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장에서 최근 가장 인기있는 장르는 ‘듀얼퍼퍼스, 멀티퍼퍼스’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 어드벤처 장르가 아닐까. 물론 이 모델들은 온로드는 물론이고 오프로드에서도 잘 달릴 수 있는 구성을 갖추고 있는데, 그렇다고 어드벤처 장르를 구입하는 소비자들 모두가 오프로드를 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드벤처로 오프로드를 즐기는 소비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온로드에서만 어드벤처 모터사이클을 타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편한 포지션 때문이다.
슈퍼스포츠 같은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더라도 네이키드까지는 살짝 허리를 굽혀야 하는 전경 자세를 취해야 해 장시간 투어링을 즐기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드벤처의 경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탈 수 있어 편하고, 높은 시트고만큼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운동성능 역시 상당한 수준일뿐더러 오프로드를 주파할 수 있도록 서스펜션을 소프트하게 세팅하기 때문에 승차감도 적당한 수준이다. 여기에 연료탱크도 기본 20L 정도 탑재돼 있어 항속거리까지 상당하니 장거리 투어를 즐기는 사람들에겐 꽤나 합리적인 선택인 것이다.
여기서 각 메이커별로 선택이 조금씩 갈리는데, 구매자가 어떻게 사용하건 신경쓰지 않고 원래의 모델만 계속 만들어 판매하는 곳이 있고, 또다른 곳은 구매자의 사용 환경에 맞춰 스타일은 그대로 유지하지만 온로드에 최적화된 구성을 함께 발매하는 곳이 있다. 오늘 소개할 트라이엄프의 경우엔 후자로, 자사의 플래그십 어드벤처 모터사이클인 타이거 1200 시리즈를 그동안 온로드용과 오프로드용 2개 사양으로 선보여왔다. 이 타이거 1200 시리즈가 지난 2021년 대대적인 변화를 맞았고, 드디어 국내에도 그 모습을 드러내 시승차를 공수해 자세히 살펴보기로 했다.
먼저 이름에서의 변경이다. 신형 타이거 1200은 온로드용과 오프로드용을 구분하는 이름이 각각 GT와 랠리로 바뀌었다. 그리고 세부 트림 구분은 GT의 경우 GT, GT 프로, GT 익스플로러로 세분화했고, 랠리의 경우엔 랠리 프로와 랠리 익스플로러 2종으로 나뉜다. 오늘 시승한 차량은 온로드용인 GT의 최상위 트림인 GT 익스플로러로, 연료탱크 용량이 20L에서 30L로 늘어났고, 전용 편의?안전장비들이 더해진 것이 특징이다.
외관부터 살펴봐도 이전과 닮은 요소를 찾기가 힘들다. 전면부에선 헤드라이트 형상도 좌우 분리형에 가까운 형태로 디자인됐던 이전과 달리, 신형은 마치 로보캅의 얼굴처럼 좌우를 가로지르는 주간주행등으로 일체화된 느낌을 더욱 살렸다. 어드벤처의 느낌을 강조해주는 비크의 경우에도 이전보다 길게 뽑아냈으며, 방향지시등 주변의 전면 카울을 감싸는 형태로 변경된 점도 실제 주행에서의 파손을 줄이는 목적으로 보인다.
측면에선 엔진 헤드를 드러내던 이전과 달리, 헤드를 페어링으로 살짝 덮었다. 엔진도 새로 설계된 만큼 각부 커버들의 형상이 바뀌었으며, 커버 볼트 색깔도 검은색으로 처리해 엔진 자체를 더욱 부각시킨 느낌이다. 머플러는 차체에 더욱 밀착시켜 일체화된 디자인을 보여준다. 후면에선 브레이크등을 좌우로 넓히고 상하로 좁힌 직사각형의 형태로 바꿨고, 방향지시등을 상단으로 끌어올려 피시인성을 높였다.
핸들바와 계기판 주변에서도 변화가 크다. 우선 기존 5인치 TFT 디스플레이는 7인치로 확대해 화면에 표시되는 정보가 보다 크고 선명해졌다. 이전에는 좌우로도 각종 경고등을 배치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계기판 상단에 최소한의 경고등만을 배치하고 대부분 계기판 내부로 삽입해 깔끔한 디자인으로 마무리했다. 눈길을 끄는 또 하나의 요소는 사이드미러로, 미러 아래쪽으로 램프가 달려있어 이게 뭔가 싶었는데, 최고 사양인 익스플로러 사양에만 적용되는 블라인드 스팟 레이더 시스템을 위한 경고등이다. 이 기능은 자동차에 적용되는 ‘후측방 충돌방지 보조’와 같은 것으로 이해하면 쉬운데, 차선 변경 시 후행 차량이 있을 때 이를 경고해 충돌을 방지해주는 시스템으로, 사이드 미러 하단의 램프를 통해 차량이 있는지, 그리고 차량이 가까이 있으면 램프를 빠르게 점멸시켜 위험한 상황임을 알려주는 기능이다.
이런 어드벤처 모터사이클은 탑승자의 발이 잘 닿아야만 선택받기 유리한데, 이를 위해 차체 중앙부를 가늘게 다듬어 발이 땅에 잘 닿도록 했으며, 기본적으로도 시트 높이를 20mm 낮출 수 있도록 구성해 GT 시리즈는 870mm와 850mm 중 선택할 수 있고, 랠리 시리즈는 895mm와 875mm 중 선택할 수 있다. 이걸로도 좀 높다고 생각하는 고객이라면 로우 시트 옵션을 선택해 시트 위치를 20mm 더 낮춰 안정감을 높이는 방법도 가능하다.
신형 타이거 1200 시리즈 전반적으로 휠 구성이 바뀐 것도 중요 포인트 중 하나다. 온로드 모델인 GT 시리즈의 경우 이전 같은 포지션의 XR에선 앞 19인치, 뒤 17인치 구성이었던 것과 달리 신형에선 앞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뒤는 18인치로 더 커졌으며, 오프로드 모델인 랠리 시리즈의 경우 이전 XC의 앞 19인치, 뒤 17인치 구성이 앞 21인치, 뒤 18인치로 변경되어 오프로드 주파성을 더욱 강화했다. 그동안의 어드벤처 장르들 중에서 이런 리터급에 21인치 휠을 채택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할 거면 제대로 해라’라는 트라이엄프의 진심이 이번 신형에 담긴 듯하다.
브레이크는 역시 ‘다다익선(多多益善)’인 만큼 브렘보 최신인 스틸레마 모노블럭 캘리퍼가 전면에 좌우로 적용되어 강력한 제동력을 발휘한다. 더불어 플래그십 모터사이클에 걸맞은 관성측량장치(IMU) 기반의 코너링 ABS가 더해져 라이더가 원하는 최상의 라인을 그릴 수 있도록 코너링 중에도 차량 상태에 맞는 적절한 제동력을 제공한다. 서스펜션은 그동안은 WP와 손잡았던 트라이엄프가 이번엔 쇼와와 손을 잡았다. 앞뒤 모두 쇼와의 세미 액티브 서스펜션이 탑재되어 계기판을 통해 댐핑 조절이 가능하고, 주행모드 선택을 통해 다른 차량 설정들과 함께 일괄적으로 변경할 수도 있다.
차량을 살펴봤으니 이제는 본격적으로 타볼 차례다. 시동을 걸고 시내구간을 저속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는데, 이 정도 차체에서 느껴져야 할 묵직함이 없다. 분명 오버리터급의 어드벤처 모터사이클임에도 이보다 낮은 700~800cc급 모터사이클을 타는 감각이다. 이런 경쾌함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경량화다. 신형 타이거 1200 시리즈는 이전 세대보다 25kg 이상의 무게를 덜어내 시승차인 GT 익스플로러의 장비 중량(연료 90%)이 255kg인데, 프레임에서 5.4kg, 연료탱크에서 1.5kg 등 차체 곳곳에서 다이어트에 성공한 덕분에 저속에서 조종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막히는 시내 구간을 빠져나와 서서히 스로틀 레버를 감았다. 3기통 엔진 특유의 오묘한 사운드와 함께 이전 세대보다 향상된 강력한 파워가 속도를 빠르게 올려붙인다. 신형 타이거 1200 시리즈에 적용된 1,160cc 수랭 3기통 엔진은 완전시 새롭게 설계된 엔진으로, 실린더 보어와 스트로크, 크랭크, 실린더 헤드, 기어박스와 클러치, 샤프트 드라이브 및 베벨 박스 등 상당부분이 바뀌었다. 특히 25kg이나 되는 다이어트의 일부는 엔진에서 담당한 것으로, 구성 요소들 대부분을 가볍고 콤팩트하게 설계했다. 그 결과 최고출력은 9마력 늘어난 150마력/9,000rpm, 최대토크도 8Nm 증가한 130Nm/7,000rpm를 달성했다. 2기통 엔진의 가속력과 4기통 엔진의 출력을 갖춘 3기통 엔진답게 스로틀을 크게 열지 않았는데도 가속이 상당히 빠르다. 트랙에서였다면 풀 스로틀을 시도했겠으나 일반도로에서 시승이 이루어진 만큼 그러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교통 흐름을 리드하고도 파워가 남아돌 만큼 강력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2기통 엔진 특유의 거친 맛은 조금 순하게 다듬어낸 덕분에 가속 과정에서 핸들바로 전해지는 진동도 크게 줄었다. 여기에 기본으로 적용된 시프트 어시스트, 일명 퀵 시프트는 가속 과정에서 흐름이 끊기는 걸 최소화해주는 덕분에 경쾌함이 배가된다. 엔진 회전수에 맞춰 리드미컬하게 변속하면 속도계 숫자가 100km/h를 넘어 200km/h을 향해 금방 치솟는다. 커브가 다가오는 것에 맞춰 브레이크로 속도를 줄이면서 변속 레버를 밟아주면 슬리퍼 클러치가 하단 변속으로 인한 백토크를 상쇄시켜주기 때문에 불안한 움직임 없이 최적의 기어 위치를 세팅하고 코너를 돌아 재빠르게 다시 가속해 나간다.
가벼운 무게는 저속에서의 조종성은 물론이고 중속 이상의 코너링에서도 경쾌한 발놀림에 큰 역할을 한다. GT 시리즈에는 경량의 알루미늄 캐스트 휠이 채택되어 투어 중 만나는 와인딩 코스에서도 주저하거나 겁먹을 필요 없이 경쾌하게 하나씩 공략해 나갈 수 있다. 여기에 앞서 소개했던 코너링 ABS는 물론이고 코너링 트랙션 컨트롤, 그리고 전자식 서스펜션까지 갖추고 있어 쭉 뻗은 도로에서는 편안한 투어링 머신으로, 산길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민첩한 코너링 머신으로 순식간에 모습을 달리하는, 마치 ‘지킬 앤 하이드’ 같은 변신을 보여준다. 이 변신 과정을 차량에서 내리지 않고 주행 중에 조작 몇 번으로 진행할 수 있는 편리함은 전자식 서스펜션의 존재 이유를 깨닫게 만든다. 이런 조작마저 귀찮으면 모드 버튼으로 세팅을 변경하면 되는데, 가급적이면 다양하게 댐핑을 변경해보고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세팅을 찾는 것을 추천한다.
편의장비나 안전장비에선 역시 사각지대 감지 시스템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동안에는 차선을 변경하기 전에 고개를 돌려 확인하는 ‘숄더 체크’를 바로 옆은 물론이고 후측방까지 해야 해 목에 담이라도 온 날이라면 차선 변경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신형 타이거 1200을 시승하는 동안에는 기본적으로 일정 거리 내에 차량이 존재하는 경우에도 점등이 되고, 방향지시등을 작동시켰을 때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하면 빠르게 점멸해 시승 중 숄더 체크를 놓쳤던 몇몇 위험한 상황을 막아주기도 했다. 이 밖에도 스마트폰을 차량과 연동시켜 전화 송수신이나 음악 재생 등이 가능하고, 영상 촬영이 필요한 경우엔 고프로를 연동시켜 계기판을 통해 제어가 가능한 것은 이전과 동일하다. 내비게이션은 국내 법규상의 문제로 아직 사용할 수 없는데, 트라이엄프에서 안드로이드 오토나 애플 카플레이 같은 커넥티비티 기능을 탑재하거나, 이게 어렵다면 스마트폰 화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미러링 기능이라도 탑재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풀체인지로 새로운 세대를 맞이한 타이거 1200 시리즈는 진정한 ‘어드벤처’로 거듭난 듯하다. 강력한 파워를 보여주는 신설계 엔진과 25kg 덜어낸 무게, 강화된 안전?편의 기능, 각 특징에 맞춘 구성을 통해 소비자에게 피할 수 없는 선택지를 제시하는 느낌이다. 마치 ‘이렇게 좋은 성능에 원하는 요소까지 다 갖췄는데 안 사고는 못 배기겠지?’라는 것처럼 말이다. 온로드에서는 편안한 투어러로, 오프로드에서는 뛰어난 주파성능을 보여주는 랠리 머신으로 활약할 수 있는 만큼 여행을, 모험을 즐기는 라이더라면 타이거 1200 시리즈와 함께 달려보는 건 어떨까. 온로드 지향의 GT든 오프로드 지향의 랠리든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모험을 즐기는 것은 문제없겠지만, 내가 달릴 길이 어느 쪽의 비중이 더 많을지를 판단한다면 선택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