 휠베이스가 55mm, 길이가 75mm 줄어들었습니다. 전체적인 디자인도 크게 변경되어 얌전한 이미지였던 기존 GT-R의 디자인에서 각진 직선 위주의 디자인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엔진은 역시 RB26DETT가 탑재되었는데 가레트 C100-GT25 트윈 볼베어링 세라믹 터빈을 장비하여 최대토크 40kg.m를 달성했습니다. 일본의 자주규제로 인해 제원상 최고출력은 여전이 280ps에 그쳤지만, 실제 출고된 차량을 그대로 테스트해보면 330ps가 넘는 출력을 발휘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독일 게트락 사와 공동 개발한 6단 수동 미션이 조합되고, 알루미늄 단조 재질의 서스펜션으로 경량화를 이루었습니다.
R34 GT-R은 센터페시아에 5.8인치 멀티펑션 디스플레이를 장비했습니다. 이 디스플레이에는 엔진의 상태, 터보압, 수온, 유온 등 다양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표시됩니다. V스펙에서는 흡기온도와 배기온도까지 표시되며, 별매품인 니스모 멀티펑션 디스플레이를 장착하면 랩타이머, G포스 미터(가속도계), 2bar까지 향상된 부스트 압을 표시할 수 있습니다.
R34는 V스펙 이외에도 M스펙이 추가되었는데, V스펙이 달리기에 중점을 둔 모델이라면 M스펙은 승차감과 고급감을 중시한 모델입니다. 승차감을 중시한 서스펜션 세팅, 열선이 내장된 수제 가죽 시트, M스펙 전용 스티어링 휠 등이 적용되었습니다.
GT-R (R35)
R34 스카이라인 GT-R이 단종되기 전인 2001년, 제35회 도쿄 모터쇼에 'GT-R 컨셉'이 출품됩니다. 당초 스카이라인 쿠페(G35 쿠페), 페어레이디Z (350Z)등에 탑재된 FM 플랫폼을 기반으로 개발하려고 했지만, GT-R을 닛산을 대표하는 차로 만들고자 하여 GT-R전용의 'PM플랫폼'으로 개발이 시작됩니다. 2003년 제 37회 도쿄 모터쇼에서 2007년 GT-R의 부활이 선언되고, 2007년 12월 드디어 GT-R이 부활합니다.
기존 GT-R이 스카이라인 차체에서 파생된 모델이었던 것에 반해 R35 GT-R은 GT-R만을 위한 전용 플랫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에따라 '스카이라인'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GT-R'이 정식 차량명이 됩니다. 사실상 완전한 신차의 형태로 개발되었지만 R35라는 코드네임을 가지고 있어 기존의 GT-R을 이어가는 차량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큰 특징은 전용 플랫폼으로 개발된 PM 플랫폼. 프런트 헤비 성향은 그동안 GT-R을 괴롭히던 고질적인 문제였습니다. R35 GT-R은 이런 단점을 깨끗히 해결하기 위해 플랫폼 단계에서 완벽한 전후 중량 배분을 감안하여 설계했습니다.PM플랫폼이라는 이름은 '프리미엄 미드쉽 패키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세계 최초로 독립형 트랜스액슬 레이아웃을 채용하여 리어 액슬에 트랜스미션과 아테사 시스템을 배치해 전후 중량 배분을 크게 개선하였습니다.
직렬 6기통을 탑재하던 GT-R의 전통과 달리 V6엔진인 VR38DETT엔진이 채용되었습니다. 이것은 플랫폼 개발 단계에서부터 고려했던 최적의 중량 배분과 트랙션의 최대화를 위한 선택으로 개발 과정 중 가장 마지막에 결정된 것이라고 합니다. 초기 모델은 최고출력 480마력이지만 해마다 약간씩 출력이 늘어 2012년 모델은 550마력을 발휘합니다. 강력한 엔진 파워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보그워너 6단 듀얼 클러치가 적용되어 0.2초만에 변속이 가능합니다.
- 이미지 출처 : 닛산,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