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스포츠 시장이 미들 클래스를 중심으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동안은 레이스 규정에 맞춘 4기통 600cc 모델이 주류를 이뤘으나, 수요 감소와 수익 악화 등의 이유로 다양한 브랜드들에서 이를 점차 단종시키거나 트랙 전용 모델 정도로만 판매하고 있다. 물론 단계를 밟아 올라가는 소비자들을 생각하면 단종 모델의 대체품이 필요한데, 각 브랜드들이 내놓은 대체품의 공통적인 특징은 다루기 까다로운 이전의 특성을 과감히 포기하고 소비자들이 다루기 쉬운 모델을 선보였다는 것이다.

야마하의 경우 동사 MT 시리즈에 사용되는 689cc 수냉 2기통 엔진을 탑재한 YZF-R7으로 새로운 미들 클래스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국내에는 얼마 전 출시를 알리며 본격적으로 판매에 돌입한 상황인데, 이번에 트랙에서 시승할 기회를 얻어 지난 5월 18일 강원도 태백스피드웨이를 찾았다.

이미 일반도로 시승에서 YZF-R7을 시승해본 바 있는데, 그때 들었던 생각은 온로드보다는 트랙에서 재밌게 탈 수 있는 모델이라는 것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포지션인데, YZF-R3의 배기량 확대 버전 정도로 생각하고 덤볐다가는 상당한 고역을 치르게 될 만큼 본격적인 슈퍼스포츠 포지션이기 때문이다. R6와 R7의 핸들바 높이 차이는 R7이 약간 높지만 거의 같다고 봐도 될 정도의 수준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내주행이나 장시간 주행에서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반대로 트랙과 같은 스포츠 주행에서는 낮은 포지션이 장점이 된다. 자연스럽게 전경 자세를 취할 수 있어 공기저항을 줄여주며, 적극적인 체중 이동이 수월하기 때문에 이어지는 코너에서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또한 그만큼 무게 중심이 낮아져 안정적인 주행에도 도움 된다.

현장에 도착해 가죽 슈트를 입고 먼저 두어 바퀴 돌며 타이어를 예열하고 몸을 풀어준 후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메인 스트레이트를 지나 1번 코너에서 일찌감치 다운 시프트와 브레이크로 속도를 낮춰준다. YZF-R7에는 슬리퍼 클러치가 기본 적용돼있는 덕분에 다운 시프트 시 백토크로 인해 뒷바퀴가 튀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아 안정적으로 코너에 진입할 수 있다.

코너 정점(apex)를 지나 서서히 스로틀을 감아 속도를 높여주는데, 엔진 회전수가 그리 높지 않아도 속도를 붙이는데 어려움이 없다. 저회전 중심으로 세팅된 CP2 엔진의 특성 덕분이다. YZF-R6였다면 코너를 빠져나와 빠르게 가속하려면 고회전을 유지해야 하는데, 숙련자야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만 초심자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다. R7은 저회전에서도 충분한 힘을 발휘해주기 때문에 무리해서 회전수를 높이지 않아도 안정적인 탈출 가속이 가능하다.

코너 진입에 맞춰 제동하면 앞 포크가 꾸욱 하고 눌리는 감각이 전해진다. 서스펜션 세팅이 너무 무르다는 의견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을 위해 야마하에서는 조절식 포크를 채용했기 때문에 포크 상단의 다이얼을 돌려 원하는 값으로 세팅하면 된다. 물론 세팅값을 자신에게 맞춰 조절하면 더 매끄러운 주행을 할 수 있겠지만, 레이스를 하는 게 아니라 시승을 하는 것이고, 여러 사람이 타야 하다 보니 이번 시승에선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지만 R7을 구입해 트랙 주행을 즐기거나 레이스에 참가하겠다고 한다면 굳이 사외품으로의 교체 없이 세팅값만 자신의 체중에 맞춰줘도 확 달라진 감각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브레이크는 앞 듀얼 디스크에 뒤 싱글 디스크 구성이고 브렘보 마스터 실린더를 더해 제동력은 충분한 수준이다. 특히 제동력이 점진적으로 솟아오르는 편이어서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다. 물론 제동력도 다다익선(多多益善)인 요소지만, 예를 들어 전 브레이크 시스템을 브렘보 최신 사양으로 갖추게 되면 R7의 가장 큰 장점인 가격으로 인한 접근성이 사라지게 된다. 부담없이 탈 수 있는 본격 슈퍼스포츠, 그것이 이번 R7이 추구하는 가장 큰 목표니 말이다.

태백 스피드웨이의 메인 스트레이트에서 기록한 최고속은 200km/h 남짓. 기자의 체중이 92~93kg이니 더 가벼운 사람은 같은 구간이라도 더 높은 최고속을 경험할 수 있을 듯하다. 가속하는 동안 좋았던 점은 시프트 램프가 적절한 주행 타이밍을 알려주기 때문에 엔진에 무리를 주지 않고도 빠르게 가속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아쉬웠던 건 퀵 시프트의 부재로, 매번 동력을 끊어가며 변속해야 하니 흐름이 툭툭 끊어지는 것이고, 클러치 레버를 잡고 기어를 변속하는 과정들로 인해 시간이 소요되는 부분이다. 다행히 옵션으로 출시될 예정이라고 하니, R7 구입을 고려한다면 장착을 추천하는 장비다.

시승하며 놀랐던 점은 196cm의 키에도 불구하고 윈드스크린 아래로 숨어 공기저항을 최소화하는 자세가 수월했다는 점이다. 시트에서 핸들바까지의 거리가 넉넉한 덕분인데, 이보다 짧은 R3 같은 모델은 상체를 거의 구겨넣는 느낌으로 밀어넣어야 간신히 숨을 수 있을 정도였던 것에 비해 R7은 어렵지 않게 숙일 수 있어 가속에서 공기저항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시승하는 내내 이렇게 편하게 코너를 공략할 수 있는 모델이 있었나 싶다. 다루기 쉬운 적당한 출력도 그렇고, 밸런스 좋은 차체도 한몫한다. 야마하는 R7에 경량 백본 프레임에 알루미늄 센터 브레이스를 더해 민첩한 핸들링을 완성했다. 단단함과 유연함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은 덕분에 움직임을 이해하기 쉬워 코너에서도 겁내지 않고 공략이 가능하다. 시간이 점차 지날수록 코너에서의 속도를 점점 더 높이려는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자제해야 했지만.

아침부터 해 질 무렵까지 계속해서 경험한 YZF-R7에 대한 결론은 간단하다. MT-07에 사용된 CP2 엔진을 사용했다는 점만 다를 뿐, YZF-R6 못지않은 트랙용 모터사이클임은 분명하다. 이러한 모델이 나온 것은 앞서 설명했듯 최근 모터사이클 시장 전반의 추세와 동일하게 소비자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것인데, 1,220만 원이라는 가격 역시 그러하고 엔진을 다루기 쉽게 만드는 것 역시 접근성을 높이는데 한몫한다. R7에 충분히 익숙해졌다면 다음 선택지는 리터급의 YZF-R1으로 넘어가면 된다. R7을 통해 본격 슈퍼스포츠를 어떻게 타야하는지를 충분히 익혔으니 R1에서는 더 강력해진 엔진과 성능에 적응하는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이번 야마하 YZF-R7을 통해 미들 클래스 슈퍼스포츠에 대한 재발견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