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우선 가입 후 첫 글부터 좋은 얘기가 아니게 되어서 정말 안타깝고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속상한 일이 있었는데 보배드림이 가장 현명하다는 말을 듣게되어서 결례를 무릅쓰고 글을 작성하게 되었네요.

내용이 길기 때문에 바쁘신 분들은 빨간 글씨만 보셔도 어느정도 이해가 되실겁니다!

 

중간에 바퀴벌레 사진이 나옵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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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희는 갓 서른살 언저리의 평범한 직장인 커플입니다. 

이번에 긴 연휴를 맞아 기념일 겸 서울의 유명한 5성급 호텔을 큰맘먹고 예약했는데요.

즐거운 호캉스에서 이런 일이 생길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었습니다...


전반적으로 호텔은 참 좋았습니다. 

꽤 비싼 금액의 식사와 발렛비 등에도 어차피 일정 수준 이상부터는 '경험'을 소비하는 것이라 생각해서 저희의 주머니 사정에서는 조금 버거울 지언정 아깝지는 않다는 마음이었고, 꽤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냈죠. 다음에는 더 좋은 곳을 가보자는 얘기도 나누며 즐거이 잠들었구요. 그런데 문제는 이튿날 아침 벌어졌습니다.

 

 오전 7시 50분 경, 자고있던 저를 여자친구가 급히 깨웠습니다. 굉장히 질린 표정이더군요.

놀라서 화장실로 향해 보니 안쪽 변기 옆에 바퀴벌레가 한 마리 보였습니다. 

여기까지는 솔직히 저는 오래된 호텔이니 그럴수 있다고 여겼지만, 여자친구는 벌레 사진만 봐도 큰 충격을 받는 사람인지라 놀란 마음을 진정시켜주며 프런트에 전화를 걸어 조치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물론 제가 잡을수도 있었지만 이런 곳 까지 와서 직접 만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마친 뒤 침대에 걸터앉아 화장실쪽을 바라보는데 세면대 밑에 놓여진 수건 옆으로 무언가 움직이는것이 보였습니다. 놀란 마음에 다가가 보니 수건쪽에서 벽으로 무언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더군요.

확인해보니 또다른 바퀴였습니다. 이번 녀석은 몸을 닦는 수건 근처를 돌아다니고 있어서 저도 굉장히 찝찝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진을 찍었고, 처음 발견된 변기칸을 다시 열고 그곳 사진도 찍었습니다. 다행히 아까 그 녀석이 아직 사라지지 않고 벽에 걸쳐있었죠. 

 

아래 사진의 얘네들이요.

 

1. 변기 칸 벽(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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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변기 칸 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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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면대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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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얼마 뒤, 직원분이 오시고, 사진을 보여드리며 나왔다고 설명을 하고, 변기칸 쪽은 이미 숨었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직원분께서 세면대 아래로 몸을 숙이시더니 발견했다며 무언갈 잡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찍었던 사진들도 찍었고, 실물도 확보했기 때문에 확인 후 다시 연락을 주시겠다고 하여 저희는 일단 조식을 먹으러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전화를 드렸죠. 하우스 키핑 담당자분께서 올라오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담당자분께서 도착하신 뒤 나눈 대화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담당자분: 호, 저: 저 입니다.)

 

호: 이런 일이 발생해서 죄송합니다. 확인한 결과 콩벌레라고 하네요. 죄송스러운 마음을 담아서 여기(쇼핑백을 내밀며) 화장품을 좀 준비했습니다. (화장품 아니고 비누 등 어매니티 였음)

저: 콩벌레가 절대 아니었는데 혹시 제대로 사진을 확인하신게 맞나요? 바퀴벌레가 확실한데요.

호: 아까 잡았던 벌레를 세스코 측에 확인했는데 그렇다고 하네요.

저: 그렇다면 잡은 벌레가 제가 본것과 다른 것 같은데 혹시 사진까지 보셨나요? 다시 보내드릴까요?

호: 일단은 세스코 측에서 콩벌레라고 전달받아서... 세스코 아시죠? 국내 최대의 방역 업체입니다.

저: 세스코는 당연히 알죠 그런데 여기(사진) 보시면 더듬이도 그렇고 몸도 절대 콩벌레가 아니지 않나요?

호: 그 부분은 제가 확인해 보고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체크아웃 시간도 연장해 드릴게요. 그리고 일단 동층의 다른 방에서 씻으실 수 있게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저: 네.. 뭐 그건 그렇게 해주시고요 그럼 뭘 어떻게 기다리면 되나요?

호: 제가 세스코 담당자를 만나보고 말씀드려야 해서... 오후 중으로 전화드려도 괜찮을까요?

저: 네 이번엔 확실히 확인해주시고 연락 주세요.

 

 요약해두고 보니 나름 멀쩡한 대화네요. 그런데 진짜 콩벌레라는 소리만 다섯번은 하셨고, 제가 사진까지 본게 맞는지 물었더니 세스코가 어쩌고 하는게 뭐랄까...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냥 앞구르기 하면서 봐도 바퀴벌레가 확실하지 않나요?

그런데 만약 제가 사진을 안찍었으면 그냥 세스코가 콩벌레라는데 어쩔? 하면서 제대로된 사과도 못받고 진상취급만 받다 끝났을거라는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확실한 증거 사진이 있기에 다시 확인해보겠다는 말을 들은거죠.

이처럼 예의는 갖췄지만 대충 덮고 끝내려는 모습이 보여서 저는 여기서 조금 화가 났던 것 같습니다.

차라리 그냥 빨리 인정하고 죄송하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어도 저는 풀렸을 것 같았거든요.

 

아무튼 그렇게 체크아웃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전화가 왔죠. 이 내용은 통화녹음이 되어있기에 앞 대화보다 비교적 정확합니다. (담당자: 호, 여자친구: 여 입니다)

 

호: ㅇㅇ고객님 안녕하세요 아까 발견하신 벌레가 독일바퀴인것 같다고 말씀하셔서 확인하고 연락 드리기로 했어서 연락 드렸습니다.

여: 네 말씀해주세요.

호: 세스코 담당자가 사진을 판독한 결과 말씀주셨던 독일바퀴가 맞는것 같다는 소견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알려드리려고 전화드렸습니다.

여: 네.

호: ...

여: ...

호: 네.

 

?????????????????????????????????????????????????????????

방금 통화녹음 들으면서 적었습니다.

진짜 저러고 한 5초 정적이 흘렀습니다.

 

역시! 독일바퀴가 맞을 줄 알았습니다! 제가 뭐랬어요? 끼얏호! 너무 감격스럽고 감사드립니다! 

뭐 이런 반응을 기대하신걸까요?


 저는 인간관계에서 말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잘못을 했다면 인정을, 진심을 담은 사과를 하는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까놓고 말해서 나름의 보상을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집에 오면서 여자친구와 대화를 나누며, 이따가 전화를 받자마자 아까 사진까지 확인하지 않고 다른 벌레라고 응대한 점을 사과하고 바퀴벌레가 맞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저자세로 나온다면 최소한 저는 용서할 마음이 있다는 얘기까지 했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저 상황을 겪는 순간 제가 더 화가나더군요.

그래서 저 뒤로 제가 전화를 넘겨받았고 한 대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진짜 다 직설적으로 말했습니다.)

 

저: 그래서 저희가 뭘 어떻게 하라는거죠?

호: 원하시는게 있다면 말씀을 해주시면 제가 해드릴 수 있는건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 그걸 저희가 뭐 이거 해달라 하고 말씀드려야 하는 부분인가요?

호: 그건 아니죠...

저: 솔직히 제가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면 콩벌레로 끝났을 아까의 응대도 그렇고, 지금 뭐 그래서 어떡할지를 말씀하지 않으시는 상황도 그렇고 좀 나쁘게 말해 괘씸하다는 마음이 너무 강하게 듭니다.

호: 아까 대응해 드렸던 지배인님은 전문가는 아니시고... 어쨌든 죄송합니다.

저: 그래서 적당히 넘기고 싶은 마음도 거의 다 사라진 상태이고, 호텔 측에서 줄 수 있는 최대한의 보상을 얻어내고야 말겠다는 생각까지 들어요. 

호: 네... 그러실 수 있죠.

저: 그럼 지배인님 권한으로 어디까지 해주실 수 있는건지 말씀해주세요.

 

그러자 거듭 사과하시면서 다음에 방문하실때 객실을 뭐 몇 단계 업그레이드를 하고, 사우나를 포함시켜 드리고 라운지는 어렵고 뭐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이미 저는 화가 단단히 났고, 꼬일대로 꼬여버렸다는 사실을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반말은 한 적 없고 예의는 충분히 갖췄습니다.)

 

"왜 제가 다시 방문해야만 보상을 받을 수 있는거냐. 여자친구는 특히나 벌레 자체에도 충격을 받은 상황인데 뭘 믿고 호텔을 다시 방문할 수 있겠느냐."

 

그랬더니 보상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고객응대? 쪽으로 제가 말한 내용을 전달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연휴 끝나고 연락을 드린다구요. 뭐 권한이 어쩌구 하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녹음을 듣다가 다시 화딱지가 잔뜩 나서 뒷 내용까지는 듣지 않아서 기억이 나진 않네요. 아무튼 그래서 마지막으로 얘기했습니다.

 

"어쨌든 지배인님 입장도 권한도 이해 하지만 저희는 벌레 자체에서도, 그 뒤의 응대에서도 호텔에 대한 신뢰를 크게 잃은 상태기 때문에 다시 방문한다는 전제 하에 이뤄지는 보상은 의미가 없다. 무슨 수천만원짜리 방을 주신다고 해도 다시 방문할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지 않느냐, 차라리 환불을 제시하시던 방문과 상관 없는 방향으로 제시해 주시라고 전달 부탁드린다."

 

뭔가 결국 분노의 끝은 적절한 보상인가봅니다. 말이 이렇게 흘러가는걸 보니까요. 솔직히 보상에 대한 욕심? 있습니다. 환불 받으면 저희 입장에서 큰 돈이고 더 좋은 음식, 좋은 경험 다시 할 수 있는거니까요.

근데말이죠 변명처럼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첫 응대에 바퀴벌레를 인정하고 계속 사과만 했다면 그쪽에서 기념품 하나를 보상으로 제시했어도 그냥 넘어갔을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모르겠네요... 그냥 겁이납니다. 고객응대 담당자라는 사람이 사과부터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지 하고요...

진짜 한 번 만 더 대충 넘어가려는 모습을 보인다면 정말 주체할 수 없을 것 같거든요.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드네요. 

내가 너무 과하게 반응하는 걸까? 이런 모습도 진상인가?

고작 100만원도 안하는 객실에 묵는 주제에 바라는게 많느냐 뭐 벌레가 나올수도 있지 않느냐 뭐 그런 거요.

가소로워 보이실 수 있지만 생전 처음 해보는 고급(?) 소비이고 정말 많은 기대를 했던 만큼 실망이 너무 크네요...

 

혹시 비슷한 경험이 있으신 분이 계시다면 조언 부탁드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