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봄 어느 날, 한 해외 교포가 국정원에 국내에 훨씬 큰 규모의 자생 스파이 조직이 있다고 제보했다. 거물급 북한 간첩과 직접 교류를 하고 있고, 자유롭게 평양을 드나드는 인사라는 첩보였다. 제보자는 해외 현지에서 사회적 직위가 높은 사람이라 무시할 수 없는 정보였다. 국정원 수사관들은 ‘부부’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출입국 기록을 샅샅이 뒤져 용의자의 신원을 확보했다.
‘왕재산(旺載山) 간첩단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왕재산은 ‘북한 김일성을 마지막으로 만난 간첩 조직’이다. 총책 김모(체포 당시 48세, 공작대호 관덕봉)씨는 1980년대 중앙대 주사파 운동권 출신이다.
그는 운동권 학생들을 모아 ‘주체사상 연구모임’을 만들었다. 조직원 중 일본어를 잘하는 서울대 출신 J(공작대호 관모봉)씨를 연락책으로 삼은 뒤 1990년 일본으로 보냈다. 관모봉은 1993년 8월 21일 북한이 보낸 공작선을 타고 일본에서 원산까지 갔다. 닷새 뒤 평양 주석궁(현 금수산태양궁전)에서 김일성을 만났다.
국정원 수사팀이 총책 김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하며 벌어진 결정적 장면 하나. 아파트 안방에는 코 푼 휴지가 그대로 있을 정도로 엉망인 상태였다. 물건을 정리하지 않는 그의 습관에 수사팀은 주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