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후보는 경기도의 어린이 건강 과일 지원 사업과 청년기본소득, 소액 극저 신용대출 사업 등을 언급하며 “성남시장 8년, 경기지사 3년 동안 제 모든 정책엔 가난하고 참혹했던 저의 삶, 평범하고 어려운 국민의 삶이 그대로 녹아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 정치를 하는 이유도 제가 탈출했던 그 가난과 절망의 웅덩이 속에서 여전히 고통받는 분들에게 공정한 세상, 희망이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어서”라고 덧붙였다. 이 후보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가리켜 “저를 사회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했고, 5·18 광주를 사회적 어머니라고 부르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한 강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만난 일화를 언급하며 “‘하고 싶은 일을 용기 있게 해라, 변호사 내가 해보니까 절대로 안 굶는다’는 말이 제 가슴에 와 닿았다”며 인권변호사로 일하게 된 계기라고 덧붙였다. 또 성남에서 노동·인권변호사 시절 시립병원 설립 운동에 나섰다가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두 번째 수배가 떨어졌을 때가 “정치의 길로 들어선 운명의 시간”이라고 떠올렸다.
어린 나이에 공장에서 일해야 했던 이 후보는 “불우한 환경에서도 엇나가지 않고 청소년기를 지날 수 있었나”라는 국민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어머니의 힘이 정말로 컸다”며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어머니를 “하늘”이라고 지칭하며 “제가 야근에, 철야에 늦게 퇴근하면 늦은 새벽까지 기다려줬다. 어머니와 손잡고 함께 걷던 새벽 골목길을 떠올리면 지금도 목이 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후보가 되고 전국을 다니면서 어머니 생각이 더 많이 났다”며 “어머니처럼 평생 고단하게 산 분들이 제 손을 꼭 잡고 ‘이 후보, 우리 좀 잘 살게 해줘’ 그렇게 말할 때마다 정말로 국민의 삶을 제대로 살피는 유능한 정치인이 돼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덧붙였다. 이 후보는 “소년공 시절 기억에 남는 장면 세 가지”를 묻는 말에 “여덟 식구가 나란히 누워 함께 자던 단칸방 귀퉁이에서 작은 상을, 요만한 상을 펴놓고 앉아 일기를 쓰던 모습”, “공장의 프레스 기계”,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부러워하던 모습”을 꼽았다.
이러한 삶을 직접 경험 하셨으니 서민들의 마음을 너무 잘 이해해주심..! 이런 분이 대통령감 아닌가요?