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공유

 

최근들어 자동차 회사들이 차량의 기본이 되는 '플랫폼'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플랫폼이라는 명칭에 대해서 대체로 차체나 언더바디(하체부품)등으로 한정되는 것이 플랫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지만 차량의 모든 부분은 플랫폼의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60% 이상의 부품을 공유하면 같은 플랫폼의 차량이라고 부릅니다.

 

과거 플랫폼 개념은 이미 설계된 다른 차의 기본설계를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기본 설계를 공유한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설계 단계에서 공유를 목적으로 설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엔진 등 특정 부품만을 공유한다거나, 새로운 차량에 맞게 개조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아무리 설계 변경을 한다고 하더라도 기본 틀은 변할 수 없기 때문에 플랫폼을 공유한 차량들은 겉모습에는 차이가 있지만 속은 크게 차이가 없었습니다. 1980년대 이후 미국 자동차 업체들은 제조비용을 줄이기 위해 활발한 플랫폼 공유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비용 절감에는 성공했지만 차량의 독창성은 희생할 수밖에 없었고, 경쟁력 상실로 이어져 미국 자동차 산업의 붕괴를 가져왔습니다.

 

동일한 플랫폼을 사용하는 아우디 R8 (좌)과 람보르기니 가야르도(우).
아우디는 람보르기니를 인수한 뒤 가야르도 플랫폼을 활용한 수퍼카 R8을 출시해
아우디의 럭셔리 브랜드 이미지를 크게 높일 수 있었습니다.

 

통합 플랫폼

 

최근 들어서는 차량 개발 단계에서 파생 차종을 만들기 쉽도록 설계하고, 각종 부품을 모듈화하는 등 하나의 플랫폼으로 모든 차량을 만들어내는 차세대 통합 플랫폼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이 통합 플랫폼들은 비슷한 형태의 차량간의 공유 뿐만 아니라 세단, 해치백, 쿠페, 미니밴, SUV 등 특성이 전혀 다른 형태의 차종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설계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자동차 제조회사 입장에서 통합 플랫폼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비용 저감입니다. 소비자들의 요구는 점점 다양화되어 가고 있고,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차종을 보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차종의 다양화는 급격한 비용 상승과 비효율적인 생산을 불러옵니다. 통합 플랫폼을 통해 개발 기간과 비용을 단축할 수 있고, 부품 공용화로 인한 비용 감소, 생산성 향상, 혼류 생산을 통한 생산 유연화 등 여러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다양한 차량을 적은 비용으로 만들어 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꼭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토요타 리콜 사태와 같이 여러 차종에서 공유하는 부위에 결함이 발생하는 경우 대규모 리콜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또한 아무리 잘 설계된 플랫폼이라고 하더라도 완전히 처음부터 개발하는 것에 비해서는 자유도가 제한되기 때문에 플랫폼에서 완전히 벗어난 독특한 차량을 생산하기는 어려워집니다. 고급 브랜드와 일반 브랜드, 혹은 고급차종과 보급차종이 플랫폼을 공유하는 경우 고급 차종의 평가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2012년 첫 공개된 폭스바겐 MQB 플랫폼.

 

플랫폼의 모듈화

 

하나의 플랫폼으로 여러가지 차종을 만들 수 있는 마법은 플랫폼의 모듈화로 이루어집니다. 여러 부품을 모아 하나의 모듈로 만드는 것은 이미 대부분의 자동차 제조업체가 사용하고 있는 방법입니다. 예전에는 부품 단위로 공급을 받아 자동차 제조 업체에서 일일히 조립을 해서 완성시켰지만, 최근에는 엔진, 변속기, 섀시 등 자동차의 일부분 조립이 완료된 모듈 형태로 공급을 받아 제조공정을 단순화시키고 있습니다. 모듈화는 제조과정과 부품 단순화로 불량률 감소, 조립공정 단축, 효율적인 부품 관리 등 많은 장점이 있습니다.

 

모듈화가 잘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모듈의 변경만으로 차량의 전체 성격을 바꾸기에는 프레임이나 엔진 등 차량의 기본 설계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같은 플랫폼을 가진 차량들끼리는 특별한 개성이 없이 모두 비슷한 차량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플랫폼 설계 단계에서부터 각 부분의 모듈을 여러가지 차종에 맞춰 변경할 수 있도록 설계하면 차량의 특성에 맞춰 각각의 모듈만 교체해 주면 특성이 다른 차량에도 폭넓게 플랫폼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MQB 플랫폼의 조절 가능한 범위를 나타내는 그림.
 엔진 등 중요 부분은 통일하고
휠베이스나 오버행 등은 조절이 가능하여
차량의 형태나 크기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최신 통합 플랫폼 현황

 

폭스바겐 그룹 : MQB (Modulen QuerBaukasten), MLB (Modularer Längsbaukasten)

 

MQB, MLB 플랫폼은 2012년 공개된 폭스바겐의 신형 플랫폼입니다. 이 플랫폼들은 차량 크기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고, 하이브리드나 전기모터 등을 포함한 어떤 방식의 엔진도 탑재할 수 있으며, 이전 플랫폼에 비해 무게가 크게 감소한 것이 특징입니다. MQB와 MLB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엔진 배치 방식으로 MQB는 전륜구동에 유리한 가로배치 엔진이고, MLB는 후륜구동에 유리한 세로배치 엔진이라는 점입니다.

 

현재 MQB 플랫폼은 아우디 A3(3세대), 폭스바겐 골프(7세대) 등에 적용되어 있으며 신형 아우디 TT, 폭스바겐 시로코 등에도 적용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MLB 플랫폼은 현재 A4~A8, Q5 등 아우디 차량에 널리 적용되고 있습니다. 포르쉐 마칸, 람보르기니 우르스도 MLB 플랫폼이 적용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MQB 플랫폼에서 사용할 수 있는 엔진들.
MQB 플랫폼은 각 엔진의 배치 방법을 통일하여
휘발유/디젤/하이브리드/전기모터 등 현재까지 개발된 대부분의 엔진을 탑재할 수 있습니다.

 

 

볼보 : SPA (Scalable Product Architecture)

 

볼보는 차세대 플랫폼으로 SPA 플랫폼을 개발 중입니다. SPA 플랫폼은 이전 플랫폼과 달리 유연함(scalable)이 특징입니다. 자동차의 모듈과 주요 시스템을 공유해 부품의 40%를 공용화하여 생산효율 증대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향후 대부분의 볼보 자동차가 SPA 플랫폼을 사용할 것으로 전망되며 2014년 하반기 출시될 예정인 XC90에 처음으로 적용될 예정입니다.

 

SPA플랫폼과 함께 새로운 엔진 플랫폼인 VEA(Volvo Engine Architecture)를 개발 중입니다. VEA는 각 엔진간 부품의 60%를 공유하며 현재 유닛보다 가볍고 연비또한 개선될 전망입니다. 2017년 시행될 각종 배기가스 규제를 만족합니다.

 

 

GM : D2XX, 델타3

 

GM은 2012년 8월경 새로운 글로벌 플랫폼 D2XX를 공개했습니다. D2XX는 쉐보레, 오펠, 복스홀, 뷰익, 캐딜락, 홀덴, GMC 등 GM 브랜드 차량에 폭넓게 적용될 예정입니다. GM은 D2XX 개발에 22억 달러(약 2조 4천억원)를 투자할 계획입니다. 2018년까지 D2XX플랫폼으로 250만대 이상의 차량을 생산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2014년경 출시될 신형 쉐보레 크루즈에 D2XX가 가장 먼저 적용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델타3 플랫폼은 PSA 푸조 시트로엥과 공동 개발한 플랫폼입니다. 푸조 시트로엥에서는 EMP2 플랫폼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2016 오펠 자피라에 적용될 예정입니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 CMF (Common Module Family)

 

CMF 플랫폼은 컴팩트부터 대형 차종까지 모두 적용 가능한 범용 플랫폼입니다. 르노닛산은 CMF 플랫폼으로 2020년까지 르노 11개, 닛산 3개 차종을 개발할 계획이며 연간 생산 대수는 160만대에 달할 전망입니다. CMF 플랫폼의 특징은 엔진룸, 운전석, 프런트 언더바디, 리어 언더바디 등 크게 4가지 모듈로 세분화된다는 점입니다. 각 모듈은 서로 호환되어 차량 성격에 따라 모듈을 조합하면 차종에 최적화된 플랫폼이 완성됩니다.

 

CMF 플랫폼으로 선보일 모델은 2013년 하반기 닛산 로그, 카슈카이, 2014년 말 출시될 르노 에스파스, 세닉, 라구나 후속 모델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현재 르노 클리오, 닛산 마이크라 등이 공유하고 있는 소형차용 플랫폼인 B플랫폼도 CMF 플랫폼으로 대체될 예정입니다.

 

르노삼성자동차도 부산공장에서 생산하는 모든 자동차를 CMF 플랫폼 기반으로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내년부터 부산공장에서 위탁 생산될 예정인 닛산 로그에 CMF 플랫폼이 시범적으로 적용될 예정이며, 국내 출시 차종에는 2016년부터 신형 SM5를 시작으로 전 차종이 CMF 플랫폼이 적용될 예정입니다.

 

CMF 플랫폼은 후드, 언더바디, 운전석, 뒤쪽 언더 바디 등을 조합하여 여러 종류의 차량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PSA 푸조-시트로엥 : EMP2 (Efficient Modular Platform)

 

EMP2 플랫폼은 GM과 공동 개발한 중,소형 FWD, 4WD 차량을 위한 플랫폼입니다. 휠베이스, 차량 높이, 서스펜션 구조를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어 소형차부터 중형SUV까지 폭넓은 차량에 적용이 가능합니다. 초고장력 강판, 알루미늄, 마그네슘 합금 등이 적용되어 이전 세대 플랫폼인 PF2플랫폼과 비교해 70kg가량 경량화 되었습니다. 최초로 적용된 차량은 2013 푸조 308 (2세대)입니다. 2016 시트로엥 DS4에도 적용될 예정입니다.

 

 

토요타 : TNGA (Toyota New Global Architecture)

 

토요타의 TNGA는 플랫폼 자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자동차 개발 구조를 말하는 것입니다. 기존 토요타의 신차 개발 과정은 ① 디자인 개발 ② 성능 향상 ③ 마케팅 로컬라이징 ④ 최적화 및 구조개선 으로 진행되었는데, 이런 신차 개발 과정은 개발 비용 증가와 부품수의 증가를 초래해 막대한 비용 증가를 불러왔습니다.

 

토요타는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2014년까지 세가지 플랫폼을 개발해 대부분의 토요타 자동차를 이 세가지 플랫폼으로 통합할 계획입니다. 또한 현재 공급되고있는 수많은 종류의 부품들을 플랫폼별로 표준화하여 여러 차량에 호환성을 가지게 할 계획입니다.

 

 

마쓰다 : 커먼 아키텍처 (Common Architecture)

 

부품과 모듈을 공유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다른 회사들과 달리 마쓰다의 커먼 아키텍처는 약간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부품 자체를 공유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설계와 생산 과정을 공유합니다. 차종에 따라 크기나 형상은 차종에 따라 달라지지만 기본 설계는 동일하므로 개발과 생산 비용을 감축시킬 수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각사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