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는 역사상 한국과 일본 사이의 중계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원래 토지가 협소하고 척박하여 식량을 외부에서 충당해 생활했으므로, 고려 말부터 우리나라와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조공(朝貢)의 형식을 취하여 그 대가로 미곡(米穀)을 받아갔으며, 조정에서도 그들을 회유하기 위하여 대마도를 우대해 주었다. 그러나 이후 대마도를 근거지로 삼은 왜구가 자주 출몰하자 조선 세종 때 이종무가 원정(遠征)을 하기도 했다.
한편, 1488년 당시 명나라 사신이었던 동월(董越)이 영조의 명을 받아 조선 땅을 둘러본 뒤 작성한 견문록 ‘조선부(朝鮮賦)’에 나와 있는 ‘조선팔도총도(朝鮮八道總圖)’라는 지도에 대마도가 조선의 영토로 표기돼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9년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마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일본에 대마도의 반환을 요구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