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평범한 가정주부입니다.
너무도 억울하고 사는게 힘들어 하루에도 몇 번이나 나쁜생각을 하다 어린 아이들을 보며 돌아섰고, 그렇다고 어디 하소연 할 곳도 없어 이곳에 글을 올리게 됬습니다. 죄송합니다
힘없고 빽도 없고 돈 없는 사람들이 지옥과도 같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표현이 이럴 때 쓰는 말 같습니다. 평생 일만하던 성실한 남편은 지금 자포자기하듯 스스로를 자책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제 남편은 강원도에 본사가 있는 조그마한 통신공사업체에 다니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하남)에 지사가 있구요.
대기업 KT의 하청을 받아 통신케이블 등을 설치하는 그런 회사입니다. 남편은 작은 회사지만 업계에서 일 잘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매년 성장하는 회사에 본인이 일조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저한테 말하며 묵묵히 일해 왔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남편의 웃음은 사라지고 집에서는 말도 안하고 전화기만 붙들고 연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만 하는 겁니다. 민폐 끼치는 걸 극혐하는 남편 성격을 알기에 죄송한 일을 할 사람이 아닌데 뭔가 회사일이 잘못 됐구나 싶어 물어봐도 별 일 아니라며 한숨만 쉬고, 집밖으로 나가서는 끊었던 담배도 다시 피고 최근에는 멀쩡하던 치아까지 빠지고 밥도 잘 먹지도 못하고 그랬습니다.
작년 늦가을쯤부터는 밤12시에나 겨우 들어오고 그러더니 올해부터는 일 해결한다며 지방에 있는 본사에 내려가 3-4일쯤 있다 올라오고 주말엔 안양 군포 과천 등 현장 돌고 집에서는 정말 곤죽이 된 파김치처럼 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남편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한 번은 애들 엄마 입장에서 가정에도 좀 신경써야 하는 게 아니냐고 다그치고 싸운 적도 있었습니다. 차라리 회사를 그만두라며...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자책감과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후회될 뿐입니다.
어느날 회사일에 대해선 전혀 말을 안하던 남편이 내게 조금 서운했는지, 아니면 본인이 그동안 참고 있었던 울분을 내게 전하려 했는지 하나 둘 얘기해 줬습니다.
재작년에 국방부가 군사용 통신망을 새로 구축하는 사업을 발주했답니다.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어가는 사업이라고 합니다. 대기업인 KT가 결국 헐값에 수주를 했구요. 그 사업의 일부 구간에 남편이 근무하는 회사가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사업예산대비 실제로 투입되는 공사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는 구조라 하청을 받게되면 무조건 손해 보는 사업이라고 적극적으로 반대를 했었답니다. 회사 매출은 많이 올라갈 수 있겠지만 수십억 이상의 적자가 예상된다고요. 이 업계에 수십년 근무한 남편이 다른 회사들에게도 물어보니 이 사업에 참여하겠다는 회사가 별로 없었다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걱정이 많았답니다.
어찌됐건 남편 회사는 이 사업에 참여를 했고 남편도 당연히 투입되었습니다. 1년 정도면 끝나는 사업인데 시작하고 몇 달이 지나도 공사가 진행이 안되었다고 합니다. 눈치 빠른 몇몇 업체가 못하겠다고 빠져버린 상황인 거죠. 남편회사는 KT의 일을 받아 운영이 되는 회사이기에 거절을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한 번 밉보이면 앞으로 다시는 일을 안줄테니까요.
그래서 남들 다 안하려고 하는 제일 어려운 구간을 맡았고, 남편은 일때문에 백령도 대청도까지 숱하게 왔다 갔다 했었습니다.
아무리 바람 앞의 촛불처럼 힘없는 하청업체지만 수십억 적자가 나면 회사는 망할 수 밖에 없을텐데 왜 시작을 했을까? 저는 이해가 안됐습니다. KT도 말도 안되는 금액으로 공사를 하라고 시킨 것을 아는 지 실제 들어간 공사비를 보전해주겠다고 약속 했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느 누가 뻔히 손해 보는 공사를 하겠습니까. 그런데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어느 시점부터 KT에서 받은 금액보다 투입된 금액이 많아지다보니 회사가 점점 어려워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공사자재를 살 돈도 없어 이리 저리 빌려서 겨우겨우 진행을 하는데에도 한계가 있어 공사비를 더 달라고 부탁을 하니 공사가 늦어지면 천문학적 지연금(?) 위약금(?) 같은 걸 물리겠다는 협박이나 하고 그랬다고 하더라구요. 어찌어찌 작년 11월경인가 공사를 마쳐서 KT는 국방부로부터 완료처리(?)를 받았다고 합니다.
기껏 어렵게 어렵게 공사를 다 마치고 KT와 공사에 대한 잔여금액과 실제로 초과된 공사비를 달라고 했더니 남편 회사와 헐값으로 계약한 금액 이상은 못주겠다고 이런 저런 핑계를 대더랍니다. 말도 안되는 공사를 시킬 때는 살살 꼬드겨 부려 먹고는, 일 끝나니까 입 싹 씻고 법으로 해결하라며 법률팀 들먹이며 못주겠다는 이런 동네 양XX 만도 못한... 대기업이라는 이름에도 맞지 않는 이런 짓거리에 저희 남편은 스트레스 때문에 멀쩡하던 치아도 빠지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매일 매일 빚독촉 전화에 시달리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됬습니다.
너무도 분하고 서럽습니다.
남편 회사 사장님하고 남편이 KT담당자들에게 공사비 올려달라는 협상같은 걸 하러 갔을 때 대기업 KT는 기분이 나빴는지, 1월달인가에 원래 들어와야 하는 공사비마저도 남편회사에게만 지급하지 말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실제로 못 받았답니다. 남편 회사가 돈을 못받으니 현장에서 일했던 수많은 근로자들과 하청 근로자들까지 남편회사가 있는 강원도에 찾아가 시위도 하고 그랬다 하고, 그래서였는지 그때 당시 남편은 일주일에 사나흘씩 본사가 있는 강원도로 왔다 갔다 했던 거였습니다.
남편 회사에서는 사채까지 써가며 일부 변제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합니다. 대기업 KT에는 항의 전화도 해보고 방문을 하면, 담당자가 바뀌었다 다른 부서로 찾아가라 등등 회피하기만 한답니다. 신문이나 뉴스에서 보던 대기업의 하청업체 피말리는 짓거리를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던 과거의 제 모습에 대한 벌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너무 분합니다.
이 사태는 언제 해결될까요.
저희 남편과 우리가족은 언제쯤 이 지옥같은 현실에서 벗어날까요.
그 놈의 책임감이 뭐라고... ‘당신이 사장이야? 그냥 관둬버려’ 라고 말하고 있는 제 이기적인 마음도 밉습니다.
사실 많이 두렵습니다.
남편이 안쓰럽고 걱정되기도 하고 남편 믿고 일하셨던 현장 근로자분들과 납품업체들도 이 불경기에 어떻게 살아가셔야할까 걱정이 많이 됩니다. 매일매일 걸려오는 항의 전화와 방문에 업무가 마비된 남편 동료들도 불쌍하구요.
그래도 남편회사 직원들은 저 비열한 대기업 KT처럼 회피하거나 그러진 않았답니다.
그동안 남편이 제게 말 안하고 혼자서만 가슴앓이하고 있었던 이유를 누구보다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힘들고 슬프네요.
저는 올해로 10년째 투병중에 있습니다. 혹시나 동정 얻을려고하는 감성팔이 같아 말하긴 싫지만 지금은 너무 힘들고 지쳐 작은 위로라도 받고 싶은가 봅니다. 남편 대신 저라도 나서서 식당 설거지나 파지라도 주워서 팔고 싶지만 이마저도 일상적인 야외할동이 힘든 제 처지가 한탄스럽습니다. 제 건강 걱정과 회사일 때문에 혼자 끙끙대는 남편을 옆에서 지켜만 보고 있자니 제가 짐만 되는거 같아 더 힘드네요.
그래서 더 분하고 원통합니다.
대기업을 상대로 뭘 한다는 게 사실 계란으로 바위치기보다 더 어렵다는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세상에 정의라는 게 있고 사회통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이러면 안되는거잖아요
대규모 국책사업에 사업비 산정도 제대로 못하는 저런 실력 없는 대기업이 수주만 받으면 장땡이라는 생각으로 하청업체에게 헐값으로 일 넘기고, 자기들 말이라면 꼼짝 못하는 힘 없는 영세 하청업체들한테 거짓말하고 윽박지르면서 일 시키고, 자기네 적자나오면 떠넘기고 나몰라라하는 이런 작태들... 현장에서는 피말라 죽어나가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대규모 사업 수주했다고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었을 대기업 담당자들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피가 거꾸로 솟습니다
저런 동네 양XX 만도 못한 대기업놈들 혼내줄 수 있는, 힘있고 정의가 있는 누군가가 대한민국에 아직 남아 있다면 제발 도와주세요
아무 힘도 없고 집에서 아이들 키우며 남편 밥 챙겨주던 힘없는 아줌마가 이렇게 누군지도 모를 의로운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부디, 이 사태가 잘 해결되어 추운날 고생하고 있을 수많은 힘없고 선량한 소시민 사람들이, 하루빨리 이 지옥같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힘없는 사람들, 그렇지만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살아가는 선량한 사람들이 잘 사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두서없이 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경기도 하남에서 어느 힘없는 아줌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